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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드를 모르는 AI 팀장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곳에서 찾은 인간의 미래 가치
정수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10월
평점 :
AI가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구글 내에서도 하루아침에 1만 2000개의 자리가 없어졌다. 인력이 해오던 일을 이제 AI가 단 몇초만에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 치열한 실리콘밸리에서 박사학위도 없는 문과 아시안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의문을 던지고 거꾸로 생각하고 깊게 파고드는 능력 덕분이다. 박사학위를 따고 정직하게 정답만 추구하며 파고드는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도 답을 찾지 못하거나, 즉시 나온 정답에 박수를 치며 곧장 완결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지 의문을 가지고 의견을 내는 사람은 큰 사고가 없도록 하는 예방과, 더 합리적인 제품이 나오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때 모든 사람들이 코딩을 배우고 공과 기술을 배우면서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돌았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의외로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등장하고 철학과 박사를 채용하는 듯 새로운 길을 가고있다. 의문을 제기하고 끝없이 질문하는 능력이 실리콘밸리에서는 귀한 인재로 통한다. 예를들어보자, 나는 어이없는 논리를 펼치거나 편협한 생각에 빠진 사람에게 '이유는 만들면 되지' 라는 말을 자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당한 이유를 가졌거나,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지만 AI에게 그런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AI는 비꼬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동조하고 위로하고, 심지어 부추끼기까지 한다. 개발자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AI는 오히려 계속 편을 들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개발을 담당하는 국가 미국인 정서의 특징이기도 하다. 비판하기보다는 괜찮아, 훌륭해, 뷰리폴 이라고 박수쳐주며 비판을 피하고 꺼리는 문화가 그들이 개발한 AI라는 언어에도 적용이 된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이야기에 근거가 있어? 라고 의문을 품는 능력을 가졌다. 이런 AI에는 여러가지 사례가 있다. 나치에 동조한다던가 인종차별을 부추끼는 등 신중하게 내놨던 실리콘밸리 기업의 기술들이 도리어 세계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급히 서비스를 닫거나 수정하거나, 아니면 기용한 기업들이 손해배상을 하고 물러나는 등의, 심지어 생성형 AI가 나온지 한참 된 지금까지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나는 또 좋아하는 말이 있다. '뭐든지 중용' 이다. 결국 그 저울질은 인간 스스로가 해야하고, 그중에서도 합당한 판단과 행동이 나오도록 신중하고 사회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판단은 우리가 해야하기에, 현실적으로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만들어가는 사람들보다, 고쳐가는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 이제 개발과 창의성생각 등의 문과, 예술, 이과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있다. 당신은 AI를 사용할 때 그 생각이 합리적인지 확실히 가늠할 수 있는가. 실제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AI를 비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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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인간 존재의 쓸모는 절대 변하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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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더 오래 머무는 쪽으로, 회사가 돈을 버는 쪽으로 훈련 된 기계의 다정함은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계산이 너무 정교해서 우리는 기계의 맹목적인 '아첨'을 따뜻한 공감과 놀라운 효율로 착각하며 넙죽 삼켜버린다. 그렇게 한 사람씩, 자기 목소리만 되돌아오는 방에 들어앉는다. 그 달콤한 마취 속에서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감각이다.
뇌세포를 부딪치며 끙끙대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지적 마찰의 시간을 기계에 헐값으로 외주 준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낀 수고는 고스란히 뇌의 빚, 즉 인지 부채로 차곡차곡 쌓이다가 훗날 당신만의 비상하고 날카로운 사고력이 절실해지는 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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