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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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 트러플 시리즈 중 하나인 <팀플레이>의 작가였다니.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직장생활에 관한 소설이라 읽으면서 장류진의 소설과 비교가 되었고, 조금 난해하다 생각했다고...라고만 기록해 두었다. 조금만 자세히 기록해둘껄.

처음에 등장하는 성희 이모는 성소수자라는 설정 때문에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색안경이라는 것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서는, 나도 누군가에게 '성희 이모'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성희이모처럼 되었으면 좋겠지만,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너무 멋있는 사람.

나중에 또 까먹을 것을 대비해 일곱 명의 조카 이름과 마지막 미션을 적어두어야 겠다.

엘리제를 위하여: (친구 딸) 혜주 - 엘리제를 찾아가 그곳의 문제를 해결하시오.

고요한 생활: (옆집 딸) 수영 - 거북을 부탁해.

둘둘셋: (여자친구 주현의 조카) 지애 - 엘리제에서 열리는 내 장례식에 오는 손님들에게 각자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대접하시오.

쿠키가 두 개일 때: (상가건물 세탁소집 딸)예리 - 엘리제를 찾아와 오랜만에 보는 이모를 반가워하며 웃어줄 것.

구르는 재주: (돌잡이 사회) 태리: 엘리제에서 열리는 장례식의 사회를 맡으시오.

파도가 온다:(재혼한 언니의 딸) 소정: 서지민과 함께 하와이에 갈 것.

배턴 터치: (병실에서 만난) 아름: 배턴 터치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불가 통보를 받은 혜주는 낙후된 엘리제라는 카페 홍보로 새 주인을 찾게 해준다. 어린 시절을 방치된 채로 자랐던 수영에게는 거북을 맡기면서 거북이에게도 오래오래 수영과 함께 있어줄 것을 부탁한다. 지애는 어린 시절에 이모인 주현과 그 연인인 성희와 함께 다방에 가서, 성희를 따라 커피를 둘, 둘, 셋 이라고 주문했고, 처음 마셔보는 제 몫의 커피에 마음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커피를 내어주는 사람이 꿈이었던 지애는 성희 이모에게 타운하우스 내에 있는 카페를 물려받아 운영하면서 어린 손님들을 존중하는 어른이 된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예리는 영사 자격증을 따서 일하게 되고, 작사가가 되고 싶었던 태리 역시 성희 이모의 유별난 장례식 덕분에 작사가로 일하게 된다. 부당하게 방송정지를 받은 X파일 프로그램 PD였던 소정은 열여섯 살의 지민를 데리고 서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에 간다. 소정의 네비게이션 실수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는데도 실망하지 않고 자기 몫의 파도를 찾았다며 만족해하는 지민을 보며, 소정은 다시 방송을 재개할 결심을 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에 익숙해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버린 아름에게 성희는 늘 너도 누군가에게 그걸 넘겨줄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랫동안 그 미션에 실패했던 아름은 성희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결국 배턴을 터치할 타이밍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좋아했던 성희 이모는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일곱 명의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유산과 희망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다. 어느 책에선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감으로 인해 미약하게나마라도 다른 생명이 좀 더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성희 이모의 미션 덕분에 어렵게 자란 일곱 명의 조카들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단단해졌다. 이 자체만으로도 성희 이모는 정말 훌륭한 어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삶을 살았는데 성소수자 그게 뭐 어때서.

어떤 사람들은 아름에게 뭐든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대화 상대를 찾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그저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인간 대나무숲이 ​필요한 거랄까. 그런 사람들은 다른 극성에 이끌리는 자석처럼 아름에게 찾아왔다.그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건, 분명 자세 때문일 것이다. 아름은 생각했다.
연필을 쥐는 모양대로 굳은살이 생기는 손가락처럼,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삶의 자세는 고유한 실루엣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아름의 자세는 너무도 듣는 사람의 실루엣인 것이다. 말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던 그대로.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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