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렬지(자례)는 화산 폭발 후 사람들이 한둘 모여 세운 마을이다. 처음엔 겨우 입에 풀칠하고 모여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어 땅을 일구며 어느 정도 마을 구색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중국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며 자례는 쿵 씨와 주 씨 두 파벌이 형성된다. 어느날, 주 씨의 고발로 감옥에 다녀오게 된 쿵둥더는 네 아들들에게 밖으로 나가 걸어 처음 만나는 것이 네 운명을 좌우할테니 그것을 찾으라고 지시한다. 그에 쿵둥더의 둘째 아들 쿵밍량은 주 씨네 딸 주잉을 만나게 된다. 서로 원수의 집안으로 만나 적대시했지만 그들은 서로 엮일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짐작한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자례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가, 또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두 사람으로 인해 자례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커져간다. 하지만 그 속은 전혀 실속이 없다. 처음 쿤밍량이 촌장으로 추대될 때 그가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돈을 모은 방법은 바로 도둑질이었다. 마을이 아무리 부강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도둑질을 통해 발전한 마을이 어떻게 오래 가겠는가? 쿤밍량은 마을의 발전 방향이나 사람들의 안위는 전혀 고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노력한다. 마을 사람들은 코앞 어마어마한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가족이 죽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도둑질을 하는 건 여사하고 자식 몸을 팔아 돈을 벌어오는가 하면 또 가족이 죽더라도 얼마의 돈과 눈가림뿐일 돈이면 오히려 영광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서 자례는 하늘높은 줄 모르고 부강하게 되고 쿤밍량이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도 마냥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빈껍데기처럼 몸집 불리기에만 연연해왔던 자례가 쿤밍량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례 사람들은 쿤밍량의 돈에 휘둘리기만 했지 마을을 위해 어떠한 우려나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날치기로 만들어진 마을이 얼마나 있을지. 

 '작렬지' 속에서 나오는 주잉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면서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죽고 복수를 위해 어떤 일이든 감수할 각오로 자례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자례에 돌아와서 한 일은 쿵밍량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 뿐이다. 속내를 숨기고 쿵 가를 뒤엎을 계획이 있나 생각했지만 그가 이룬 건 쿵 가문 한 사람에 대한 복수 뿐이다. 아마 쿤밍량을 진정 사랑했고 자신이 쿤밍량을 사랑하는만큼 그도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렬지는 마을에 상서로운 일이 생기면 갑자기 꽃이 핀다느니, 새가 날아와 지저귄다느니 하는 묘사가 많다. 허구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해 마치 미지의 신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길을 걷다 처음 발견한 물건이나 사람이 자신의 운명에 중요한 열쇠라는 것과 괘종시계가 멈추면 집안에 상 치를 일이 생긴다든지 하는 미신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한 마을이 만들어지고 또 쇠퇴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물질적인 것보다 진정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현대인인 우리들이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