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아라리오 > 진실 된 교육을 위한 나부터 교육 혁명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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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교육계에서는 엄마 아빠가 달라져야 교육이 산다는 주제가 큰 의미로 대두 되고 있다.

그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 된다는 것이다. 가정의 주역인 우리들이 해아 할일에 대해서 강수돌 교수는 나부터 교육혁명을 강조 한다. 즉 가정의 일원인 우리 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가 되고 있는 학교의 선생님의 인식도 또한 강조 한다. 가정은 우리들의 인식, 아이들이 해야 할일은 강조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할수 일은 직업 의식을 강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의식은 아이들의 자아 의식을 발전 하는자아 발전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교육은 쓸모 있는 노동력을 양산하는 공장시스템을 강요 했다는 것이다.  20년의 과거 교육은 다양한 잠재력과 고유의 꿈과 소망을 가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오러지 일개 생산요소로 축소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정은 대부분의 이러한 학교 교육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여 우리 아이들은 직업이라는 전선에산업 전사로 양산되었다. 따라서 우등생 즉 학교에서 배우는 암기식의 교육과 적성에 맞지 않는 여러 과목들의 다양한 하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교육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현시대 즉 세계화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산업전사로서는 살아가기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현실에 반기를 든우리 신 선생님들의 의식은 자아 발전을 그 모토로 삼았다. 우리 아이들은 좋아 하는 것에 항상 관심을 갖게된다. 그 러한 좋아 하는 문제 의식에 우리 현 교육은 너무나도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신 교육자들은 아이들에서 좋아 하는 과목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의식을 그리고 더 깊은교육을 아이들에게 여과 없이 인식시킴으로 전문인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인도 하였다. 이러한 현 교육을 강수돌 교수는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으로 생각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 아이들의 자아발전이 왜곡되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연간 우리 교육시장은 가정에서 가사 부담금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여기에 강수돌 교수는 나부터 교육혁명을 주제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 하고 있다. 학원이나 사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자아를 발전 시킬수 있는지 의심을 갖고 있다. 자아발전은 우리 부모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지식이나 기능 보다 우리 아이들의 실력개념을 확장한 지혜의 차원 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자아발전을

우리 가정에서는 지혜를 교육이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의 그주제 이다. 사람은 최고의 자원이라고 한다. 또한 최고의 생산력은 사람 의 인식안에 대안교육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지혜를 가지고 그 지혜를 이용한 전문인으로 키워 그 생산력인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우리 교육의 목표 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역이 항상 존제 한다. 그것은 사회의 잘못된 환경이 만들어진 문제아이다. 그것의 대한으로우리 사회의 조급증을 버리라는 것이다. 문제아는 하루아침에 우등생이 되는 것이아니다. 그조급증이 점점 문제아를 더더욱 문제아로 만드는 것이다.그 조급증을 버리고 ,  칭찬과 의욕을 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수돌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변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양 하고 우리 자체가 변하는 나부터 교육 혁명을 강조 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가 먼저 교육혁명을 이끌어내어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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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즘 - 남자들에 갇힌 여자
정해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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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성과 여성. Sex 는 결코 위, 아래를 결정지을 수 없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실로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가치 체계에 의하여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사회의 주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으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남성은 으레 여성의 일을 돕는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여성인 나에게 조차도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전에 같은 내용의 글일지라도 남자 아이의 이름과 여자 아이의 이름을 쓴 후 그 글을 평가해보았을 때 전자에 대해서는 진취적이다, 논리적이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반면, 후자에 관해서는 감정적이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주어진 두 글에 있어서의 차이는 단지 이름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과 여성을 평가하는 틀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인구의 반은 여성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기준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남성의 언어가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은 성공을 위해 남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여성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이를 배우려 드는 남성은 없다. 이는 백인과 흑인, 영어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비영어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특정 언어가 명백하게 우월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반영인 것이다. 유독 여성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특히 성적 비하의 표현이 많은 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대변해준다. 같은 단어라도 남성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성적 비하의 뉘앙스를 여성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에서는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무심코 행해지는 성적인 발언들로부터 여성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적인 매력, 재생산의 능력을 제 1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의심 받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경제 위기 등이 닥쳤을 때 여성을 가정 내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좋은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제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교과서에는 여성을 하나같이 (치마를 입고 걸레질을 하거나 먼지를 털고 있는 등의)가사 노동의 주체로 그리고 있으나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이런 전통적인 역할이 전복되려 하는 현실을 위기로 진단한다. 초등학교 교사의 여초 현상은 문제시 되지만 대학 교수의 남초 현상은 이야기되지 않고, 대학 신입생 중 남성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성이 많은 것은 신문 기사 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체계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로는 여성들도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여성의 그것이 맞는지를 고민해야 된다는 것,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적 성은 남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심해야 된다는 것이 조금은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그것만이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세상을 노래할 수 있는 길이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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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푸른사막 > 상상을 통한 생각하는 즐거움.
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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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은 마치 상상 속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듯 마음 한 구석을 설레게 하면서도 고요하고 차분하다. 색채는 자극적이거나 강렬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어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예리하고도 날카롭다. 해지는 노을녘을 바라보고 책더미 위에 걸터 앉은 중년 신사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를 쓸쓸함과 연민을 느끼게 하고, 누군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책장 사이로 삐져나온 혀는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림을 보는데 있어서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그리고 한계도 없다. 그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고 느끼면 된다. 그것이 아마도 그림이 갖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기 전 글을 먼저 읽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과연 책 장의 뒷면엔 어떤 그림이 있을까를 머릿 속으로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실제로 그림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글들도 많았다. 그림을 그린 이의 심중이야 나같은 독자가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그림과 글 사이에 괴리가 있어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몇몇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그림을 이야기하는 글들도 있었으며, 내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글도 있었다. 그러나 책에 함께 실린 글은 또다른 누군가의 생각일뿐 거기에 구애받으며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놓친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상상을 통하여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림마다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의 책들은 책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그러기에 책그림책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책과 함께 상상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면 그 첫 장을 넘기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을 타고 지붕위를 날아올라 책과 함께 하늘과 달을 향해 자유로이 꿈과 상념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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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모습인지도..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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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이 책을 추천해주신 바람구두 님께 감사드립니다. 책의 존재도 몰랐었거든요...

오랜만에 손에서 놓지 않고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났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글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했다는 이야기이며 읽고 싶었다는 말은 내용 전개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더 멀리로, 특수한 부분에서 전체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현대 가족 이야기>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가족의 현실이라는 부제 답게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이라는 특수 사례를 매우 구체적인 인터뷰와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부수적인 '한국 가족의 현실'이라는 것은, 그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일반적인 가족과 동떨어져 있는가 혹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의 문제는 거의 '계급'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졌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가장 힘든 여건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신성하게까지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문제점을 설혹 발견한다해도 그것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의식을 동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책의 머리에도 나와있듯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살아가는지, 실제로 주5일제 근무와 대졸자보다 높은 임금으로 호화롭게 살아가는지는 궁금하면서도 감히 물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여성학을 전공하고 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저자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않았던 '노동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몇몇 분들이 이야기한데로 그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다른 차원에서만 맴돌던 여성문제/노동문제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흥미진진했다. 가장 흔하게 노동운동가들에 대해 하는 비판이 회사에서만 진보적이고 가정에서는 보수적인 가부장적 행태를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애사라는 연구방법 답게 이 책의 여성들의 삶은 남편의 지위와 출신 배경이 다를 지언정 절대로 다르지 않은 여성의 삶과 맞닿아있다. 가정을 이루고 남편들과 관계를 맺고 육아와 출산을 하고..물론 그 안의 세부적인 것은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으로 인해 두려워했다거나, 야간 근무 다녀온 남편이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서성인다는 충격적인 고백들이 있기는하지만. 혼자서 감당해야 되는 육아와 그 안에서 '완벽한 어머니' 노릇을 하려는 욕망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보통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남성, 특히 노동계급의 상황과 불화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결코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여성의 상황과 불만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것의 책임을 남성 개인에 돌리기 보다는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대한 통찰까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이건 기업의 상황에 대해서이건 결코 개인 차원으로 남겨두지 않고 거대 담론의 흐름까지 함께 꿰뚫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사를 전담해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잔업과 특근을 겸해야만이 보존이 가능한 가족임금제를 선택하며, 이러한 것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안정적 가정이기에 끊임없이 현모양처라는 여성의 역할을 세뇌시키는 자본의 논리 때문인 것이다. (주 5일제인 근무규정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하는 상황이며, 또한 그래야만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 노동자의 삶을 유지할만한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전과 현실이 얼마나 간격을 두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그러나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돌리자면 결국 자본 - 노동의 구도 밖에 남지 않겠지만, 역시 진보적이라는 노동운동가들도 '투쟁 기간이면 음식을 싸들고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여성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면에서 기업과 노동자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함께한다.

사원 집단 거주지에서의 정상가족에의 압박,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이 아닌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의 압박, 그중에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다움의 상징, 불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 고생하는 남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고마워할 것을 강요당하는 문화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이 책은 '현대(자동차) 가족'을 넘어 '현대(사회의) 가족' 모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고백하여 '나'를 드러내고, '객관'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쓰기로 이어진 저자의 학문적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부러움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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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현대 가족의 야누스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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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의 문을 지키고 있는 야누스는 기업이다. 핵가족이건 가사분담, 교육 심지어는 부부의 침대까지 지배하고 있는 기업. 기업 없이는 지금 우리의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거대한 자본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자본 없이는 유치원도, 소풍도 갈 수 없다. 위대한 오즈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가도가도 만날 수 없는 오즈의 마법사, 그러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오즈의 맙소사 형상을 하고 있어 할 말 없다. 원망의 근원지를 찾다 보면 지구를 떠나야 할 지도 모르니까 이쯤에서 다시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자.

이 한 권의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울산 이라는 나라에서 집단 거주를 하고 있는 그들의 일상은 텔레비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뙤약볕 아래에서 빨간 조끼, 빨간 띠를 한 사람들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야기한 것 보다 더 적나라하게 사장된 사장되고 있을 인권의 구린 냄새다. 그러나 어느쪽도 우월하고 열등하다고 볼 수 없으나, 적어도 인간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기업의 말은 절반 이상이 '구라' 라는 것도 확신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기업중에 하나였던 현대. 그 이름은 요즘 사회에서는 조금 덜 세련되 보이기도 하는 오늘날을 가르키는 명사이기도 하다. 어쨌든 현대에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실질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 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소설이건 어떤 글이건 사람의 일상이 들어있는 글을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가지와 그들이 기대고 있는 벽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상투를 틀고 쪽을 진 얼굴이다. 일하는데 방해되므로 한복을 걸치지 않았고, 집안 일 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데 불편하여 간편한 실내복을 입었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생활 방식은 언밸런스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들을 아직도 그렇게 살도록 만든 것은 결국 컨배이어 벨트가 쉼없이 돌아가야 하는 단순하고 열악한 노동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하는 노동은 그의 의식 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루 종일 단순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자기 중심적이고 단순한 사고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나는 무조건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은 과감히 삭제 시켜야 하므로 비판이 아닌 무시로 일관해버리곤 한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내가 갖고 있던 평소의 생각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나의 주의와 나의 가치관은 떼어놓고 진실의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가벼운 가십거리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유행이 지난 삶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불쌍히 여겨 아내들은 남편의 말에 복종하여 자연스럽게 위계 질서가 잡힌다. 주야 교대 근무와 철야, 특근 근무로 임금의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쓸 수도 없으며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나 수영과 운전 같은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과 집단성 때문이다. 또한 그녀들의 남편이 일하고 있는 직장, 현대 자동차의 구조적 모순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도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데 그것은 그들의 동질성이 가져다 준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이가 없으면 절대로 그들의 그룹에 끼여 수다를 떨 수도 없고, 남편이 가사 분담을 하거나 육아 서적만 쳐다 봐도 남자 망신 시킨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영남권 문화와 현대 자동차 에서 노동자들의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내들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면 남편이 어마어마한 대기업 (거대한 규모)에서 일하고 있어 자랑스럽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므로 더 잘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유명 인사들에게 듣는 재미난 강의에 기업에 유리한 조미료가 가미되있음은 듣지 않아도 자명한 일,  아내들은 집에 돌아와 저절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모양처가 되겠다고. 그러나, 구획을 정하지 않고 잘 놀던 아이들에게 울타리를 쳐주었다고 치자. 이후에 아이들은 울타리를 의식하게 될 것이며 울타리에 닿지 않으려고 하거나 울타리를 넘보기도 하며 그전에 없었던 마음을 품게 된다. 기업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 이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선진 기업,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역시 슬픈일,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사는게 뭘까. 나는 또 다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마치 이 세상은 영원한 불협 화음의 場 같다. 좋은 어머니를 울부짖지만, 좋은 어머니가 갖춰야 할 요건들은 석박사가 한 우물을 파서 이루는 업적을 능가한다. 환경은 열악한데 한 개인에게 거는 기대는 점점 높아진다. 팔 길이가 틀린 옷을 입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자본의 세상. 교과서의 뒷페이지로 갈수록 필기한 흔적도 밑줄친 흔적도 엷어 지는 것처럼 나는 이 책의 끝맺음에 도달했을 때 어떤 대안도 어떤 대책도 미약하나마 생각해내지 못했다. 역시 이 책이 갖고 있는 단점이기도 한데, 이것은 한 개인의 연구로 나올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들을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대로 고여있게 하는 그 원인, 구조적 모순을 찾아 다시 두드리고 재건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오래오래 살아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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