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프로이트 전집 11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프로이트, 2003, 열린책들>



환상의 영역에서는 억압이 전권을 행사한다. 억압은 어떤 표상의 리비도 집중이 불쾌감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 표상이 의식에 의해 감지되기 전에 표상을 <원상태 그대로> 억제하는 과정이다. - p18


<예술>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 이 두 원칙을 화해시킨다. 예술가란 본디 처음부터 스스로가 현실이 요구한 본능적 만족의 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 등을 돌린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환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야심에 가득 찬 소망과 성애적인 소망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 - p20


엄격히 말하면, 그런 여성들이 남성들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인 것이다. 또한 그런 여성들의 욕구는 사랑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것에 있다. - p66


이 모든 것은 현실의 압박을 심하게 받아 자아의 불멸성이 위협을 받는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자식에게서 피난처를 찾아 안정된 위치를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너무도 감동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유치한 속성을 지닌 부모의 사랑이란 결국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대상애로 변모되어 그 과거의 속성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살아난 부모의 나르시시즘,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 p70


즉, 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이상>을 설정하여 그 <이상>에 따라 자신의 실제적 자아를 측정하는 반면, 다른 또 한 사람은 그와 같은 이상을 전혀 설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아의 관점에 볼 때 이상형의 형성이 바로 억압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 이상적 자아가 이제는 어린 시절 실제적 자아가 누렸던 자기애의 목표가 된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나르시시즘이 이 새로운 이상적 자아로 자리를 옮겨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이 이상적 자아는 유아기의 자아처럼 모든 가치와 완벽함을 부여받게 된다. 리비도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늘 그렇듯이 사정이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가 한때 누렸던 만족을 스스로 포기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내보이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누렸던 나르시시즘적 완벽함을 놓치기 싫어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훈계나 스스로의 비판적 판단에 의한 각성을 통해 어떤 장애에 부딪혀 더 이상 그 완벽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될 때면 그것을 자아 이상이라는 새로운 형태에서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자기 앞에 하나의 이상으로 투사한 것은 어린 시절 그 스스로가 자신의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그러나 이제는 상실하고 없는 바로 그 어린 시절의 나르시시즘을 되찾게 해주는 대체물인 것이다. - p74


사랑하는 대상에 의존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낮추는 일이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면 다분히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나르시시즘 일부를 상실한 것이며, 그 상실된 나르시시즘은 사랑받는 것에 의해 보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자존심은 사랑에 있어서의 나르시시즘적인 요소와 관계가 있는 듯이 보인다. - p80


억압은 바로 도피와 판단에 따른 거부의 중간 단계에 있는, 말하자면 판단에 따른 거부의 예비 단계라 할 수 있다. - p137


억압의 본질은 어떤 것을 의식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여 의식과 거리를 두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 p139


예를 들자면 본능의 대표적 표상은 만일 그것이 억압에 의해 의식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면 그 후로는 방해를 받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발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중 하나다. 이 경우 그 본능의 표상은, 이를테면 어둠 속에서 더욱 더 확대되어 극단적인 표현의 형태를 띠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그 내용을 번역하여 신경증 환자 당사자에게 보여 준다면 그 환자는 자기도 모르는 것이라고 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내용에서 보이는 상식을 넘어선 것 같은 그 위험한 본능의 힘에 스스로 놀라고 말 것이다. 사실 본능이 보유하고 있는 이와 같은 허위의 힘은 본능이 환각 속에서 제멋대로 발달된 결과이며 만족의 좌절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특히 만족의 좌절에서 비롯된 결과가 억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억압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p142


우리는 의식을 통해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의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 유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관찰한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이끌어 낸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이 말을 심리학적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특별한 반성적 사고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의 성향을 부여하고, 따라서 우리 자신의 의식 또한 그대로 부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동일시가 바로 타인을 이해하는 <필수 조건>인 것이다.). - p166


슬픔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똑같은 종류의 상실감이 슬픔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p244


반면에 우울증의 특징은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자기 비하감을 느끼면서 급기야는 자신을 누가 처벌해 주었으면 하는 징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를 갖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우울증의 상황은 우리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특징들이 다 슬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예외란 바로 슬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자애심의 추락이다. - p244


우울증이란 의식에서 떠난 (무의식의) 대상 상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지만, 반대로 슬픔의 경우는 상실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무의식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p247


게다가 우울증 환자는 슬픔의 경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 다른 것, 즉 자애심의 급격한 저하, 말하자면 상당한 정도 자아의 빈곤을 내보인다. 슬픔의 경우는 빈곤해지고 공허해지는 것이 세상이지만, 우울증의 경우는 자아가 빈곤해지는 것이다. - p247


그것은 슬픔과 우울증을 비교해 볼 때 우울증 환자는 대상과 관련된 상실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자아와 관련된 상실감이라는 것이다. - p249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우울증 증상의 열쇠를 찾은 셈이 된다. 그것은 바로 우울증 환자들의 자기 비난이라는 것이 사랑의 대상에 대한 비난인데, 그것이 환자 자신의 자아로 돌려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 p250


반항적인 심리 상태가 우울증으로 바뀌는 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하나의 대상 선택, 즉 어떤 특정인에게 리비도를 집중시키는 일이 한때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냉대를 받거나 그에게 실망을 하게 되면 그 대상 관계가 깨지고 말았다. 정상적인 결과라면 그 대상에게 집중되었던 리비도가 철회되어 새로운 대상에게 전위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 때문에 다른 식의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즉, 저항할 힘을 지니지 못한 대상 리비도 집중은 결국 사라지게 되고, 반면에 자유로운 리비도는 다른 대상을 찾는 대신 자아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자아 속에서도 그 리비도는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아를 포기된 대상과 <동일시>하는 데에만 기여할 뿐이다. - p252


강박 신경증에 잘 걸리는 기질인 경우 애증 병존에 따른 갈등이 슬픔을 병리적인 증상으로 탈바꿈시키며, 그 병리적인 슬픔은 슬퍼하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책임이 있고 또 그렇게 원했다는 식으로 자신을 비하시키는 자기 비난의 형태로 표출된다. - p254


강박 신경증과 우울증에서 환자들은 보통 자기 징벌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원래의 대상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직접 그 대상에게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표현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질병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을 고문하는 것이다. 결국 그 환자의 정서적 장애를 불러일으킨 사람, 즉 환자의 질병 발발에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보통 환자의 가까운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가 자기 대상과 관련해서 내보이게 되는 성애 리비도 집중은 이중의 변천 과정을 겪은 셈이 된다.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동일시로의 퇴행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증 병존에 따른 갈등의 영향을 받아 그 갈등에 아주 근접해 있는 사디즘 단계로 후퇴하는 것이다. - p255


그런데 이제 우울증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자아가 대상 리비도 집중이 복귀함에 따라 스스로를 하나의 대상으로 취급하기만 하면, 말하자면 외부 세계의 대상에 대한 자아의 원초적 반응을 표현하면서 그 대상으로 향해 발산되었던 적개심이 자아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면, 자아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나르시시즘적 대상 선택에서 퇴행되는 과정 속에 대상은 제거되지만 그럼에도 그 대상은 자아 자체보다도 더 큰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사랑에 빠지는 상황과 자살을 하는 상황이라는 두 상반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방식은 서로 분명히 다르지만 분명 자아는 대상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는 셈이다. - p256


놀이 속에서 그들은 실제 생활에서 그들에게 큰 인상을 끼쳤던 것은 무엇이나 반복하며 이러한 반복을 통해 그들은 그 인상의 강도를 소산시키고, 자신들이 그 상황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의 모든 놀이는 그들을 항상 지배하고 있는 욕망, 즉 어른이 되어서 어른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느 그것과 관련하여 또 다른 출처로부터 오는 쾌락의 산출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가 경험의 수동성에서 놀이의 능동성의 상태로 변모해 감에 따라 그는 불유쾌한 경험을 그의 놀이 친구에게 전이시킨다. 그리고 그는 이런 방식으로 대체된 인물에 복수하는 것이다. - p282


그는 환자로 하여금 잊혀진 삶의 일부를 재경험하도록 해줘야 한다. 반면에 그는 환자가 어느 정도의 초연함을 유지하도록 돌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환자로 하여금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잊혀진 과거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성공적으로 성취되면 환자의 확신감을, 이것에 의존하고 있는 치료적 성공과 더불어, 얻게 되는 것이다. - p285


분명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해석에 따르면, 마조히즘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작고 무력한 어린아이와 같이, 특히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와 같이 취급받기를 원한다. - p421


이드의 리비도적 충동의 첫 번째 대상, 즉 부모를 자아 속에 내투사시킴으로써 초자아가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대상들과의 관계가 탈성화되어 직접적 성적 목표에서 벗어난다. 오직 이 방식을 통해서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 초자아는 내투사된 사람들의 기본적 특징들, 즉 그들의 힘, 엄격함, 감시하고 벌 주는 태도 등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다른 곳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자아로의 유입과 더불어 발생하는 본능의 분열 덕분으로 그 가혹함이 증대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초자아-자아 속에서 활동하는 양심-는 업무 수행 중인 자아에 대해서 혹독하고 잔인하며 무정한 존재가 되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칸트의 정언 명령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직계 후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4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