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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 님의 단편집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짧디 짧은 단편 '파를 썰다' 때문이었다.
'파를 썰다'는, 파를 써는 행위를 통해 '나'에게 밀려오는 밑도 끝도 없는 외로움을 위로하고 다스리고 또한 몰입하는 내용을 5페이지 남짓으로 쓴 글이다.
그런 외로운 날이 있지 않나. 온전히 나 혼자 이 외로움을 느끼고 싶은 날.
누가 위로하고 누가 함께 한다고 해서 온전해 질 수 없는 그런 허전한 마음.
혹여, 가벼운 마음의 위로가 독이 되고 해가 되고 더 절망스러운 그런 외로움.
그런 외로움을, 혼자서 파를 썰며, 미소국에 넣을 파를 썰며, 그렇게 혼자 다독이다가
그리고 울다.
파를 썰며, 나는 그렇게 운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섬세한 감성에 대한 이야기는,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책을 통해 예전에 엿보았었더라면, 난 이번 '차가운 밤에'라는 단편집을 통해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다양성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을 2가지 카테고리- 내 임의적인 구분일 수는 있으나-로 나눠져 있다.
하나는, '몽환과 판타지' 그리고 나머지는 '사소한 음식'이다.
특히 '몽환과 판타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그런 음울하면서도 몽롱한 판타지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 죽음과 현실, 미래와 현재를 넘나드는 따뜻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소한 음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먹는 평범한 음식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극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그리고 피상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두 가지 카테고리에서 내가 최고였다고 꼽을 수 있는 것은,
'듀크'와 '파를 썰다' 이다.
내 오랜 반려견 듀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날 위로하는 낯선 소년. 알고 보니 슬퍼하는 날 위로하러 잠시 다시 다니러 온 듀크였음을.. 그가 '사랑했어요.'라는 말을 남겼을 때 그건 개였으나 또한 나를 사랑한 하나의 존재로서 반드시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눈물이 너무 쏟아졌다.
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의 작가 - 로만 알고 있다면,
난 이 '차가운 밤에'를 통해 그녀의 또 다른, 그렇지만 진 면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너무 슬프게 했지만, 그래서 며칠을 깊이 침잠하게 했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