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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Normal - 평범함 속에 숨격진 감동 슈퍼노멀
재스퍼 모리슨. 후카사와 나오토 지음, 박영춘 옮김 / 안그라픽스 / 2009년 2월
평점 :
슈퍼 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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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
이제는 ‘개성시대’라는 말조차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너도나도 특이한 것, 화려한 것, 남들과 다른 것을 강요받고 표현하다보니 무엇이 개성이고 무엇이 차별인지 모르는 몰개성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건 단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도 제각각 튀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 애쓴다. 이렇게 사물들이 아우성치는 데에는 우리가 평범한 사물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모나미 볼펜은 일회용품처럼 생각한다. 누구도 모나미 볼펜만의 평범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일회용 젓가락처럼 한시적으로 대충 쓰고 쉽게 버리는 식으로 여긴다.
평범함 속에도 독특함이 있다.
평범한 것은 잘 변하지 않는다. 종이컵이 그렇고 클립도 그렇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물건 스스로가 신경 쓰이지 않게 한다. 그건 사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밤낮 구분없이 일더미에 치여 사는 오피스맨에게 책상 위의 갖가지 사무 용품들이 제 목소리로 꽥꽥 소리친다면 책상을 통째로 집어 던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즐거워야 할 저녁 식사 시간 주방의 온갖 주방 용품들이 날 좀 써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면 켜지도 않은 가스 렌지를 폭발시켜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물에 감사할 일이다.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한때의 유행처럼 쉽게 쓰고 버리지만 누군가는 변치 않는 클래식을 대하듯 그 물건을 존중해준다. 그렇게 사물에도 클래스이 있다.
후카사와 나오토는 2005년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에 스툴의자를 출품했는데 사람들이 나오토의 의자를 전시품인지 모른채 앉아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슈퍼 노멀’은 탄생했다. ‘슈퍼 노멀’은 평범함 중의 평범함, 혹은 너무 평범해서 특별함이 느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함이 진부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범함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사물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카사와 나오토의 ‘슈퍼 노멀’은 이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브랜드인 무인양품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기때문이다. 무인양품 매장을 둘러보면 평범한 것 투성이다. 평범하다 못해 마치 만들다 만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곳에 자리 잡은 소파에 앉고 싶어지고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우리는 슈퍼 노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슈퍼 노멀>에는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의 이야기가 있다. 흔히 후카사와 나오토만 주로 부각되는데, 재스퍼 모리슨은 모리슨만의 ‘슈퍼 노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슈퍼 노멀’이라는 개념을 공유하지만 사물에 접근하고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재스퍼 모리슨은 후카사오 나오토의 제품보다 아주 조금 더 컬러풀하고 아주 조금 더 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건 재스퍼 모리슨이 사물을 섬세한 유기체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카사오 나오토는 사물의 정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을 더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정형화된 우리집 아파트에는 냉장고 놓을 자리, 티비 놓을 자리 등 사물이 들어오기도 전에 모두 자리가 잡혀져있다. 심지어 벽걸이 에어컨 콘센트조차 벽 중간에 달려있다. 정해져버린 자리들 사이에 후카사와 나오토의 무인양품 CD 플레이어가 있다. 카달로그에 나와있는 것처럼 벽에 걸려있지는 않지만 침대옆 사이드 테이블에 세워져있다. 가끔 눕혀 놓기도 한다. 이 사랑스런 CD 플레이어는 어디에 놓아도 제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평범함이다.
나는 이 평범한 사물들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