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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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년 전, 인류는 중세에 페스트를 겪었고 이후에도 천연두, 수두, 홍역 등으로 고생했으며, 위생개념이나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때는 콜레라 등으로 온 나라가 흔들리며 깨끗한 지역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중근대 거장들 중 일부는 깨끗한 지역으로 피신가 쓴 작품들이 다수 있다. 그만큼 과거에는 태어날 땐 1인당 출산률이 높았고, 죽을 때는 다 키워보기도 전에 일찍 죽거나 30~60을 못넘기기 일쑤였다. 60선이면 엄청 많이 산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수명이 많이 늘었다. 이제는 살아남기 쉬운 게 아니라 죽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죽는 것 자체, 혹은 가족의 죽음이 내 인생의 수치가 되고, 잘 사는 것에 '오래 사는 것' 도 포함되어버렸다. 각종 기기와 기저귀 등등에 둘러쌓여 생을 늘리는 등, 삶을 무기한으로 늘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람은 살리는 일이라고 알려진 심폐소생술도 어찌보면 숨만 붙여놓을 뿐, 뇌사나 식물인간으로 간다거나 저산소증, 운동장애, 인지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나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심폐소생술을 받고 싶지 않다" 고 증언하기도 한다. 그만큼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싶을 정도로 의료현장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일단 상식적으로 건강하면 죽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고 있는 시점부터, 혹은 사고가 난 시점부터는 건강하다고 볼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특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사망할 경우 의료진을 원망한다. 하지만 의료진은 신이 아니다. 의료진은 그런 연명의료를 여러번 경험해봤고,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당연히 안되는 것임에도 좌절한다. 그리고 멸시당한다. 죽음에대해 공부하는 것은 잘 죽는 것을 넘어 잘 사는 길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존엄하게' 죽기 위해선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의사를 표명하며 나 자신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죽음의 과정을 고려하고 공부하는 것이 낫다. 이 가능성을 모두 알아두면 왠지 불안해서 하루하루를 심리적으로 겨우 연명해 갈것같지만 현실은 남은 삶에 대한 감사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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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 가능한 죽음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준다. 또한 말기나 임종을 맞이한 환자가 안락사를 요청할 때, 가족과 환자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대화할 기회를 갖는다. 적어도 가족은 환자의 고통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정서적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말기 환자가 하루하루 서서히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보다, 환자가 마지막 모습을 스스로 선택한 결정을 존중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 오리건주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의료조력사망을 경험한 가족은 고인의 선택이 존중되었다고 느꼈고, 임종 방식에 대한 후회가 적었으며, 죽음을 더 잘 준비하고 받아들였다고 보고했다. _ 118 ~ 119

🔖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군가 몸을 씻겨주고, 음식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이 육아의 본질이다.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의 손길에서 벗어나 독립해 간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거쳐, 마침내 자립한 아이는 어른이 된다. 노인은 아이와 반대로 간다. 스스로 입던 옷을 입혀줘야 하고, 몸을 씻겨줘야 하고, 대소변을 다시 기저귀에 받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더 많이가고 의존은 점점 깊어진다. 결국 어른은 아이가 된다. 간병이란 성장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육아다. _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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