2002년 스무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삿포로 땅을 밟았다. 음악을 중단하기 위해 시작된 스무 살의 일본 여행은 결국 음악을 향한 간절함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힘겨운 스무 살의 기억과 특별한 추억이 깃든 삿포로, 스물아홉의 여름 다시 찾았다. 보통 열차와 함께 홋카이도 여행하기. 자기고백적 가사, 퀄리티 높은 음악을 선보여온 그녀의 첫 책은 홋카이도 여행길에서 건져 올린 청춘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보통의 존재’ 오지은의 음악, 사람 그리고 그녀만의 세계에 관한 보통 이야기.
'그'와 헤어지던 날 함께 들었던 오지은 2집 앨범 '지은'. 그녀의 자기 고백적 가사는 상처난 마음을 한 겹 한 겹 덮어주곤 했다. 음악적 감성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감성을, 앨범 속에서 찾을 수 없는 모습을 함께 담은 <홋카이도 보통 열차> 출간을 계기로, 그녀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현실로 이뤄졌다. (인터뷰 담당 | 알라딘 도서팀 송진경)
알라딘 : 북 md 이전에 ‘오지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책이 나올지에 대해 많이 궁금했어요. 앨범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감성적인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귀여운(?) 면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새롭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기존 팬들이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반응은 어땠나요?
오지은 : 저도 신기하게 생각한 부분인데요 오히려 감상이 길지가 않았어요.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정도였어요. 가끔 길게 써주시는 분들은 인생에서 실패한 얘기, 좌충우돌한 얘기에 용기를 받은 듯 했어요.
저는 애초부터 이 책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최고라고 생각하는 여행작가는 빌 브라이슨인데요, 그 작가처럼은 위트있게는 못하지만 멋있는 척 전혀 안하고 여행가서 했던 일들을 그대로 담자고 생각했어요.
알라딘 : 2집 후 급작스레 홋카이도 여행을 결심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초반에 나오는데,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지은 : 여러 군데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하지만, 출간 제의가 있어서 그 목적으로 여행을 한 건 아니에요. 부담감이 있는 것도 싫어하고, 뭔가를 보여주고 들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면 하지 못 했겠죠. 열차를 타고 디카 하나만 들고 제 스타일대로 여행한 건데 이렇게 책이 된 거에요. 사실 <너도 떠나보면..>의 작가 생선과 친해요. 저도 재밌게 봤는데, 그 책과는 정반대, 팔릴 것 같지 않은? 책인 거였죠. 그래서 출판사측에 괜찮으시겠냐고 오히려 제가 물었어요. (웃음)
알라딘 : 글쓰기를 보통 산고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책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예상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오지은 : 앨범을 만드는 게 굉장히 힘든데요, 책은 다른 종류의 힘듦이었어요. 앨범 작업할 때는 스튜디오를 빌려서 하는데, 그 비용이 굉장하거든요 여럿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서 어떻게든 작업이 들어가면 진행이 되요. 글쓰기 작업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잖아요. 슬럼프에 빠지기도 쉽고, 톤이 달라지기도 쉽더라고요. 글이 잘 안 풀려서 마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를 읽었는데 그 책을 읽다가 제 글을 보니까 조잡해서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전면 수정했는데 오히려 단점을 제거하면서 많은 장점이 동시에 제거 되버려서 제가 아닌 것 같은 다른 톤의 글이 되더라고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알라딘 :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책을 내는 것과 앨범 작업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오지은 : 책이 더 어려워요. 아, 두 작업 모두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워요. 같은 내용을 담더라도 책은 쉽게 읽히거나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음악은 3-4분 안에 폭발적인 감정 상태를 확실히 담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더 좀더 하는 욕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알라딘 : 출간 후의 지인들의 반응 및 본인 스스로 내리는 책에 대한 소감은 어땠나요?
오지은 : 저는 반응이 느린 사람이라, 한참이 지난 후에 실감할 것 같아요. 제가 이 책을 잘 냈구나란 안도감을 느낀 계기가 있어요. 추천사를 써준 ‘W Korea’ 패션 디렉터 최유경 언니와 안지 15년 됐어요. 제가 잔머리를 굴리거나 하면 바로 알 사람이죠. 제 집에 언니가 놀러 온 적 있어요. 저는 다른 방에서 작업하다가 조용하길래 언니한테 가보니까 울고 있는 거에요. 다 읽고 나서도 그런 반응인 걸 보고 ‘이거면 됐어, 내 할일 다 했어’란 생각을 했죠. <보통의 존재> 이석원씨도 제게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것 먹은 이야긴데 왜 이렇게 애틋하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아, 할만큼 했구나’ 싶었어요.
음악을 만들 때도 많은 사람한테 사랑 받는 게 더 좋지만, 결국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의 결과물을 좋게 생각해 주는 거에요. 빈말 하지 않는 두 사람이 그렇게 평가해주는 걸 확인하고 보니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랑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해주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 책이 제 인생의 역작은 아니지만, 20대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담았고, 솔직하게 제 얘길했다는 점에 만족해요. 앨범의 경우에는 쟈켓부터 끝까지 모든 것에 관여를 하지만 책만큼은 관여한 바가 없어요. 그런데 커버나 편집에 대해서도 만족해요. 특히 저의 베스트프렌드 일러스트레이터 변유정양이 책 속 일러스트를 그렸어요. 그 친구도 저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인데, 제 마음 속에 있는 조그마한 속살까지도 잘 알고 있죠. 저는 솔직히 제 글이 ‘아저씨스럽다’고 생각하는데요, 머쓱해서 책에서도 숨기고 음악에서도 안 보여준 부분들을 친구가 그림으로 잘 표현해 준 것 같아요.
알라딘 : (간간이 쾌속 혹은 특급 열차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보통 열차’의 컨셉을 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오지은 : 컨셉을 정한 건 아니었고, 특급을 타면 빨리 도착하는 반면 보통은 저렴하기도 하고 천천히 풍경을 즐길 수가 있어서 탔어요.
알라딘 : 일본여행 시 추천하고 싶은 명소나 꼭 해봐야 할 일이 있다면요?
오지은 : 유스호스텔에서의 숙박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다른 여행자들과 섞여서 생활한다는 게 꽤 신선한 일이거든요. 저녁을 다같이 모여서 먹기도 하고, 영어로나마 짧게 외국인과 대화해볼 수도 있고요. 저는 유스호스텔에 머무르면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카라멜도 만들어 봤어요.(책에도 소개된 내용)
알라딘 : 2차 예정 여행지 혹은 희망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오지은 : 실현이 안될 가능성이 크지만, 스위스 철도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인생을 살다가 갑갑한 일이 생기면 한번쯤 해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가 다닌 코스 그대로 겨울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알라딘 : 추천하고 싶은 도서는?
오지은 :
타무라 유미 <바사라>, 특히 '20대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무라카미 류 <교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알라딘 : <홋카이도 보통 열차>를 읽을 때 함께 들으면 좋을 앨범은?
오지은 :
Pizzicato Five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3581257572
Roberta Flack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217572926
알라딘 : 책을 다시 한번 집필할 의향이 있는지요?
오지은 : 글쎄요. 이야기 거리가 생기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웃음)
알라딘 : <홋카이도 보통 열차>는 20대의 정리이자, 30대의 새로운 시작을 모두 의미하는 책이 됐을 것 같아요. 20대를 거친 인생 선배로서 현재의 또 다른 20대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 혹은 이것 만큼은 꼭 해봐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오지은 : 20대에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했고, 그걸 수습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어른들이 말리는 이유가 있구나 뼈저리게 깨달았죠. 감기를 호되게 앓고 나면 면역이 잘 생기는 것처럼 30대를 잘 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한 길로 갔다가 넘치는 강물도 만나고 센 바람도 만나면 나중에 힘든 일을 겪어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30대에 무너지는 것보다 보다 어린 20대에 무너져 보는 게 회복하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는 길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1,2년 늦는 것도 상관 없으니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옳지 않나 생각해요.
알라딘 : <대책 없이 해피엔딩> 김연수 & 김중혁 저자 행사에 참석했을 때가 기억 나네요. 어떤 20대 독자께서 작가분들께 ‘스무 살에 꼭 해보길 권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두 작가분께서 다른 대답이었지만 결국 같은 대답을 해주셨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을 해라’ 그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네요.
향후 10년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다음 앨범의 발매시기 및 컨셉에 대한 간단 힌트도 부탁드립니다.
오지은 : 1,2집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3집은 완결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요. 1,2집 보다 3-4배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지은과 늑대들’(10월 혹은 11월 중 발매 예정 음반)은 밝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3집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에요. 신나는 음악은 일방적으로 뿜어내는 게 아니고 관객들과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는 거잖아요. 큰 일(2011년 발매 예정인 3집)을 하기 전에 그 에너지를 받아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2집은 묵직한 진심에 대해서 노래 했고, 묵직한 진심을 가진 사람이 친구들을 만났을 때 하는 농담이 ‘오지은과 늑대들’에 담겨 있어요. 듣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에요. 제 우울함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싫어하실 수도 있어요. 저는 어쩔 수 없는 우울한 인간이라, 결국 우울한 음악을 할 거에요. 뽕잎을 먹어봐야 솔잎의 맛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땅굴만 파다가 하늘 위로 올라가봐야 땅 위의 모습을 잘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3집은 내년 하반기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폭넓은 음악, 1,2집 보다 발전한 촉촉한 음악을 선보일 것 같아요. 1,2집은 작고 깊은 어떤 것이었다면 3집은 더 총괄해서 풍부하지만 예민한 어떤 것이 될 것 같아요.
3집을 내고 나서는 엄마 되기.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웃음)
알라딘 : “오지은에게 있어 사랑은.. 여행은.. 음악은.. 이것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세요.
오지은 : 음악은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과 연관된 것이고, 여행은 힘든 인생의 순간에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고,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알라딘 : 알라딘 독자들께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오지은 : 알라딘에는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 깊이 있게 아시는 분들이 참 많이 계신 것 같아요. 그런 분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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