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집을 얻어 정부 청사를 쓰고 있는 형편에 그 파(派)는 의자보다도 많았다."(장준하, <<돌베개>>)-14쪽
모히카 족이 동성애와 오럴섹스를 즐긴 까닭은 이렇다: "잉카제국에 멸망되기 전까지 모히카 족은 지금의 페루를 중심으로 매우 발달된 문명으 일구어 냈던 그 지역의 맹주였다. 그들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경제적 토대의 불안함이었다. 지력이 약하고 좁은 농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요 산업을 농업에 매달려야 했떤 모히카 족은 가장 무서운 적이 다른 종족의 침략이 아닌 자체의 인구 팽창이었다. 지배계급은 늘 인구를 적정한 수로 조절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절대 과제를 정치적으로 수행해야만 했다. (...) 모히카 족이 선택한 산아 제한의 방법은 동성애를 널리 유포시키고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것이었다. 또한 될 수 있는 한 남녀 간의 사랑도 아이를 갖지 않도록 유도해야 했기에 오럴섹스를 권장하게 된다."(이섭, <<에로스 훔쳐보기>>)-20쪽
<<논쟁 - 나치즘의 역사화>>는 모든 과거가 다 '역사화'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즉 어떤 역사는 "부단히 '현재'"로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지향이라는 맥락 속에서 판단되지 않는, 판단 정지적이고 자족적인 역사 평가는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과거가 '역사화'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반성과 책임이 선행되어야 하며,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가 행했던 전쟁범죄의 경우 일국의 역사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인 합의를 필요로 한다.(구승회, <<논쟁 - 나치즘의 역사화>>)-40쪽
전후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나치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서독의 핵심 권부를 모조리 차지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정작 흥미로운 것은 독일 정부가 '의무적인 사과'를 맡고 나서는 바람에 개개의 독일 국민들은 나치 시대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풍토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점은, 국가가 사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 전쟁에 참여했던 개개의 국민들이 '양심의 가책'을 호소하게 된 일본의 경우와 무척 다르다.(<<나치의 자식들>>)-41쪽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교과서에 실린 동시를 처음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여백이 없이 새까맣게 백지를 사용하고 또 그 위에 덧칠을 하도록까지 절약 교육을 받았던 내게, 교과서에 실린 동시는 인쇄가 잘못된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종이의 낭비가 심했던 것이다. 어려서 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 개의 단어와 짧은 시행이 거느린 드넓은 여백은 신비한 풍요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기로 했으나, 요즘처럼 물자가 풍부한 환경에서 사는 학생들은 내가 받았던 충격과 같은 이유로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지 않을 것이다.-66쪽
빨갱이가 한국 사회의 절대적 타자라는 것과, 권력을 가진 자만이 피권력자의 이마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80쪽
"과학은 사회를 생각하고, 예술은 실존을 생각한다."(스노우, <<두 문화>>)-85쪽
"20세기의 교양과 21세기의 교양은 다르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를 얘기하는 것이 20세기의 교양이었다면, 21세기의 교양은 상대성원리나 열역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86쪽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전통 속에서만 자가발전을 해 온 게 아니었나?'라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자연과학이나 기술은 늘 바뀌어 왔는데도, 그런 발전이나 발견에는 태무심했던 것이다. 문학이 자기 전통 속에서만 문제의식을 발견할 게 아니라, 자연과학의 성과를 반영하고 그것의 윤리적 성격마저 함께 물을 때 두 문화는 좀더 풍요로워진다.(김용규, 김성규, <<다니>>)-89쪽
이 소설이 던지는 철학적 화두는,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어디에서 끝나고, 동물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일장 연설 속에 모두 담겨 있다.(페터 회, <<여자와 원숭이>>)-90쪽
정치의 바깥에 있을 때는 도덕적 정당성을 앞세워 기득 세력을 공박할 수 있었으나, 중종의 총애로 사간원의 장(長)이 되자 그도 '힘' 싸움을 동반한 현실 정치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광조가 지닌 힘은 그의 도덕적 순수성이었으며, 당시 조선왕조의 핵심적 지배 세력은 이러한 도덕적 비평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들이 보기에 조광조도 자기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편법을 동원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면 적어도 조광조를 그렇게 몰고 갈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정두희, <<조광조 - 실천적 지신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116쪽
"처음 태어난 그 옛날에는 천리(天理)를 순수하게 따르던 내가, 지각이 생기면서부터는 해치는 것이 분분히 일어났다. 지식과 견문이 나를 해치고 재주와 능력이 나를 해쳤으나, 타성에 젖고 세상사에 닳고 닳아 나를 얽어맨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공한 사람을 받들어 어른이니 귀인이니 모시며, 그들을 끌어대고 이용하여 어리석은 자를 놀라게도 했다. (...) 수많은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니 나는 내게로 돌아가리라. 적자(赤子)와 대인(大人)이란 그 마음이 본래 하나다."(이용휴, 이가환, <<나를 돌려다오>>)-137쪽
"실제로 그들이 MSF(국경없는 의사회)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들어 보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취직이 안 돼서, 혹은 취업 대기 중이었거나,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몇몇은, 산업화되고 안보가 철저한 나라에서 권태로움을 느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힌 사디즘적인 상처에 환자용 변기와 붕대를 제공하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삶으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분석의 배면에는 시장으로 사라져 버리는 노동의 소산물인 상품으로부터 소외되고, 시장에서 실제적,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소외되고,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으로서만 능력이 평가되는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산업화된 현대사회의 억압이 자리하고 있따. 재난의 현장에 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소외감을 완전히 떨쳐" 버리게 되고 "내부의 힘과 동료들에 의해 완전 재무장된 존재"로서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된다.(엘리어트 레이턴, <<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148쪽
비단 스포츠 무대에서만 아니라, 온갖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유일무이한 경쟁 후보가 일본일 때, 한국은 한국 측 입장에서는 너무나 쉽고, 일본 측이 바라보기에는 '아픈 다리 내놓고 장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야비한 전략을 구사한다. 일본이 "월드컵 개최국 결정이란 스포츠 문제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펼 때, 한국은 월드컵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에 기여한다면서 "일본은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뭐든 양보해야만 한다고 압박한다.(다케우치 히로시, <<2002 월드컵 전쟁>>)-154쪽
"객관적인 역사가란 신화에 지나지 않지만, 합리적인 역사가는 존재한다."(로버트 이글스톤,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164쪽
명문 재벌가의 외동아들과 결혼한 그 집안의 하녀 유티트의 말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위장을 채우기 위해 먹지만 부자들은 간, 심장, 쓸개, 췌장을 위해 먹는다.' 덧붙이자면, 문화란 위장이 아니라 이처럼 비밀스러운 소화기관을 가동시키는 일이기에 가난한 이들은 영원히 습득하거나 도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진실은 이종교배를 권하지만, 사회적 진실은 같은 계급끼리의 동종교배를 원칙 삼는다.(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231쪽
내 어머니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시면서도 하루하루를 신의 축복으로 여겨야 마땅한 신앙인의 태도와는 달리,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삶의 어느 한때를 가리켜 인생이라고 할 뿐, 일평생이 인생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생이란 20대의 어느 한때를 가리킬 뿐, 나머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냥 어영부영, '찌게다시', 부록, 죽지 못해, 타성일 뿐이라는 거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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