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평점 :
산불발생지역에서 살아 집이 모두 전소된 후 성 베네딕토 회 카밀돌리 수도원에서 숙소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가 생활을 하며 일본인 아내의 뒷바라지와 (일본에 집도 있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전히 발생지역에 살고계신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한다.
가톨릭을 믿는 입장에서 봤을 때 성 로무알도가 세운 카밀돌리 수도원은 특이점이 있다.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가톨릭을 넘나들며 다른 종교행사를 하고 다른 종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의 문화도 가지고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로 이 수도원의 특성 때문인지 종교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다. 수도원 생활은 그야말로 성스럽다. 수도자들이 일궈놓은 분위기와 수행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머물며 곧 그곳에 매료되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일부는 파리가 들끓는 고장난 변기와 퓨마가 다닌다는 경고, 독사, 가시가 달린 독초가 바닥에 널려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모두 자신의 수도 생활을 한다.
코로나 전부터 이루어진 이 스토리는 코로나가 해제 된 지끔까지의 이야기를 포함해 담고있다. 이때 나이 든 많은 수도자들이 돌아가시면서 젊은 수도자들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수행자들을 받지만 곧장 금방 세속으로 돌아가 여전히 수행자는 부족한 처지다.
마음이 힘들고 오히려 20년 냉담생활을 마무리 지으며 조금씩 종교에 기대는 나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더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기울이는 걸 볼때마다 "종교에 젊은이들이 좀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는 젊은이들은 알겠지만 청년예배, 어린이, 청소년 예배 시간이 아니면 일부 교회와 성당, 절에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다.
아직은 먼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콘텐츠를 통해서라도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나와 사람들을 볼 때면 이런 수도자의 이야기들과 삶이 조금은 고달프더라도 마음에 와닿고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수도원에서 깨달은 많은 회한과, 자주 나는 불에 집과 수도원이 전소되도 계속 자연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는 것, 그리고 작가조차 그것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계속 지원하고 영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에 감탄했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고, 모든 것은 마음으로 통한다는 실제적이고 사건적인 가르침들이다. 우리 안의 평화에는 우리의 신용카드 대금, 계좌잔액에 있는 걸까, 지금 지구에 발붙이고 있는 발끝과 마음에 있는 걸까? 현실적으로는 당연하면서도 계속해서 전재산이 전소되는 스토리에 질문을 품게 된다.
--------------------------
고요한 내 방 안에 있으면, 끝없이 펼쳐진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계획 없는 나날은 걱정 없는 나날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으면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새 티백을 꺼내려 가방을 열어보면, 내가 쓴 낙서들로 까맣게 뒤덮인 종이들이 위 칸에 가득 차 있어 마치 가방이 과식이라도 한 듯 불룩하게 솟아 있다. 큰 칸에는 이미 읽은 책들이 들어 있다. 내내 산책을 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전하려 긴 편지를 쓰는 일밖에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루에 두세 권의 책을 읽어냈는지 의아할 정도다.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사치다. 내 이성은 어떤 믿음이든 논리로 무너뜨릴 수도, 다시 그 믿음 속으로 나를 데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 이나 '다툼' 이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머문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이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 건너로 날아갔던 날이 떠오른다. 작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은행 잔고도, 이력서도, 명함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버지를,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요 속에서 내가 길어 올린 것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