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 전2권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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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 '시'라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점심 시간에 틈틈히 시를 쓴다고? 그래서 노트까지 같이 나온 걸까? 한 번 써보라고? 산문이라면 뭔가 점심시간으로 부족할 것 같지만, 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유 모를 자신감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러려면 곧 새로 들어갈 직장에서 외로운 점심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하지만 혼밥에 익숙하고 또 비타민D 흡수와 다이어트를 위해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루틴이 절실한 나에게는 어쩌면 정말 가능한 일일지도. 특히 점심 후 산책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가는데, 그렇게 놓치고 있는 생각들을 기록해 봐야지.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점심시간에 최소한의 사람과 마주치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 외로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날부터 가방에 이 노트를 넣고 가서 밥먹으러 갈 때마다 늘 식권처럼 가지고 다녀야겠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대만 유학시절의 기름기 가득한 점심시간 풍경이 생각나기도 했고,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와글와글한 점심시간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뭔가를 할 때는 시간에 쫓기며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땐 매 시간을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세월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즐거웠던 기억들도 많이 떠오른다. SNS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남겨둔 기록들이 있어서 추억팔이에 도움이 되었다. 요즘엔 음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이 나오면 의미없이 카메라부터 들이민다고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름 이런 면에서 유용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모든 점심시간이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한 걸 먹어보자며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맛집으로 향했던 기억, 그리고 일이 있어 점심시간을 놓치게 되어 나중에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을 때의 그 고요함들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심너울 작가의 글에서는 잔디 된장찌개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 내가 써보고 싶었던 누워서 독서할 수 있는 독서대의 솔직한 사용후기에 안 사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람 혹시 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공감이 갔던 건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썼다'는 한정현 작가의 글이었다. 코로나로 집에서 점심을 해 먹게 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 산책을 놓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알람까지 맞춰놓으면서 정시에 점심 산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나 역시 거의 매일 산책을 하다가 날이 너무 추워서 이제는 산책 대신 집에서 홈트로 대신하곤 하는데, 점심 산책만큼 소화가 잘 되고 살 빼기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

산문집과 시집 모두, 뒤에 부록으로 19명의 작가에게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지 등을 묻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요즘 나에게 점심은 든든한 하루의 시작이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점심이야말로 우리의 하루 중 가장 짧고 강렬한 부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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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잠은 샌드위치처럼 쉽게 흩어진다
너의 신년 계획은 김밥처럼 위태롭고 무모하다
너의 허기는 들깨미역국처럼 불어난다
너의 앞날은 두유크림파스타처럼 뿌옇고 고소하다
너의 오후는 아보카도롤처럼 속이 편하다
오늘 기분은 김치찌개처럼 중간이 없다
오늘의 할 일 목록은 설렁탕에 먹는 깍두기처럼 제멋대로다

​Dessert
티라미슈처럼 씁쓸하고 달달한 거울 보기
에그타르트처럼 폭 빠지기 쉬운 타임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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