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haire > 10억 vs. 2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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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평점 :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약 10억 정도가 고대 그리스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20억 정도는 고대 중국의 지적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와 중국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 구조 면에서 매우 달랐을 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명에 있어서도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탈리아인과 한국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혹자들은 두 나라 사람 모두 ‘다혈질’이라는 점을 든다. 또 어떤 사람은, 이탈리아 남자나 한국 남자나 모두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종족이라는 이야기를 즐겨 곁들이곤 한다. 그러나, 여자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두 나라뿐일 것이며, 유독 두 나라 사람들만 다혈질은 아닐 터. 국가마다, 인종마다 어떤 고유의 성향(혹은 심리적 인지 프로세스)을 지닌다, 는 말은 그래서 아주 합리적으로 따져보자면, 인간 개체의 특질과 가능성을 말소시키는 어불성설이다. 인간이 물론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받는 존재임에 분명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이 이상한 소극성과 생래적 무력감이 ‘한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인간은 모두 대체로 비슷하거나, 조금씩 다 다르다고 말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가 시도하는 작업은 ‘사회인’이자 ‘세계인’이 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흥미를 던진다. 미국의 대표적 문화심리학자로 떠오르고 있는 리처드 니스벳 박사는 그간 여러 학계에서 수시로 제기되어온 몇 가지 의문을 시작으로, 서양과 동양 간에 차이를 드러내는 ‘생각의 지도’를 그려보는 연구에 착수했다.
- 왜 동양인들은 기하학을 발달시키지 못한 반면 고대 그리스는 기하학에서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까?
- 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보다 사건들 간의 관련성을 잘 파악하는 것일까?(다시 말해 서양인들은 좁은 범위의 ‘그것’을 보고, 동양인들은 ‘그것을 둘러싼 맥락’에 집착할까?
- 왜 동양인들은 명백하게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것을 모두 인정하는 걸까? 즉, 서양인들은 흑과 백을 명백히 구분하지만, 동양인들은, 흑이 심지어 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위에 제기되는 질문들은 이 책에서 진행하는 연구의 과정이자, 시작이자, 또한 결론이다. 질문은 ‘왜’이지만, 심리학자인 저자는 그 ‘왜’에 대해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는(있다고 믿는) 양 문명(그것을 ‘서구 문명’, ‘동양 문명’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 있다면)간의 사고 체계를 다소의 통계와 심리실험 수치를 갖고 구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우리가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던 동양인들의 심리적 특성, 그리고 서구인들의 가치관들을 명약관화하게 대별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 왜 동양권의 국가에서 유독 ‘독재자’들이 많았던 것일까? 저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문화권에서와는 달리 그리스(서구 문명 및 철학의 기원이랄 수 있는 그곳)에서는 국가의 중대사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독재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는 대신 과두 정치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참여정치적 방법론이 일찍 태동했다는 것이다(어떤가? 그럴 듯한가?). 사실 그리스는 여러 가지로 놀라움을 주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그 나라는 철저히 ‘이성 중심적’이며, ‘개체 중심적’이다. 그리스 이래로 이런 성향은 서구 문명권 아래 자라난 모든 국가들의 사고방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의 호기심’에 달라붙어, 한 가지 주제로 집약해가는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여주었다. 플라톤은 감각과 논리가 대립될 때, 당연히 감각을 무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은 감각적이거나 우연적인 어떤 속성이 아니라, 속성 그 자체이다. 그 속성을 탐구하는 데 서구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확대를 가져왔다. 반면 유교적 사고로 대변되는 동양인들은, 그들보다는 좀더 ‘실제로 사는 일’에 바빴다. 실용적인 것은 중요하나, 본질적인 것을 따지는 일은 좀더 불필요한 일로 여겨졌다.
이 책에는 풍부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과 서양은, 철저하게 다르다. 동양인들은 더불어 살고, 서양인들은 홀로 산다. 동양인들은 전체를 보고 서양인들은 부분을 본다. 동양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살피고, 서양인들은 상황이야 어쨌든 ‘본래의 어떤 불변하는 것’에 삶의 무게 중심을 둔다. 이런 것들을 리처드 니스벳은 ‘동사’와 ‘명사’라는 언어적 차이로 표현하기도 한다. 동양인은 ‘동사’를 통해 사고하고, 서양인들은 ‘명사’로서 사유한다는 거다.
결국 저자는 이러저러한 차이들의 지형을 심리학적, 문화적으로 분석, 통찰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과학적인 분석법은 당연히 서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연구 자체가 저자에 따르면 ‘서양적’이다. 저자의 말대로 동양인들은 범주화에 약한 반면, 서양인들은 무슨 사물이든 범주화시키려 드니까. 쉽게 말해 우리 동양인들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식의 사고방식이 뼛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차이’를 따지는 데 있다기보다는, 인간이 어떤 사안에 대해 반응하는 다채로운 방식을 살펴보는 데 있다. 동일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살인의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 사람의 악한 성격, 즉 인격적 결함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정답은 ‘둘 다’일 터이다). 전자는 동양인 중에 많았고, 후자는 서양인 중에 많았다. 이 책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무궁무진하다. 동양과 서양의 엄마들이 자녀에게 말을 가르칠 때, 어떤 ‘예문’을 드는지도 따져보니 상당히 다르고, 각 문명의 노동자들이 ‘회사와 중간관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심리 테스트들 역시, 저자의 동․서양 문명 비교의 근거 자료들이 되어주고 있다.
그 다양한 심리 실험 문항을 읽는 재미와 함께, 더 재미있는 것은, 오늘날 놀랍게도 ‘동양인’인 나는 철저히 ‘동양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니스벳이 제시한 몇몇 질문들에서, 많은 동양인들이 선택했다는 항목과는 전혀 다른 항목에 나는 동그라미를 친 적이 많았다. 생각건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양인들이 이미 ‘서구적 패턴과 사유체계’로 학습되고 있다. 반대로 더 많은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사고방식을 배우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대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익하다. 보다 논리적인 서양, 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양쪽 모두 장점과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다소 김빠지는 이야기가 이 책의 끝무렵을 차지하고 있다. 동양인 특유의 후견지명 효과를 발휘하자면, “나는 이 책이 이럴 줄 알았다.”
저자는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서 이중문화적이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를 이 연구의 결론으로 내놓고 있다.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가자는 것인데, 이것 역시 저자가 ‘세상을 덜 복잡한 곳’으로 인식하는 서양인이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물론 나는 ‘이중문화적이다’라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공자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는데, 이는 동양인들을 두고 한 말이 틀림없다.”(나를 두고 한 말임에도 틀림없다) ‘합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조금 다른 뉘앙스를 띤다. 굳이 구별하자면, 동양인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서양인들은 보다 논리적인 정도의 차이를 가진 게 아닐까. 철학자 류슈센이라는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인은 매우 합리적이어서 지나치게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는 것을 거부하며... 또한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니까 A가 참이지만, B 또한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저 전형적인 가치 판단 스타일에서 나 역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다. 왜 서양인들은 이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의 ‘기원’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의 제7장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많이 들어봤음직한 얘기, 즉 지리학적 차이(농경사회/수렵사회), 경제적 차이(농업 중싱, 농촌 중심/상업 중심, 도시 중심)... 등등의 원인 때문인 걸로 해명하고 있다. “농경이 주산업이었던 중세에는 서양도 그리 개인주의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의 유럽 농부들은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행동양식에서 중국의 농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오늘날의 차이는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외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저자가 어느 날,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왜 이렇게 다른지 한 중국 철학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중국인 철학자의 대답 : “그야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고, 동양에는 공자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