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즘 - 남자들에 갇힌 여자
정해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남성과 여성. Sex 는 결코 위, 아래를 결정지을 수 없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실로 오랜 시간동안 형성된 가치 체계에 의하여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사회의 주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으레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남성은 으레 여성의 일을 돕는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여성인 나에게 조차도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전에 같은 내용의 글일지라도 남자 아이의 이름과 여자 아이의 이름을 쓴 후 그 글을 평가해보았을 때 전자에 대해서는 진취적이다, 논리적이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반면, 후자에 관해서는 감정적이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주어진 두 글에 있어서의 차이는 단지 이름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과 여성을 평가하는 틀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인구의 반은 여성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기준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남성의 언어가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은 성공을 위해 남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여성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이를 배우려 드는 남성은 없다. 이는 백인과 흑인, 영어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비영어권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특정 언어가 명백하게 우월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반영인 것이다. 유독 여성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특히 성적 비하의 표현이 많은 것은 우리 사회의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대변해준다. 같은 단어라도 남성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성적 비하의 뉘앙스를 여성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에서는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무심코 행해지는 성적인 발언들로부터 여성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적인 매력, 재생산의 능력을 제 1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의심 받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경제 위기 등이 닥쳤을 때 여성을 가정 내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좋은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제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교과서에는 여성을 하나같이 (치마를 입고 걸레질을 하거나 먼지를 털고 있는 등의)가사 노동의 주체로 그리고 있으나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이런 전통적인 역할이 전복되려 하는 현실을 위기로 진단한다. 초등학교 교사의 여초 현상은 문제시 되지만 대학 교수의 남초 현상은 이야기되지 않고, 대학 신입생 중 남성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성이 많은 것은 신문 기사 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체계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로는 여성들도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여성의 그것이 맞는지를 고민해야 된다는 것,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적 성은 남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심해야 된다는 것이 조금은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그것만이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세상을 노래할 수 있는 길이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