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을 읽으면서 대만 유학시절의 기름기 가득한 점심시간 풍경이 생각나기도 했고,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와글와글한 점심시간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뭔가를 할 때는 시간에 쫓기며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땐 매 시간을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세월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즐거웠던 기억들도 많이 떠오른다. SNS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남겨둔 기록들이 있어서 추억팔이에 도움이 되었다. 요즘엔 음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이 나오면 의미없이 카메라부터 들이민다고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름 이런 면에서 유용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모든 점심시간이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한 걸 먹어보자며 정해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맛집으로 향했던 기억, 그리고 일이 있어 점심시간을 놓치게 되어 나중에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을 때의 그 고요함들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심너울 작가의 글에서는 잔디 된장찌개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 내가 써보고 싶었던 누워서 독서할 수 있는 독서대의 솔직한 사용후기에 안 사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람 혹시 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공감이 갔던 건 '《줄리아나 도쿄》,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썼다'는 한정현 작가의 글이었다. 코로나로 집에서 점심을 해 먹게 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 산책을 놓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알람까지 맞춰놓으면서 정시에 점심 산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나 역시 거의 매일 산책을 하다가 날이 너무 추워서 이제는 산책 대신 집에서 홈트로 대신하곤 하는데, 점심 산책만큼 소화가 잘 되고 살 빼기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
산문집과 시집 모두, 뒤에 부록으로 19명의 작가에게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지 등을 묻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요즘 나에게 점심은 든든한 하루의 시작이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점심이야말로 우리의 하루 중 가장 짧고 강렬한 부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