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클리오 > 문화에 매달린 우리들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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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옛날 사람들은 세로 쓰기를 하므로 시선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가고, 지금 사람들은 가로 쓰기를 하므로 시선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간다. 그래서 옛날 예술작품, 특히 회화를 감상할 때에 그림에 묘사된 핵심을 잘 파악하기 힘들다.. 라는 내용이었다. '생각의 지도'는 동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를 다룬 책인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나고 자란 공간의 문화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내가, 혹은 사람들이 어떤 것은 나의 독창적인 생각이며,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게 공유하는 문화적 특성이었던 부분이 많다. 이 책의 번역자인 최인철 교수도 저자와 함께 많은 부분 실험을 함께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함께 실험을 따라가본 결과 나 역시 대부분의 동양인, 혹은 한국인의 전형과 한치의 차이도 없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 풀, 닭' 중 관련있는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에서, 소와 풀을 연결시켜놓고, 아무리 생각해도 소와 닭을 서양인들이 연결하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겠는 것이다. 물론 나라고 무슨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고 주변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할까마는.. 내 머리로 열심히 생각하고 주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실은 문화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 스스로가 마치 무슨 원격조정 로보트 같다. 그래서 기어츠는 '문화라는 그물망(거미줄)에 매달려있는 인간'(정확한 표현인지) 이라는 표현을 했던가.

군데군데 전문용어로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나 자신의 사고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한때 유행하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아는 것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보면, 서양인들의 사고방식과 습관에 대해 이해하는 것에도 더 도움을 받은 것 같고. 덧붙이자면 이 책의 원저 'the geography of thought'에 대해서 말인데,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고른 '생각의 지도'도 뭐 나쁘지 않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사고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에 대해 서술한다면 '생각의 지리학'이라든가, '생각의 배열, 형세' 같은 것도 제목으로 타당할 듯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또 역자의 말을 읽어보니 방향을 모르던 '생각'이라는 신대륙의 지도를 그린다는 의미에서보면 탁월한 제목이기도 하고..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은 여태까지의 경우 어느 한쪽의 우월함을 나타내고자 한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었는데. 이 책은 다르다. 그러한 사고의 차이가 어디서 나타나는가를 '공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상징하여 나타내고, 동서양이 어느 면에서 더 나은가를 살피고, 그것을 보완해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전체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의 사례를 살피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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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쉬쏭 > 동서양 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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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이런 질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재삼 떠오르고, 또한 책에서 저자도 거론하는 내용이다.
          -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게 생각한다. 왜 그럴까?
          - 과거 동양의 발달된 문물과 문화를 가졌으나 현재 왜 서양의 과학문명이 더 득세하고 있을까?
          - 동양인이 더 똑똑하다(?)고 하는데 왜 서양인 보다 뒤쳐지고 있을까?
          - 동양의 세계최초는 더 많은데 왜 현재의 서양이 과학문명에서 앞서가고 있을까?
          - 왜 동양인 보다 서양인이 노벨상 수상자가 더 많을까? 그것도 앞도적으로.

     이런 질문들은 숱하게 해 왔던 질문들이다. 상대적으로 못살고, 부강하지 못하고, 열세에 몰린 나라에 살고 있는 동양인의 원천적인 질문 내용일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서의 내용으로 이 책이 참고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원론적인 질문에 대해 작가는 각종 실험과 설문을 통해 얻어진 현상에 대한 결과와 그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상호 강점을 도입하여 상호 취약점에 대한 보완을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현상들에 대해 각종 실험과 설문을 통해 막연히 알려진 사실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책의 목차에 나와 있는 내용을 추려보면 동양은 도, 더불어 사는 삶, 전체, 상황론, 동사, 경험 등의 단어들이 나열되고, 서양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개념의 단어들이 거론된다. 삼단논법, 홀로 사는 삶, 부분, 본성론, 명사, 논리 등의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만의 내용을 봐서 동양은 전체 조직에서는 나를 찾고, 그런 상황에 연관되어 오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며, 서양은 개인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으로 보여진다. 이런 내용은 누구든 짐작이나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내용이나 보다 명확하고, 과학적인 탐구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과연 동양의 사고체계와 서양의 사고체계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냐는 의견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절충형으로 서로의 강점을 도입하여 취약한 부분에 대해 보완해 가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실례는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아오고 있으며, 기업활동들의 내용을 보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해외 화재 등의 뉴스를 통해 서양에서 동양문화를 접목하는 방법에 대한 소개를 통해 단편적인 내용도 접할 수 있다.

     이런 동서양의 생각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그 활용 방안에 있어 과거 이해되지 못했던 동양사회의 모습과 서양 기업의 진출과 그를 통해 직간접으로 접하게 되는 서양문화는 많은 오해와 사람들의 열등의식을 특히, 동양인에게 심어 왔다고 생각된다. 허나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는 근거를 이 책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문명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구가하는 서양문화와 이를 통해 동양세계에 힘과 권력을 행사하면서 상대적으로 동양인의 심적 위축을 주었던 과거의 역사를 보면서 동서양의 우월성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간접적으로 행해져 왔고, 그런 생각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었으나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우열의 내용은 동서양의 문명 발상지의 지형적인 특성과 그로 인한 삶의 패턴의 변화로 서로 다른 방법론을 통해 저자가 얘기하는 동서양의 생각의 방법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코 누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며, 상호 특장점이 있는 내용이므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서양의 문물이 한국 내에서 좋은 것, 본받아야 할 것으로 강제적인 주입이 아니라 우리의 취약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내용은 보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내용의 강화와 핵가족화하는 사회환경 속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워오는 우리의 사회환경이 점차 변화되고 있다. 이런 내용이 소위 서구화되고 있다고 하는 내용일 것이다. 허나 저자가 얘기하는 내용으로 보면 이런 한국내의 의식의 변화가 결코 서구화의 내용으로 인지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어떤 방법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보다는 서로의 강점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그 다양화 할 수 있는 방법론 적인 연구가 더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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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를 실험한다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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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서평란에 소개된 글을 보고 점찍어놨다 구입하게 된 책이다. 구입한지는 한달도 더 됐지만 이제서야 보게됐다.

 실제 <생각의 지도>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럴 듯한 대단한 뭔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치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을 꿰뚫는 어떤 성찰을 담아내고 있을 것 같은 책의 제목은, 그러나 사실상 책을 열어보면 그다지 기대했던 바에 못미침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책에 실망했다. 그것은 책 제목을 통한 나의 기대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나의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 뿐이다.

 <생각의 지도>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이 쓰고, 그의 제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번역했다. 아무래도 저자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의 번역이라 저자를 오해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는 안심해도 좋다. 대개의 '번역'이란 저자의 실제 의도와 번역자의 해석간의 차이를 항상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줄여 저자의 말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했다면 잘된 번역이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면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일단 번역은 믿고 가자.

 동양의 사고 방식과 서양의 사고 방식.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그리 말한다. 다른 이들은 모두가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강의 차이점을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바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채 어떤 '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와 그의 연구진들은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각종 실험을 한다. 그리고 실험결과를 통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도출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기준은 문명과 문화다.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각기 그 사람이 발붙여 사는 땅의 문명과 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애초 미국에서 태어나 계속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서양의 문명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며, 동양은 중국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단체와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으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탁월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반면, 동양의 문명의 시점인 중국에서는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의 탁월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의 우애와 관계를 중시했고 튀지 않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로부터 서양에서의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 리'이지만, 동양에서으 권리는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된다.

 대략적인 동서양의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동양인은 사물을 볼 때 전체 속에서 조화를 중시하며, 서양인은 각 사물의 개별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어떤 풍경을 보여줬을 때 동양인은  풍경의 전체적인 구성을 쉽게 기억하지만 서양인은 특별한 사물 하나에 집착한다.
 또, 교실에서 동양에서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가며, 서양에서는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왜'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간다. 이는 서양인들이 사건을 인과관계에서 보기 때문이다. 목표지향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사건속의 인물과 사건정황과의 관계적 맥락을 중시하기에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실생활의 부분의 경험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도출해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은 꼭 그러한 사고를 하고, 서양인은 꼭 이러한 사고를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동서양인의 '경향성'을 도출한 것이지 어떤 특정 개인의 성향을 가리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면서 서양인보다 더 서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결과를 통해 나는 동양인이니까 이런 거구나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가지 덧붙이지만 저자 역시 책 뒤에서 잠깐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섀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문명의 종말>과 함께 읽으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세계정세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이 생길 수도 있겠다. 더불어 내가 한가지 더 추천하고자 한다면, 나 역시 읽지 않은 책이지만 하랄드 뮐러의 <문명의 공존>도 함께 읽으면 <문명의 충돌>에 맞서는 다른 견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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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haire > 10억 vs. 20억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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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약 10억 정도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20억 정도는 고대 중국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와 중국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 구조 면에서 매우 달랐을 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명에 있어서도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혹자들은 두 나라 사람 모두 ‘다혈질’이라는 점을 든다. 또 어떤 사람은, 이탈리아 남자나 한국 남자나 모두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종족이라는 이야기를 즐겨 곁들이곤 한다. 그러나, 여자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두 나라뿐일 것이며, 유독 두 나라 사람들만 다혈질은 아닐 터. 국가마다, 인종마다 어떤 고유의 성향(혹은 심리적 인지 프로세스)을 지닌다, 는 말은 그래서 아주 합리적으로 따져보자면, 인간 개체의 특질과 가능성을 말소시키는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물론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받는 존재임에 분명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이 이상한 소극성과 생래적 무력감이 ‘한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인간은 모두 대체로 비슷하거나, 조금씩 다 다르다고 말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가 시도하는 작업은 ‘사회인’이자 ‘세계인’이 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흥미를 던진다. 미국의 대표적 문화심리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리처드 니스벳 박사는 그간 여러 학계에서 수시로 제기되어온 몇 가지 의문을 시작으로, 서양과 동양 간에 차이를 드러내는 ‘생각의 지도’를 그려보는 연구에 착수했다.

- 왜 동양인들은 기하학을 발달시키지 못한 반면 고대 그리스는 기하학에서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까?
- 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보다 사건들 간의 관련성을 잘 파악하는 것일까?(다시 말해 서양인들은 좁은 범위의 ‘그것’을 보고, 동양인들은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집착할까?
- 왜 동양인들은 명백하게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것을 모두 인정하는 걸까? 즉, 서양인들은 흑과 백을 명백히 구분하지만, 동양인들은, 흑이 심지어 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위에 제기되는 질문들은 이 책에서 진행하는 연구의 과정이자, 시작이자, 또한 결론이다. 질문은 ‘왜’이지만, 심리학자인 저자는 그 ‘왜’에 대해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는(있다고 믿는) 양 문명(그것을 ‘서구 문명’, ‘동양 문명’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다면)간의 사고 체계를 다소의 통계와 심리실험 수치를 갖고 구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우리가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던 동양인들의 심리적 특성, 그리고 서구인들의 가치관들을 명약관화하게 대별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 왜 동양권의 국가에서 유독 ‘독재자’들이 많았던 것일까? 저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문화권에서와는 달리 그리스(서구 문명 및 철학의 기원이랄 수 있는 그곳)에서는 국가의 중대사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독재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는 대신 과두 정치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참여정치적 방법론이 일찍 태동했다는 것이다(어떤가? 그럴 듯한가?). 사실 그리스는 여러 가지로 놀라움을 주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그 나라는 철저히 ‘이성 중심적’이며, ‘개체 중심적’이다. 그리스 이래로 이런 성향은 서구 문명권 아래 자라난 모든 국가들의 사고방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의 호기심’에 달라붙어, 한 가지 주제로 집약해가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여주었다. 플라톤은 감각과 논리가 대립될 때, 당연히 감각을 무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은 감각적이거나 우연적인 어떤 속성이 아니라, 속성 그 자체이다. 그 속성을 탐구하는 데 서구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확대를 가져왔다. 반면 유교적 사고로 대변되는 동양인들은, 그들보다는 좀더 ‘실제로 사는 일’에 바빴다. 실용적인 것은 중요하나, 본질적인 것을 따지는 일은 좀더 불필요한 일로 여겨졌다.

이 책에는 풍부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과 서양은, 철저하게 다르다. 동양인들은 더불어 살고, 서양인들은 홀로 산다. 동양인들은 전체를 보고 서양인들은 부분을 본다. 동양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살피고, 서양인들은 상황이야 어쨌든 ‘본래의 어떤 불변하는 것’에 삶의 무게 중심을 둔다. 이런 것들을 리처드 니스벳은 ‘동사’와 ‘명사’라는 언어적 차이로 표현하기도 한다. 동양인은 ‘동사’를 통해 사고하고, 서양인들은 ‘명사’로서 사유한다는 거다.
결국 저자는 이러저러한 차이들의 지형을 심리학적, 문화적으로 분석, 통찰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과학적인 분석법은 당연히 서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연구 자체가 저자에 따르면 ‘서양적’이다. 저자의 말대로 동양인들은 범주화에 약한 반면, 서양인들은 무슨 사물이든 범주화시키려 드니까. 쉽게 말해 우리 동양인들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식의 사고방식이 뼛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차이’를 따지는 데 있다기보다는, 인간이 어떤 사안에 대해 반응하는 다채로운 방식을 살펴보는 데 있다. 동일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살인의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 사람의 악한 성격, 즉 인격적 결함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정답은 ‘둘 다’일 터이다). 전자는 동양인 중에 많았고, 후자는 서양인 중에 많았다. 이 책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무궁무진하다. 동양과 서양의 엄마들이 자녀에게 말을 가르칠 때, 어떤 ‘예문’을 드는지도 따져보니 상당히 다르고, 각 문명의 노동자들이 ‘회사와 중간관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심리 테스트들 역시, 저자의 동․서양 문명 비교의 근거 자료들이 되어주고 있다.
그 다양한 심리 실험 문항을 읽는 재미와 함께, 더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놀랍게도 ‘동양인’인 나는 철저히 ‘동양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니스벳이 제시한 몇몇 질문들에서, 많은 동양인들이 선택했다는 항목과는 전혀 다른 항목에 나는 동그라미를 친 적이 많았다. 생각건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양인들이 이미 ‘서구적 패턴과 사유체계’로 학습되고 있다. 반대로 더 많은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사고방식을 배우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대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익하다. 보다 논리적인 서양, 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양쪽 모두 장점과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다소 김빠지는 이야기가 이 책의 끝무렵을 차지하고 있다. 동양인 특유의 후견지명 효과를 발휘하자면, “나는 이 책이 이럴 줄 알았다.”

저자는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서 이중문화적이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를 이 연구의 결론으로 내놓고 있다.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가자는 것인데, 이것 역시 저자가 ‘세상을 덜 복잡한 곳’으로 인식하는 서양인이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물론 나는 ‘이중문화적이다’라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공자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는데, 이는 동양인들을 두고 한 말이 틀림없다.”(나를 두고 한 말임에도 틀림없다) ‘합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조금 다른 뉘앙스를 띤다. 굳이 구별하자면, 동양인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서양인들은 보다 논리적인 정도의 차이를 가진 게 아닐까. 철학자 류슈센이라는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인은 매우 합리적이어서 지나치게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는 것을 거부하며... 또한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니까 A가 참이지만, B 또한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저 전형적인 가치 판단 스타일에서 나 역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다. 왜 서양인들은 이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의 ‘기원’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의 제7장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많이 들어봤음직한 얘기, 즉 지리학적 차이(농경사회/수렵사회), 경제적 차이(농업 중싱, 농촌 중심/상업 중심, 도시 중심)... 등등의 원인 때문인 걸로 해명하고 있다. “농경이 주산업이었던 중세에는 서양도 그리 개인주의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의 유럽 농부들은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행동양식에서 중국의 농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오늘날의 차이는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외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저자가 어느 날,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왜 이렇게 다른지 한 중국 철학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중국인 철학자의 대답 : “그야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고, 동양에는 공자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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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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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남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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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에는 오마주(hommage)란 말이 있다. 창작자인 감독이 자신의 특별한 존경을 담아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 오마주는 불어로 존경과 경의를 뜻한다.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오마주의 방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한다.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한자로 쓰면 "불초(不肖)"가 된다. '불초'란 말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로 "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의 역대 최고 성왕으로 꼽히는 요순 두 임금은 그 자식들의 부족함을 알아 그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그 자식들은 부모를 닮지 못했기에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고, 요순임금이 친자식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그 덕으로 백성들은 편했다는 뜻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은 불효이므로 우리는 부모님께 나아가 자신을 이를 때 불초자, 혹은 불토소생이라 한다. 이 책 "김민기"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가수이자, 뛰어난 작사,작곡가, 그리고 엄혹했던 유신 시대 우리 가슴을 덥혀주었던 한 음악가의 작업들을 한 눈에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는 실용적인 미덕과 우리가, 김민기와 동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들과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해준 김민기에게 보내는 마음의 헌사, 즉 오마주라는 것이다.

한울출판사에선 동명의 책 "김민기"를 이전에도 출판한 적이 있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민기의 최근 행적과 민주화의 더딘 진전에 따라 이전엔 담을 수 없었던 내용을 보강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정판이자, 앞으로도 보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김민기"는 모두 7장(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노래일기 연이의 일기, 노래굿 공장의 불빛, 소리굿 아구, 디스코프래피, 노래 일지와 악보, 비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4부의 구조를 갖고 있다. 우선 여는 글로 김창남(성공회대 교수), 김지하(시인, 소설가)의 글을 담고, 김민기의 작업들(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을 살필 수 있는 악보와 대본, 그리고 김민기의 디스코그래피(노래일지와 악보, 연보를 포함해서), 김민기와의 대담 및 그에 대한 리뷰들을 담고 있다. 김민기의 세계적인 활약상을 보여주듯 이 책에는 김지하, 김창남을 비롯해 지하철1호선의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 중국의 쾅신니엔(청화대 교수), 미국의 카터 J. 에커트(하버드대 교수), 일본의 카라 쥬로(극작가, 배우) 등이 총망라되고 있다.

지난 연말(2004년)에 나는 지인에게서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티켓 2장을 선물 받았다. 이전부터 "지하철1호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움직이는데 둔한 편이라 공연을 직접 본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가 지인의 후의로 학전소극장에서 "지하철 1호선"을 볼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해 문외한 입장에서 공연의 질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 뮤지컬을 통해 그간 배출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공연이 어떤 것일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설경구, 이미옥, 방은진, 나윤선, 오지혜, 황정민, 장현성 등이 이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시도 자체가 우리 뮤지컬 연극 공연사의 신기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994년 5월 초연 이후 10년여가 지난 오늘까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 애환을 담아 50여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68혁명을 거친 뒤 "밥 딜런"이 포크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로 무대에 올라섰을 때, 대중들은 밥 딜런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수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서구는 일제히 우향우하며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밥 딜런은 오랫동안 잊혀졌고, 그 와중에 청춘의 광폭한 질주를 노래했던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국엔 김민기가 나타난다. 김민기란 이름 석자는 70년대 우리 사회의 청춘문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청춘은 오래지 않아 창살 아래 갇혀버리고 만다. 그는 갇혔지만 그의 노래들은 자유를 노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갈구했던 시대의 요청 속에 노래를 널리 퍼졌다.

어두운 공기 속에서 노래는 널리 퍼졌고, 우리는 교과서를 배우듯 "아침이슬"에서 "상록수""늙은 군인의 노래"에서 운동가로 넘어갔다. 운동가로 넘어간 사람들은 김민기의 노래들이 선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민기는 그렇게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민기는 1979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80년의 봄은 김민기의 봄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오랫동안 잊혀졌다. 광주 학살로 등극한 정권은 정권대로,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 날카로운 무기를 갈고 다듬어야 했던 이들은 이들대로 김민기를 불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90년대 김민기의 투명한 불투명을 지탄했던 이들은 다시 김민기로 돌아왔다.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였을 뿐이란 걸 우리들은 그제사 알 수 있었다.

재일 작가 김중명은 김민기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다. 도취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비에 넘친 슬기인 것이다. 사랑스런 사람의 살갗의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이 들려오고 머리카락의 향내가 풍겨오는 그 알맞은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민기의 노래는 그러한 노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김민기의 노래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의 노래들은 가두 시위 장소에서, 운동장에서, 예배당에서, 불시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마지막길을 애도하는 장례식 장에서 불렸다. 그가 애초에 이 노래들을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쓰이길 바라고 만든 노래들이 아님에도, 아니,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노래들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불릴 수 있었다. 김민기는 사랑이란 낱말 이전에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그 뒤에 등장한 표현기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김민기에게 사랑은 구체적인 느낌이자 실천이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태여 입 밖으로 사랑이란 낱말을 뱉아내야만 사랑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의 궁핍한 변명이다.

* 김민기는 여전히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실험들 하나하나가 우리 문화사의 중요한 씨앗들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 실험들은 자본과 기술의 우월을 앞세워 들이닥치고 있는 서구의 상업 뮤지컬들에 맞선 다윗의 고독한 돌팔매질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거의 3만원에 가까운 책값이지만 판형이나 지질,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은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있다. 김민기 전집은 네 장짜리 CD로 나와 있으니 기왕지사 이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이들은 그 CD들과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은 청명한 밤공기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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