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도우 님의 신작, 잠옷을 입으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 마지막 책을 덮을 땐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큰 감정의 덩어리로 남았다.

성장 - 이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어느 나이까지 '성장'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까?

고둘령의 성장 소설. 이라고만 설명하기에 이 책은 너무 많은 인물들과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홍익인간 이야기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백일 고행을 생각했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의 고행을 버텨 내 사람이 된 곰,
100일을 버티지 못하고 굴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린 미완의 호랑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긴 길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태어나 고행을 끝내고 성장을 완성한 그 어느 한 순간까지
수안이는 그 성장의 고행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 다른 길을 선택했고
둘령이는 순간 순간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를 다듬고 깎고 결국엔 서른 여덟, 고치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항상 화려한 무늬를 가질 필요는 없다.

풀만 먹는 송충이를 견딘 뒤 고치의 고행을 거치고 비바람을 이긴 존재이기에
그냥 하얀 민무늬의 나비라도, 그와 별 차이없는 노란 나비라도
모두 소중하고 대견한 존재일테니까.

38살의 고둘령은, 자기 이름으로 된 집도 없고 남들이 우러러 보는 대단한 직업도 없고
하다 못해 무조건 내편이 되어 주는 가족도 하나 없다.
수안은, 둘령에게 한없이 의지하는 그런 왠지 돌봐줘야할 친구이자 사촌이고
미주는, 둘령에게 한없이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친구이다.
둘령에게는 어떤 사람이 더 진정한 친구일까?
당연히 수안이도, 미주도 둘령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일 것이다.
그 둘은 둘령의 성장에 있어 거름이 되고 영양이 되고 가끔은 항생제 처럼 바이러스를 싸우게도 하다가
항체를 만들어주기 위해 아프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다들......... 이라고 원망하다가,
그래 그렇게 다들 .......... 둘령의 성장을 도운 양분이 되었겠지 라고 생각하게 만든
둘령의 외가 식구들, 수안의 첫사랑, 마을버스 기사, 그리고 둘령의 첫사랑

무엇보다 날 울컥하게 만든 건 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입장들이 왜 이리 이해가 되던지,

그리고 끊임없이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하게 만드는 둘령이 외할머니.
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난다.
너무 그립고, 너무 보고싶은 나의 외할머니.
아마 할머니도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으셨을텐데.
무엇이 갖고 싶으니, 다 가져라. 내 손녀가 갖는다면 무엇이 아깝겠니.

책을 읽으면서 울다가 덮고 나서도 한참 다시 눈물이 나는 책은 또 처음이다.
둘령이와 수안이의 삶을 채운 소년소녀문학전집들..
나 또한 계몽사와 금성출판사로 성장하고 자랐었는데..

내 삶의 어린 시기를 떠올리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고
이제는 없는 사람들을 미친듯이 보고싶게 만드는
둘령의 성장을 들여다보며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넘치게 생각나 가슴이 아팠던 책.

왜이리 눈물이 나는 거야? 왜 자꾸 내 이야기같이 괜히 몰입하게 하는 거지.
가족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진 증거가 된 '잠옷',
그리고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의 용서를 비는
혹은 이미 떠난 사람에 대한 위로가 되고자 전한 '잠옷'

'잠옷을 입으렴' 이 말이 갖고 있는 그 심오한 마음의 전달을 계속해서 생각해본다.

둘령의 성장이, 과연 38살에서 끝났을까? 어쩌면...?
어쩌면, 성장은 나이 제한이 없는 경과의 지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졸업, 사회생활의 시작 -으로 정점을 찍을 수 없는.
고둘령의 긴 성장 이야기.
그리고 나의 성장 이야기.



이 책을 보면서 유일하게 웃은, 그리고 앞으로의 - 책에 없는 그 미래를 상상하며 왠지 설레이게 만들었던 장면.
소년과 소녀, 어른이 된 남자와 여자 - 그 고개 너머의 모습이 참, 기대된다.


책 속에서 이도우님이 고둘령이 말했듯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는.


* 이 책을 사면서,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 아쉽지만, 그 기대는 0% 충족될 것입니다.
로맨스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서 더 큰 여운이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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