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태어나지 않은 너에게
알베르 자카르 지음, 김주열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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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의 빠른 속도마냥 우리네 하루도 무언가에 휩쓸리듯 지나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듯싶다. 하루하루 목 죄여 오는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듯한 냉정함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가 이런 삭막함을 원했던가? 하지만 어김없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진보라는 단어 속에 포함시켜 버린다. 인류가 이룩한 화려한 문명, 그 밝기만큼이나 검게 드리워진 그림자까지도 우리는 진보라고 여기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옳다고 말할 순 없는 지금의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상실감이었다. 가진 자를 바라보는 그 두 눈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희망보다는 무언가 박탈당한 것 같은 상실감으로 얼룩졌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함 조차도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실력이 결정지은 것이라고 해석하곤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순 없지만 지배적인 질서 아래 부합할 때만이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삶의 모든 순간에 어김없이 적용되는 진리와도 같았다. 운동경기를 보는 그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승자가 되길 갈망하고, 때로는 애국심에 호소하며 패배라는 단어 앞에서는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빛나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외면하고, 그렇게 타자화된 존재에 대해서는 한없이 격하시키는 속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잊어왔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 모두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지금의 이 질서를 향해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자본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이 될 수도 있으며, 성(性)에 기초한 질서일 수도 있다. 배제에 기초한 힘의 공고화 속에서 점점 더 소수만이 인정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고, 이는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다.


과학 기술이 예견한 핑크빛 미래, 그 끝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이미 필수품이 되어버린 듯한 핸드폰 마냥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또 다른 이름의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그렇듯 그들 역시, 그저 잘 살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속에서 자연이 그들 손에 쥐어준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움마저도 해치게 될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하지만 너무도 메마른 그 삶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어쩌면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남성일지 여성일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향해 1925년 태생의 알베르 지카르는 말한다.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곤 했던 그였기에, 작은 힘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변화에 대해 그는 작은 아이를 향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그것으로부터 세상의 변화는 시작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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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레어 > 그냥 떠나보는 편이 더 나을 거 같다.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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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치바나 다카시. 이 사람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에 읽은 '사색기행'과 '우주로부터의 귀환' 두 권 뿐이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두권의 책('사색기행'의 경우는 대부분 예전 자신이 잡지에 실었던 글 중 여행관련글을 모은 것이었고 '우주로부터의 귀환'의 경우에는 지구를 떠나봤던 우주비행사들의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를 모은 글인데 전자의 경우에는 다카시의 사회, 문화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 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었고, 후자의 경우에서는 우주비행과 관련된 과학적인 지식과 우주여행 전, 후 인간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빛내는 타카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을 한 사람이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 인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적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인간이면서도 그 지식이 꼭 필요한 현장감을 중시하는... '그래, 그는 기자였어.'라는 한가지 깨달음이 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색기행'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행(4장에 나오는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는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핵군축 회의' 초대장을 받아 '반전영화'상영을 목표로 떠난 여행이었으므로)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재여행이었고 취재여행의 성과물로 나온 각각의 글들은 잡지의 칼럼에 연재되었던 것인만큼 내용들은 다양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할만한 것이었다.

 

잠시 살펴보자면, 무인도에서 문명의 혜택없이 6일을 보낸 경험이라던지 몽골로 '개기 일식'체험을 떠난 것이라던지 하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인 만큼 그의 경험은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는 면이 있다. '만약 내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이라는 가설에 대해 직접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고 자신을 실험하기 위해 무인도로 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어리버리한 체험기마져도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개기일식'도 그렇다. 책 속에서는 '태양이 사라진다면 태양에게서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극단적인 상상력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개기일식'을 쫓아다니는 개기일식 마니아들을 인터뷰하고 자신도 흐린 날 몽골에서 일어났던 '개기일식'의 짧은 순간의 느낌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개기일식이 그런 의미였어?'라는 생각만으로도 태양계 속의 3번째 행성에 불과한 지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두 체험은 그의 지식이나 글솜씨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소재가 좋아서 독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

 

'가르강튀아풍'의 폭음폭식 여행과 기독교 예술 여행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 즉 먹고 마시고, 좋은 거 구경하는 여행의 모습을 갖추고 있기에 다가가기가 더욱 쉽다. 요즘 웰빙 붐을 타고 점차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좋은 와인이 어떤 것이며 와인의 종류를 결정하는 땅에 대한 이야기, 와인의 라벨을 보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여행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보와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치즈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그 제작공정, 맛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두었을 때 나쁘지 않은 상식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기독교 음악과 '미션'이라는 영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기독교 예술 여행이라는 컨셉도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들으니 더 좋더라. 왜 그런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지 가서 직접 그들의 삶을 살펴보니 이해가 되더라.'라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이야기를 해주어서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여행의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나마 나에게 '진짜 여행기 같다'라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4장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라는 부분이었다. 다른 장들과는 달리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다 젊은 시절 다카시의 여행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여행전 어떤 식으로 준비를 했고, 핵군축 회의에 초청되는 기회를 잡고 반핵영화를 유럽에다 틀면서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젊은 다카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서문에서 이야기 했던 '육체를 이동시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라는 말이 4장에 이르러서야 나에게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5장, 6장의 팔레스타인 보고와 뉴욕 연구는  팔레스타인과 뉴욕을 각각 여행을 하며 쓴 글로  단순 여행기가 아니다.  각각 팔레스타인과 뉴욕이라는 객관적 장소에 대해 일반인의 시각과는 차별화된 저널리스트의 날카로움이 보이는 글로써 각각의 공간이 현 시대에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분석해 내고 있다.  다카시 정도라면 이정도 수위의 글은 써줘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이제야 그의 글을 읽는 맛이 났다.  중동에 대해 이스라엘을 통해 듣는 것 이외에는 일본인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그는 현지에 가서야 자각을 하게 되고 이스라엘인과 아랍인들을 직접 만나며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재구성한다. 뉴욕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심장,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을 여행하며 그가 살펴본 것은 마몬(부와 황금의 신)의 신전인 뉴욕의 빛과 그림자였다. 비즈니스, 돈의 중심지이면서도 심한 빈부의 격차로 인한 슬럼, 마약과 폭력, 범행, 그리고 에이즈환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의 치부를 유감없이 내보이고 있는 도시로 다카시는 뉴욕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집어내려면 집어낼 수 있는 수준의 글들이다. 좀 오래된 글들은 친절하게도 각주에다가 변화된 양상까지 기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명성만 믿고 책을 기획해서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기를 읽는 목적이야 사람들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이처럼 여행의 목적이 중구난방식으로 된 책은 처음보는 것 같다. 여행의 길라잡이도 아니고, 여행을 통한 깊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여행지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이렇게 달라서야 혼란스럽지 아니한가 말이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거고 다치바나 다카시란 흥미로운 인간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런 여행기가 나온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환경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인간 다치바나 다카시의 모습을 보기를 바랬고, 나또한 그의 여행경로를 좇았을 때 그와 같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란 대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와 함께한 사색기행은 영 어중간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냥 배낭 훌쩍 둘러매고 떠나보는 편이 그의 말대로  제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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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모습인지도..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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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추천해주신 바람구두 님께 감사드립니다. 책의 존재도 몰랐었거든요...

오랜만에 손에서 놓지 않고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났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글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했다는 이야기이며 읽고 싶었다는 말은 내용 전개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더 멀리로, 특수한 부분에서 전체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현대 가족 이야기>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가족의 현실이라는 부제 답게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이라는 특수 사례를 매우 구체적인 인터뷰와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부수적인 '한국 가족의 현실'이라는 것은, 그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일반적인 가족과 동떨어져 있는가 혹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의 문제는 거의 '계급'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졌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가장 힘든 여건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신성하게까지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문제점을 설혹 발견한다해도 그것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의식을 동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책의 머리에도 나와있듯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살아가는지, 실제로 주5일제 근무와 대졸자보다 높은 임금으로 호화롭게 살아가는지는 궁금하면서도 감히 물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여성학을 전공하고 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저자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않았던 '노동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몇몇 분들이 이야기한데로 그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다른 차원에서만 맴돌던 여성문제/노동문제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흥미진진했다. 가장 흔하게 노동운동가들에 대해 하는 비판이 회사에서만 진보적이고 가정에서는 보수적인 가부장적 행태를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애사라는 연구방법 답게 이 책의 여성들의 삶은 남편의 지위와 출신 배경이 다를 지언정 절대로 다르지 않은 여성의 삶과 맞닿아있다. 가정을 이루고 남편들과 관계를 맺고 육아와 출산을 하고..물론 그 안의 세부적인 것은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으로 인해 두려워했다거나, 야간 근무 다녀온 남편이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서성인다는 충격적인 고백들이 있기는하지만. 혼자서 감당해야 되는 육아와 그 안에서 '완벽한 어머니' 노릇을 하려는 욕망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보통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남성, 특히 노동계급의 상황과 불화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결코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여성의 상황과 불만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것의 책임을 남성 개인에 돌리기 보다는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대한 통찰까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이건 기업의 상황에 대해서이건 결코 개인 차원으로 남겨두지 않고 거대 담론의 흐름까지 함께 꿰뚫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사를 전담해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잔업과 특근을 겸해야만이 보존이 가능한 가족임금제를 선택하며, 이러한 것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안정적 가정이기에 끊임없이 현모양처라는 여성의 역할을 세뇌시키는 자본의 논리 때문인 것이다. (주 5일제인 근무규정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하는 상황이며, 또한 그래야만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 노동자의 삶을 유지할만한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전과 현실이 얼마나 간격을 두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그러나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돌리자면 결국 자본 - 노동의 구도 밖에 남지 않겠지만, 역시 진보적이라는 노동운동가들도 '투쟁 기간이면 음식을 싸들고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여성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면에서 기업과 노동자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함께한다.

사원 집단 거주지에서의 정상가족에의 압박,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이 아닌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의 압박, 그중에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다움의 상징, 불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 고생하는 남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고마워할 것을 강요당하는 문화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이 책은 '현대(자동차) 가족'을 넘어 '현대(사회의) 가족' 모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고백하여 '나'를 드러내고, '객관'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쓰기로 이어진 저자의 학문적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부러움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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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현대 가족의 야누스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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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의 문을 지키고 있는 야누스는 기업이다. 핵가족이건 가사분담, 교육 심지어는 부부의 침대까지 지배하고 있는 기업. 기업 없이는 지금 우리의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거대한 자본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자본 없이는 유치원도, 소풍도 갈 수 없다. 위대한 오즈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가도가도 만날 수 없는 오즈의 마법사, 그러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오즈의 맙소사 형상을 하고 있어 할 말 없다. 원망의 근원지를 찾다 보면 지구를 떠나야 할 지도 모르니까 이쯤에서 다시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자.

이 한 권의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울산 이라는 나라에서 집단 거주를 하고 있는 그들의 일상은 텔레비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뙤약볕 아래에서 빨간 조끼, 빨간 띠를 한 사람들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야기한 것 보다 더 적나라하게 사장된 사장되고 있을 인권의 구린 냄새다. 그러나 어느쪽도 우월하고 열등하다고 볼 수 없으나, 적어도 인간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기업의 말은 절반 이상이 '구라' 라는 것도 확신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기업중에 하나였던 현대. 그 이름은 요즘 사회에서는 조금 덜 세련되 보이기도 하는 오늘날을 가르키는 명사이기도 하다. 어쨌든 현대에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실질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 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소설이건 어떤 글이건 사람의 일상이 들어있는 글을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가지와 그들이 기대고 있는 벽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상투를 틀고 쪽을 진 얼굴이다. 일하는데 방해되므로 한복을 걸치지 않았고, 집안 일 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데 불편하여 간편한 실내복을 입었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생활 방식은 언밸런스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들을 아직도 그렇게 살도록 만든 것은 결국 컨배이어 벨트가 쉼없이 돌아가야 하는 단순하고 열악한 노동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하는 노동은 그의 의식 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루 종일 단순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자기 중심적이고 단순한 사고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나는 무조건 가부장적 사회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은 과감히 삭제 시켜야 하므로 비판이 아닌 무시로 일관해버리곤 한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내가 갖고 있던 평소의 생각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나의 주의와 나의 가치관은 떼어놓고 진실의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가벼운 가십거리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유행이 지난 삶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힘들게 일하는 남편을 불쌍히 여겨 아내들은 남편의 말에 복종하여 자연스럽게 위계 질서가 잡힌다. 주야 교대 근무와 철야, 특근 근무로 임금의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쓸 수도 없으며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나 수영과 운전 같은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적 특수성과 집단성 때문이다. 또한 그녀들의 남편이 일하고 있는 직장, 현대 자동차의 구조적 모순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도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데 그것은 그들의 동질성이 가져다 준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이가 없으면 절대로 그들의 그룹에 끼여 수다를 떨 수도 없고, 남편이 가사 분담을 하거나 육아 서적만 쳐다 봐도 남자 망신 시킨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영남권 문화와 현대 자동차 에서 노동자들의 아내를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내들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오면 남편이 어마어마한 대기업 (거대한 규모)에서 일하고 있어 자랑스럽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므로 더 잘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유명 인사들에게 듣는 재미난 강의에 기업에 유리한 조미료가 가미되있음은 듣지 않아도 자명한 일,  아내들은 집에 돌아와 저절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모양처가 되겠다고. 그러나, 구획을 정하지 않고 잘 놀던 아이들에게 울타리를 쳐주었다고 치자. 이후에 아이들은 울타리를 의식하게 될 것이며 울타리에 닿지 않으려고 하거나 울타리를 넘보기도 하며 그전에 없었던 마음을 품게 된다. 기업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 이 울타리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선진 기업,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역시 슬픈일,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사는게 뭘까. 나는 또 다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마치 이 세상은 영원한 불협 화음의 場 같다. 좋은 어머니를 울부짖지만, 좋은 어머니가 갖춰야 할 요건들은 석박사가 한 우물을 파서 이루는 업적을 능가한다. 환경은 열악한데 한 개인에게 거는 기대는 점점 높아진다. 팔 길이가 틀린 옷을 입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자본의 세상. 교과서의 뒷페이지로 갈수록 필기한 흔적도 밑줄친 흔적도 엷어 지는 것처럼 나는 이 책의 끝맺음에 도달했을 때 어떤 대안도 어떤 대책도 미약하나마 생각해내지 못했다. 역시 이 책이 갖고 있는 단점이기도 한데, 이것은 한 개인의 연구로 나올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들을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대로 고여있게 하는 그 원인, 구조적 모순을 찾아 다시 두드리고 재건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오래오래 살아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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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모습인지도..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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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추천해주신 바람구두 님께 감사드립니다. 책의 존재도 몰랐었거든요...

오랜만에 손에서 놓지 않고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났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글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했다는 이야기이며 읽고 싶었다는 말은 내용 전개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더 멀리로, 특수한 부분에서 전체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현대 가족 이야기>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가족의 현실이라는 부제 답게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이라는 특수 사례를 매우 구체적인 인터뷰와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부수적인 '한국 가족의 현실'이라는 것은, 그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일반적인 가족과 동떨어져 있는가 혹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의 문제는 거의 '계급'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졌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가장 힘든 여건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신성하게까지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문제점을 설혹 발견한다해도 그것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의식을 동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책의 머리에도 나와있듯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살아가는지, 실제로 주5일제 근무와 대졸자보다 높은 임금으로 호화롭게 살아가는지는 궁금하면서도 감히 물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여성학을 전공하고 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저자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않았던 '노동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몇몇 분들이 이야기한데로 그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다른 차원에서만 맴돌던 여성문제/노동문제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흥미진진했다. 가장 흔하게 노동운동가들에 대해 하는 비판이 회사에서만 진보적이고 가정에서는 보수적인 가부장적 행태를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애사라는 연구방법 답게 이 책의 여성들의 삶은 남편의 지위와 출신 배경이 다를 지언정 절대로 다르지 않은 여성의 삶과 맞닿아있다. 가정을 이루고 남편들과 관계를 맺고 육아와 출산을 하고..물론 그 안의 세부적인 것은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으로 인해 두려워했다거나, 야간 근무 다녀온 남편이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서성인다는 충격적인 고백들이 있기는하지만. 혼자서 감당해야 되는 육아와 그 안에서 '완벽한 어머니' 노릇을 하려는 욕망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보통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남성, 특히 노동계급의 상황과 불화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결코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여성의 상황과 불만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것의 책임을 남성 개인에 돌리기 보다는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대한 통찰까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이건 기업의 상황에 대해서이건 결코 개인 차원으로 남겨두지 않고 거대 담론의 흐름까지 함께 꿰뚫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사를 전담해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잔업과 특근을 겸해야만이 보존이 가능한 가족임금제를 선택하며, 이러한 것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안정적 가정이기에 끊임없이 현모양처라는 여성의 역할을 세뇌시키는 자본의 논리 때문인 것이다. (주 5일제인 근무규정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하는 상황이며, 또한 그래야만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 노동자의 삶을 유지할만한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전과 현실이 얼마나 간격을 두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그러나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돌리자면 결국 자본 - 노동의 구도 밖에 남지 않겠지만, 역시 진보적이라는 노동운동가들도 '투쟁 기간이면 음식을 싸들고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여성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면에서 기업과 노동자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함께한다.

사원 집단 거주지에서의 정상가족에의 압박,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이 아닌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의 압박, 그중에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다움의 상징, 불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 고생하는 남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고마워할 것을 강요당하는 문화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이 책은 '현대(자동차) 가족'을 넘어 '현대(사회의) 가족' 모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고백하여 '나'를 드러내고, '객관'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쓰기로 이어진 저자의 학문적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부러움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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