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클리오 >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모습인지도..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 이 책을 추천해주신 바람구두 님께 감사드립니다. 책의 존재도 몰랐었거든요...

오랜만에 손에서 놓지 않고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났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글이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했다는 이야기이며 읽고 싶었다는 말은 내용 전개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더 멀리로, 특수한 부분에서 전체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현대 가족 이야기>는 <현대자동차>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들여다본 한국가족의 현실이라는 부제 답게 현대 자동차 노동자 가족이라는 특수 사례를 매우 구체적인 인터뷰와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부수적인 '한국 가족의 현실'이라는 것은, 그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일반적인 가족과 동떨어져 있는가 혹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의 문제는 거의 '계급'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졌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가장 힘든 여건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진보적이고 심지어 신성하게까지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문제점을 설혹 발견한다해도 그것은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의식을 동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과연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책의 머리에도 나와있듯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기업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살아가는지, 실제로 주5일제 근무와 대졸자보다 높은 임금으로 호화롭게 살아가는지는 궁금하면서도 감히 물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여성학을 전공하고 가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저자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못하거나/ 않았던 '노동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몇몇 분들이 이야기한데로 그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상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다른 차원에서만 맴돌던 여성문제/노동문제가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흥미진진했다. 가장 흔하게 노동운동가들에 대해 하는 비판이 회사에서만 진보적이고 가정에서는 보수적인 가부장적 행태를 그대로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애사라는 연구방법 답게 이 책의 여성들의 삶은 남편의 지위와 출신 배경이 다를 지언정 절대로 다르지 않은 여성의 삶과 맞닿아있다. 가정을 이루고 남편들과 관계를 맺고 육아와 출산을 하고..물론 그 안의 세부적인 것은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으로 인해 두려워했다거나, 야간 근무 다녀온 남편이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서성인다는 충격적인 고백들이 있기는하지만. 혼자서 감당해야 되는 육아와 그 안에서 '완벽한 어머니' 노릇을 하려는 욕망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보통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남성, 특히 노동계급의 상황과 불화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결코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여성의 상황과 불만을 설명하는가 하면 그것의 책임을 남성 개인에 돌리기 보다는 남성을 둘러싸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대한 통찰까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이건 기업의 상황에 대해서이건 결코 개인 차원으로 남겨두지 않고 거대 담론의 흐름까지 함께 꿰뚫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사를 전담해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잔업과 특근을 겸해야만이 보존이 가능한 가족임금제를 선택하며, 이러한 것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안정적 가정이기에 끊임없이 현모양처라는 여성의 역할을 세뇌시키는 자본의 논리 때문인 것이다. (주 5일제인 근무규정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하는 상황이며, 또한 그래야만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 노동자의 삶을 유지할만한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선전과 현실이 얼마나 간격을 두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그러나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돌리자면 결국 자본 - 노동의 구도 밖에 남지 않겠지만, 역시 진보적이라는 노동운동가들도 '투쟁 기간이면 음식을 싸들고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여성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면에서 기업과 노동자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함께한다.

사원 집단 거주지에서의 정상가족에의 압박,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이 아닌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의 압박, 그중에서 노동자들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다움의 상징, 불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 고생하는 남편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고마워할 것을 강요당하는 문화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이 책은 '현대(자동차) 가족'을 넘어 '현대(사회의) 가족' 모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고백하여 '나'를 드러내고, '객관'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쓰기로 이어진 저자의 학문적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부러움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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