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구판절판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 위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마종기)-59쪽

그때 처음으로 전염병 상황에 대해 일관되게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도 점검해보았다. 그 공포와 공황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다양하게 생각해보는 내 태도 역시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한 방식이었다.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멀리서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객관화', '지식화'가 아주 오래되고 뿌리깊은 나의 방어기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이다.-67쪽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이 좋다고 말하는 바로 그 지점에 그들의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생에서 문제가 되는 그 하나의 상처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다 괜찮아질 바로 그 아킬레스건에 대해 이야기하는구나 싶었다.-70쪽

삼각관계에 처하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호감을 품었던 사람을 후배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 마음에서 지워낸 일도 있었다. 여자 친구들끼리 친근함의 정도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는 게 느껴질 때도 그 관계에서 발을 빼곤 했다. 그러면서 내게는 질투가 없다고, 질투는 불필요한 감정 낭비일 뿐이라고 믿었다.-118쪽

사실 그전에 이미 나의 나르시시즘과 맞닥뜨려 깨진 경험이 있었다. 그것을 '운명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미래의 어디엔가는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근거 없는 기대, 대책 없는 전망이 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지금 이곳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지금 이곳의 삶이 진정하고 유일한 내 몫의 삶임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삶을 간이역이나 야영 캠프쯤으로 인식했다.-191-192쪽

"왜 무엇을 주고도 보답을 받으려 하지 않죠?"-206쪽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하는 마음,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의 본질을 형성하는 토대라고 한다.-207쪽

타인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사기치는 사람. 심리적으로 더 문제가 되는 사람은 후자이다. 그런 이들은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올 호의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면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이 한 일에 대해 왼손이 보답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동안 내가 베푼 친절에도 틀림없이 그런 속성이 있었을 것이다.-250-251쪽

두려움을 참으며 낯선 여행지를 걸어나갈 때, 좌절감을 안은 채 어떤 일을 해낼 때 온몸에 힘이 들어가도록 애쓰던 그 느낌이 바로 용기였구나 싶었다.-281쪽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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