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적 진단 - 성격구조의 이해
Nancy McWilliams 지음, 이기련 외 옮김 / 학지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적 진단: 성격구조의 이해, Nancy McWilliams 저, 2008, 학지사>


진단과 치료에서 이 모델이 지니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이것이 자아가 깊은 무의식(예컨대, 부인denial과 같은 강력한 방어에 의해서 상쇄되는, 어떤 사건에 대한 원초적인 감정 반응)에서부터 완전히 의식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넓은 작동 범위를 지니고 있다고 묘사한다는 점이다.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는, 의식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서적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기의 부분인 ‘관찰하는 자아’가 전체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치료자와 동맹을 맺는 반면, ‘경험하는 자아’는 치료적 관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다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자아의 치료적 분열’은 효과적인 분석 치료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졌다. - p48


현실을 지각하고 그에 적응하는 자아의 기본적인 역할은 유용한 정신분석적 표현인 ‘자아강도’의 원천이 된다. 자아강도란 현실이 극히 불쾌할지라도 부인과 같은 원시적인 방어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인정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말한다. - p49


자아의 일차적 기능은 강력한 본능적 갈망(이드)과, 괴로운 현실 경험(자아)과, 죄책감 및 그와 연관된 환상(초자아)에서 비롯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 p51


구조 모델을 채택하면서 Freud는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서, 억압은 불안에 대한 반응이며, 불합리한 공포라는 참을 수 없는 감각을 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정신병리를 방어적 노력이 효과를 보지 못한 상태, 즉 불안을 다루는 습관적인 방식이 작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이 느껴지는 상태이거나, 불안을 감추는 행동이 자기파괴적인 상태라고 개념화하기 시작하였다. - p52


이런 맥락에서, Klein의 영향을 받은 남미의 분석가인 Heinrich Racker(1968)는 일치 역전이와 상복 역전이라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임상적 가치를 지닌 범주를 제공하였다. 일치concordant 역전이는 환자가 초기 대상과의 관계에서 아이로서 느꼈던 것을 치료자가 (공감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며, 상보complementary 역전이는 대상이 아동에 대해 느꼈던 것을 치료자가 (내담자의 관점에서는 공감적이지 않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 p57


인간의 본질적 성격 구조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상호작용하는 두 가지 차원, 즉 성격 조직의 발달 수준과 그 수준 내에서의 방어 양식을 평가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첫 번째 차원은 한 사람의 개별화 정도 혹은 정신병리의 정도(정신병, 경계선, 신경증, ‘정상’)를 개념화하며, 두 번째 차원은 그 사람의 성격 유형(편집성, 우울성, 분열성 등등)을 밝혀 준다. - p67


요약하자면, 신경증적인 사람을 치료할 때는 방어를 약화시키면서 이드에 접근하여 이드의 에너지가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방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신병적인 사람들에 대한 치료는 방어를 강화하고, 원시적인 집착을 덮어서 가려 주며,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 현실적으로 개인하여 혼란을 줄이고, 현실검증력을 높이고, 끓어오르는 이드를 무의식 속으로 되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는 마치,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난로 위에 뚜껑이 뻑뻑한 냄비를 올려놓은 것과 같아서 김이 빠지도록 뚜껑을 좀 열어 주어야 한다면, 정신병적인 사람들은 이미 끓어 넘치고 있는 상태여서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야 하는 것과 같다. - p72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근본적인 안전감이나 통제감의 문제 때문에 치료받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 사이에서 반복해서 갈등을 겪는 문제 때문에 온다(그들은 이 장애물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의심한다.). 치료의 목적은 사랑을 못하고 일을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한 Freud의 주장은 바로 이 집단에 적용된다. 한편 어떤 신경증 수준의 사람들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나 놀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하며 치료에 온다. - p88


정신병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일차적 갈등은 삶과 죽음, 존재와 멸절, 안전과 공포 사이의 것이다. 문자 그대로 실존적인 갈등이다. 이들의 꿈은 죽음과 파괴의 삭막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죽느냐, 사느냐’가 이들의 반복되는 주제이다. Laing(1965)은 이들이 ‘존재론적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정신분열증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들이 이들 가족 내에 특이한 정서적 의사소통 패턴이 있음을 보고하였다. 정신병적인 아동들은 가족 내에서 자신이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연장이요 분신이라는 미묘한 메시지를 듣고 있었다. - p92


치료자의 보살핌에 대한 이 절박한 의존의 이면에는 치료자가 불가피하게 떠맡게 되는 심리적 책임감이라는 짐이 있다. 사실 정신병적인 사람들에 대한 역전이는 한 살 반이 안 된 유아에 대해 어머니가 정상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매우 유사하다. 애착의 측면에서는 너무나 좋지만, 요구의 측면에서는 매우 끔찍하다. 아직 반항하거나 화를 돋우지는 않지만, 극단적으로 사람을 혹사시킨다. - p93


Freud는 정신분석적 ‘치유’를 자유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적 전통에 따라 그는 사람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진실’이라고 믿었다. 자신에 관한 진실을 탐구한다는 이 어려운 과제가 이들 신경증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자존감은 충분히 탄력이 있어서 유쾌하지 못한 발견도 참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p105


정신병적인 사람들은 치료자와 심리적으로 융합하려는 경향이 있고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분명하게 구분된 정체성을 유지하지만, 경계선적인 사람들은 공생적 애착과 적대적 분리 사이를 오가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큰 혼란을 준다(두 상태 모두 혼란과 고통을 준다. 전자는 헤어나지 못하게 삼켜질 것 같은 두려움을, 후자는 홀로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가져온다.). - p124


경계선 환자에게 해석을 할 때에는 지금-여기에서 펼쳐지는 정서적 상황의 특성을 해석해야 한다. 분노의 예를 들어보자. 경계선 화자는 보통 신경증 환자가 전이에서 보이는 치환이나 단순한 투사를 사용하지 않고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경계선 환자는 ‘나쁜 나’의 느낌과 이와 연결된 분노 정서를 치료자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나쁜 이미지와 감정의 이전은 그리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투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는 여전히 환자에게 남아 있다. 이것은 경계선 환자가 치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대가가 된다. 동시에, 충분한 심리적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로 인하여 치료자 또한 불가피하게 이를 공유하게 된다. - p128


(경계선 환자) 그래서 그들은 투사된 그것을 내부에서 계속 느끼면서도, 투사된 것과 외적 현실이 부합되도록 하여서 자신이 미쳤다는 느낌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투사한 분노(혹은 다른 강렬한 정서)를 받는 그릇이 되며, 내담자는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가 치료자의 적대감 때문이라고 주자하면서 투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 결과 치료자는 역전이적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곧 이어 치료자는 사정없이 당하는 느낌으로 인해 실제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 p129


경계선 내담자를 위해 Masterson이 추천한 기법은 내담자의 어머니가 한 것으로 추정되는 행동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한다. 즉, 퇴행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은 적극적으로 직면하고(예, “왜 남자를 하필이면 술집에서 찾으려고 하죠?”), 자율성과 힘을 기르려는 노력은 공감적으로 인정할 것을 강조한다(예, “내가 언제 당신을 화나게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니 참 반갑군요”), 그의 모델은 경계선 환자에게 진정한 자존감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매달리며 의존하는 행동을 좌절시키라고 말한다. - p133


분석적 치료자들은 오히려 어떤 문제들, 특히 정신병적이거나 정신병적 수준에 근접한 ‘붕괴’를 불충분한 방어 때문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 p144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인간적 조건들이 결함 있는 다른 대안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더 나은지 항상 순위를 매기고, 또는 이상화 대상과의 결합이나 자기를 완벽하게 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주요 동기로 삼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자기애적인narcissistic 사람이라고 말한다. - p156


Freud는 애도 과정을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를 엄습한’ 상실의 상태와 서서히 화해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아름답게 묘사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도 자기 안에 내사한 사랑하는 사람과 내적으로 분리할 수 없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투자할 수 없다면,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작고, 하찮고, 메마르고 박탈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안을 줄이고 자기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사를 주로 사용하면서, 보상을 주지 않는 초기 대상과 심리적 유대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성격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 p161


투사적 동일시에서 환자는 과거의 대상관계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방식으로 치료자를 본다. 그리고 치료자는 환자의 그 무의식적 환상과 일치되게끔 자신을 경험하도록 하는 압력을 받는다. - p161


Freud는 “억압의 핵심은 단순히 어떤 것을 의식으로부터 쫓아버리고 멀리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부 소인이나 외부 환경이 너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면 이는 의도적으로 무의식에 할당될 수 있다. 이 과정은 경험 전체에, 혹은 경험과 연결된 정동에, 혹은 경험과 연관된 개인의 환상과 소망에 적용될 수 있다. - p172


다른 무의식적 방어와 마찬가지로 억압은 (1) 제 역할(즉, 어지러운 생각들을 안전하게 의식 밖에 둠으로써 현실에 순응하는 다른 일에 관심을 쏟게 하는 역할)을 못했을 때, (2) 삶의 긍정적 측면들을 방해할 때, (3) 더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다른 대처방식을 배제하고 독점적으로 작동될 때만 문제가 된다. - p173


불안이나 고통스러운 마음 상태를 다루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생각에서 감정을 격리isolation해 버리는 것이다. - p178


공포증은 어떤 중요한 영역에서의 불안이, 두려움을 주는 현상을 상징하는 특정한 대상으로 치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예컨대, 거미에 대한 공포는 무의식적으로 모성에의 휘말림을 의미하고, 칼에 대한 공포는 무의식적으로 남근 관통을 의미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치환된 집착을 삶의 여러 측면에서 경험한다면 우리는 그가 공포증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 p190


원시적 투사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일생에 걸쳐서 점점 더 큰 공감 능력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처럼, 원시적 형태의 동일시는 점점 더 분별력을 갖추고 섬세하게 변형되어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속성을 모아 자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 p196


분석적 치료의 목표는 자기의 모든 측면들을 그 가장 원시적이고 혼란스러운 측면까지도 이해하는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연민(그리고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던 특성을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치환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생기게 된,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키우는 일과, 오래된 갈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자유를 확대하는 일을 포함한다. 거기에는 자기의 혐오스러운 측면을 깨끗이 몰아내거나 원시적 욕망을 그 흔적까지 없애 버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승화를 자아 발달의 정점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 유기체와, 인간이 지닌 본래의 잠재력과 한계를 보는 정신분석의 기본 태도에 관해서 많은 것을 말해 준다. - p206


성격의 역동 그 자체는 병리가 아니다. 방어가 너무 고정되어 있어서 심리적 성장과 적응을 방해할 때만 병리적 성격 혹은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강박적인 사람은 생각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활을 조직하며, 학문, 논리적 분석, 상세하고 구체적인 계획, 현명한 의사결정과 같은 창조적 사고 행위를 통해서 자존감을 얻는다. 그러나 병리적으로 강박적인 사람은 비생산적으로 반추하며, 아무런 목표도 야망도 실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자신을 혐오한다. 우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서 만족을 얻는다. 그러나 병리적으로 우울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돌볼 수 없다. - p213


정신병질자의 조종과, 히스테리 환자 및 경계선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조종은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고의적인 시도이며, 후자는 다른 사람은 이용당했다고 느끼지만 정작 환자 본인은 조종한다는 특정한 의도를 의식하지 못한다. - p220


<정신병질적(반사회성) 성격>


외부 대상이 이렇게 실패하기 때문에 아동의 심적 에너지를 점유하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및 자기가 내밀하게 추구하는 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표상은 개인의 전능이라는 소망과 절망적인 나약함이라는 두려움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은 불쾌한 각성 상태를 누그러뜨리고 동시에 자존감을 회복시킴으로써 사회병질적인 사람의 자기감각을 안정되게 한다. - p226


정신병질적인 환자들의 자기경험 중 언급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가장 원하는 것을 파괴하려는 소망인 원시적 질투이다... 예를 들어, 연쇄살인범 Ted Bundy는 젊고 예쁜 여성들(그의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을 ‘소유’하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고 하였다. - p227



<자기애성 성격>


일차적 관계성을 강조하는 이론가들은 자기애적 병리는 정상적인 유아적 거대성에 고착된 결과가 아니라, 초기 관계의 실망에 대한 보상이라고 이해했다. 이 무렵, ‘간직하기containment', '버텨 주는holding환경’, ‘비춰 주기mirroring’와 같은 개념들이 속속 등장하여 치료 이론에 수정이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 p242


많은 저자들은 허영심과 거대 자기를 드러내는 자기애적 문제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내면에는 자의식과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는 아이를 감추고 있으며, 우울하고 자기비판적인 자기애적 문제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거대한 환상을 품고 있음을 관찰하였다. 외양이 어떠하건 건에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불충분함, 수치심, 나약함, 열등감이라는 내적 감각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 p245


Alice Miller는 직관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가 양육자의 자존감 유지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가정이 많고, 그 아동은 자신이 누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혼란을 겪으며 자란다고 생각했다. 그녀에 따르면, 그러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양육자의 자기애적 연장선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많으며, 결과적으로 자기애적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더 많다. - p246


자기애적인 태도의 가장 슬픈 대가는 사랑하는 능력이 성장을 멈춘다는 사실이다. 자기애적인 사람은 심리적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기가치를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소모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 두지 못한다. 상대방은 그저 자기대상 혹은 자기애적 연장선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와 가족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낸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욕구는 깊으나, 그들에 대한 사랑은 얕다. - p251


자기애적인 환자들은 그들은 가진 실제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 때문에 부자나 양육자에게 특히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을 수 있다. “너는 매우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네가 하는 특별한 역할 때문에 그렇다.”라는 메시지를 받는 아동은 만약 자신의 진짜 감정, 특히 적대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이 발각된다면 거부를 당하거나 창피를 당하리라고 느낄 것이다. 이는 타인의 인정을 이끌어 낸다고 배운 모습만을 보여 주는 태도, 즉 Winnicott이 말한 ‘거짓 자기false self’의 발달을 조장한다. - p251


자기애적이라고 진단내릴 수 있는 사람의 자기경험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다. 막연하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수치심, 질투심, 공허감, 불완전한 느낌, 누추함, 열등감 등이 여기에 포함되며, 이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독선적 태도, 자부심, 경멸, 방어적인 자기만족감, 허영심, 우월감 등이 있다. Kernberg에 따르면, 이러한 양극적 자기경험은 자기를 거대한(전적으로 좋은) 자기로 느끼거나 고갈된(전적으로 나쁜) 자기로 느끼는 상반된 자아 상태의 반영이며, 자기애적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자기를 경험하는 것만이 자신의 내적 경험을 조직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들의 내적 범주에는 ‘상당히 좋다’, 혹은 ‘그만하면 좋다good enough’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 p254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자기애적인 사람들이 일으키는 특별한 종류의 전이를 알아야 한다. 이들은 자기와 구분된 내적 대상, 예컨대 부모상을 치료자에게 투사하기보다는, 자기의 한 측면을 외재화한다. 즉, 환자는 치료자를 어머니나 아버지처럼 느끼는 대신에(때로는 그런 전이를 보일 수도 있지만), 거대하거나 평가절하된 자기의 한 부분을 투사한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의 자존감 유지를 위한 내적 과정을 간직하는 용기container가 되면, 환자의 자기 대상이 된다. 치료자는 환자가 과거에 잘 알던 인물, 즉 환자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 p258



<분열성 성격>


분열적인 사람은 무엇보다도 세상사의 국외자, 방관자, 관찰자라고 할 수 있다. 분열성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함축된 나뉨 혹은 ‘분열split’은 두 가지 영역, 즉 자기와 외부 세계 사이, 그리고 경험되는 자기와 욕망 사이에서 일어난다. 분석적 이론가들이 분열성 사람들의 분열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자기의 부분으로부터의 소외, 혹은 삶으로부터의 소외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자아 상태와 그 반대의 자아 상태를 왔다 갔다 하거나, 세상을 전적으로 좋은 부분과 전적으로 나쁜 부분으로 나누는 분열splitting 방어와는 다른 것이다. - p275



<편집성 성격>


편집적인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투사적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부인 및 그것의 가까운 친척인 반동형성을 유별나게 많이 사용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투사를 한다. 이런 보편적인 투사 성향은 전이의 기초이고, 분석적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편집적인 사람이 투사를 하는 바탕에는 고통스러운 태도들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는 욕구가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투사는, 부인이 그렇게 필수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투사 작용과는 전혀 다른 과정으로 느껴진다. Freud는 편집증은, 적어도 정신병적 형태의 편집증은 반동형성(“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당신을 미워해.”)과 투사(“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 당신이 나를 미워해.”)가 연속되는 무의식적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p301


이에 따라 편집성 환자의 치료자는 내담자가 의식으로부터 추방한 정서 반응을 환자 대신 의식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환자는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치료자는 적대감이 방어하고 있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또는 반대로 환자는 뭔가 취약하고 무력하게 느끼는 반면, 치료자는 가학적인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 p309



<우울성 성격과 조증 성격>


Freud는 우울(‘멜랑콜리’) 상태와 정상적인 애도mourning를 비교한 첫 저자이다. 그는 두 가지 상태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정상적인 애도 반응에서는 어떤 중요한 일로 인해서(예컨대, 소중한 사람이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 외부 세계가 축소됨을 경험하지만, 우울 상태에서는 자기의 한 부분이 상실되거나 손상됐다고 느끼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우울은 애도의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은 사별이나 상실 이후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더라도 우울에 빠지지는 않는다. - p324


우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 정동 대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거둬들여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며, 자신의 실제 약점에 비해서 너무나 터무니없이 자신을 증오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리비도와 공격성으로 심리적 동기를 설명하던 시절에, 이 현상은 ‘자기에 대한 가학증(공격성)’ 혹은 ‘안으로 향한 분노’로 묘사되었다. - p327


내부를 향한 공격성aggression-inward 모델은,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갈등이 없는 자연스러운 분노를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는 관찰과 잘 부합한다. 이들은 분노 대신 죄책감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편집적인 사람들이 가진, 부인되고 방어적으로 재해석된 종류가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의식적이고 자아동질적인 느낌으로 온 몸에 퍼져 있다. - p327


우울한 사람들을 특징짓는 내사는 오래된 애정 대상의 혐오적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내재화시킨 종류이다. 애정 대상의 긍정적인 속성은 일반적으로 호의적으로 기억되지만, 부정적인 속성은 자기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 p329


자기비난turning against the self은 우울한 사람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또 다른 방어 기제로서, 위에 기술된 내사적 역동에 비해 덜 원시적인 과정이다. 내사는 대상 없이는 불완전하다고 느끼고, 완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대상을 자기감각 속으로 끌어들이는 총체적인 경험이다. 물론 여기서는 그것이 대상과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나온 나쁜 느낌을 자기 표상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편 자기비난은 불안, 특히 분리 불안을 경감시키며(만약 자신의 분노와 비난이 확실하게 유기를 가져온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또한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게 한다(유기를 가져온 나쁜 것이 내 속에 있다면, 이 고통스러운 상황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 - p331


우리의 임상적 경험은 힘이 없음을 인정하기보다는 아무리 불합리할지라도 차라리 죄책감을 느끼는 쪽을 택하는 성향이 우리 인간에게 있음을 거듭해서 보여 준다. 자기비난이 정서적으로 불안전했던 과거가 낳은 결과물임을 우리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 p331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대상을 쫓아 버렸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애도하지 못한 자신의 상실 경험을 이해한 것이다. 그저 거절당했다고 느꼈을 뿐인데도, 그 느낌은 자신은 거절당해 마땅하고,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누군가가 자신을 잘 알게 되면 반드시 자신을 거절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신념으로 전환된다. 이들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 p337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인정할 때 사람들과 오히려 더 가까워질 수 있지만, 아닌 척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뜻밖의 일로 느껴진다. - p347


칭찬이 역효과를 가져온다면, 우울한 사람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치료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아심리학자들은 자아를 지지하고 초자아를 공격하라고 말한다... 치료자가 “그래서 그게 뭐가 그렇게 끔찍한가요?”라고 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깨끗해지려고 한다고 은근히 놀리거나, 온화한 태도로 “우리 좀 인간적으로 살아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환자는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비판적인 어조로 해석을 하면 우울한 사람들은 이를 더 잘 참아낸다. - p348



<피학성(자기패배적) 성격>


인정하지 않은 채 넘겨 버리는 감정은 행동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억압은 위험한 것이다. - p384


치료자가 쉽사리 이용당하지도 않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남길 정도로 상대방에게 아량을 베풀지도 않는 모습은,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한 관심사를 모두 희생하도록 배우며 자란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다. 따라서 자기패배적인 내담자를 다룰 때의 첫 번째 ‘규칙’은 피학증의 모델이 되지 않는 것이다. - p386


이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화가 나면 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받을 수 있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고통을 노출하면서, 또 도덕주의로 자신의 올바름을 보여 주면서 그 분노를 애써 방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피학적인 사람들은 오직 상대방이 자신에게 잘못했음이 아주 분명할 때문 적개심을 느낄 자격이 있다고 믿지만, 이런 태도는 불필요한 심리적 분투에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수준의 실망, 좌절, 분노를 느낄 때에도 이들은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수치스러운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 이를 부인하거나 도덕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치료자가 자기유익을 위해 행동하고, 그에 대해 피학적인 환자들이 화를 내면, 치료자는 이것을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반응으로 여겨야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이들이 소중한 보물처럼 안고 살아왔던 병리적인 내적 범주를 수정할 수 있다. - p388


“어쩌다 자신을 그 지경에 처하게 했어요?”... 치료자는 내담자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이를 강조해야 한다. 자기패배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온정을 이끌어 내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자신의 무력함을 입증하는 길뿐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므로 자아 구축을 촉진하고 환자를 유아화하지 않는 이런 낯선 치료자의 반응은 이들을 성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정상적인 분노 표현을 환영하고, 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이해 가능한 것임을 보여 줄 수 있다. - p388


자기패배적 환자의 전이는 구조되고 싶고, 구조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소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피학적이고 가학적인 역전이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치료적 권고로는 실제 관계를 중시하고(특히 치료자가 건강한 자기존중의 모범을 보여 주고), 환자의 문제해결의 능력과 책임을 존중하며, 병인적 신념을 끈질기게 노출하고 도전하고 수정해야함을 강조하였다. - p395



<강박적 성격>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의 심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그런 걸 느낀다고 해서 좋은 게 뭔가?”하는 의문을 표시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살아 있고 활기찬 느낌,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비록 그 감정이 그 동안 당신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태도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이런 장점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박행동적인 환자에게는 “당신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을,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워한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 p423



<히스테리적(연극성) 성격>


Freud와 많은 후기 분석가들은 히스테리가 구강적 문제와 오이디푸스적 문제에 이중으로 고착되어 있다고 보았다... 애착을 갈망하는 예민한 어린 여아는 유아기 시절에 어머니의 반응적인 보살핌을 특히 필요로 한다. 이 여아는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안전감, 만족감,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여서 실망하게 된다. 오이디푸스기에 접어든 이 여아는 어머니를 평가절하함으로써 분리를 획득한다. 아이는 자신의 강렬한 사랑을 아버지라는 매우 자극적인 대상을 향해 돌리는데, 특히 이는 충족되지 않은 구강적 욕구와 후기의 성기적 관심이 결합되어 오이디푸스적 역동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어머니와의 동일시를 통한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정상적인 해결이 어려워진다. 아이는 어머니를 여전히 필요로 하면서도 어머니를 평가절하한다. -  p432


히스테리적인 사람의 행동화는 대개 역공포적이다. 이들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에 오히려 접근한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무의식적으로 부끄러워할 때 자신을 드러내 보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주관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때 스스로를 관심의 중심에 서게 만들며, 공격당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할 때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보이며, 권력자의 힘을 두려워할 때 그를 자극하는 경향을 보인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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