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건 3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책이 너무 예뻐서 3일동안 자꾸 뒤적뒤적 하게 되는 책...어떻게 이런 재주가 있을까, 그림을 느낌있게 그릴줄 아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내용은 또 조남주의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순식간에 빨려드는 탄탄한 스토리 역시 글로 된 소설 못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현, 시간강사 강은영, 무명화가 이지은. 평범한 일상에 불쑥 들이닥친 시련을 묵묵히 헤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
불리한 계약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남의 책이 아닌 자신의 책을 내기로 마음 먹은 지현의 이야기는 그래도 좀 후련한 느낌이었다. 눈앞의 현실을 위해 자기 미래를 갉아 먹었던 지난 날,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바퀴벌레같은 꿈도 함께 훨훨 날려버린 편집장과의 마지막 통화
어렵게 석사학위를 받아 시간강사를 하던 은영은 그나마도 근근히 유지하고 있던 강의를 배정받지 못하게 된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부모님들에게 교수님 아니라고 차갑게 쏘아붙일 때,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리고 급하게 알바를 구할 때...너무 먹먹했다. 이러려고 어렵게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공부한 게 아닐텐데ㅠ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생활비를 쪼개가며 살아가는 지은에게 걸려온 엄마의 전화. 급하게 쓸 일이 있는데 혹시 백만원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엄마, 나 돈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게 글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이라서 그 표정과 감정을 더 디테일하게 눈으로 읽을 수 있어서 더 큰 공감을 하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도 비슷하다. 당장 얼마의 돈을 벌기 위해 내 시간을 담보로 회사의 안정된 노예로 살아가는 게 나을까,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세상의 시선 따위 모른척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런데 최근에 큰 인기를 얻었던 <스트릿우먼파이터>를 보면서, 댄서들이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면서 '나'를 위해 사는 게 더 맞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늘 누군가의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실력을 갈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에 지금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세상은 준비된 자의 것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푹 빠질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다행한 일이 아닐까.
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