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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보고 정의하는 자와 그에게 보여지고 정의되는 자는 대등하지 않다. 이 관계 자체가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함을 전제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이 권력이듯이 보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도 권력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 p13
어쩌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 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이 구성한 인도,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담론을 비판 없이 차용하고 복제하여 우리보다 발전하지 못한 인도를 우리의 '동양'과 타자로 바라보면서 한때 막강한 힘을 가졌던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라캉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마음속 깊이 자리한 희망과 두려움이 외적인 목표에 전이되는 것을 투사라고 부른다. 투사는 사이드가 말한 "유럽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타인의 이미지"이고, 키에르난의 표현을 빌리면 "피지배자를 나쁘게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유럽인은 동양을 '괴물'과 '종'으로 만들면서 인간이 되었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이런 연유에서 나왔으리라. 투사는 상대를 인식하는 방식이자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우리도 열등한 인도를 통해 그보다 우월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 : p26
영국이 인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듯이, 우리도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전한 서양과 동일시한다. : p29
인도를 성자의 나라로 그려낸 류시화의 가장 큰 덕목이자 죄목은 인도를 시간 속에 박제했다는 점이다. 류시화는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꿈꾸지 않는 '수동적' 인도인을 소영웅으로 그려내지만, 그들을 영웅이나 성자로 만드는 진정한 영웅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 p143
이러한 인식은 스스로 식민지화하고 동양화하는 우리 정신 세계를 반영한다. 아픈 기억과 심리적 상처에 대한 치유는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서양을 모든 가치와 규범의 중심에 두는 것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양을 내면화하는, 자기를 부정하는 과정이다. "남한 사회에서 근대화와 탈식민지화가 서양 문화, 영어, 세계사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문화적으로 열등함을 인정한다"는 최정무의 말을 인용하여 부연 설명한다면, 서양과 닮은꼴임을 주장하고 동양과 다르다는 걸 주장하는 우리의 인식은 결국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자 '동양'으로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이는 '동양=후진=무용'이라는 서구 오리엔탈리즘과 일본 제국주의의 담론을 내면화한 슬픈 흔적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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