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의 색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
미셸 파스투로 지음, 최정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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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 속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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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입니다. 

여름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불타는 태양? 시원한 계곡? 눈부신 해변? 잘익은 수박? 비오듯 흐르는 땀? 혹은 열대야?


우리는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요. 그건 각자의 경험이 모두 다르고 기억 또한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이렇게 다른 우리의 기억과 경험 중 공통 분모를 가진 한 두가지의 특징이 그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곤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여름이란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그려요. 게다가 그림은 비슷한 배경에 한 두가지의 색으로만 가득 채워지죠. 물론 아이들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여름이란 주제가 이미 많을 것을 정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아이들을 휘어잡은 여름의 색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파란색은 아주 대표적인 여름의 색이죠. 일반적으로 바다가 파랗다고 배웠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동요 ‘초록바다’의 가사를 보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이란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초록빛 바다를 본 작사가의 아름다운 가사를 볼 수 있어요. 태어나 초록빛 바다를 본 아이들 중 바다를 초록색으로 칠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거에요. 경험에 의한 표현의 다양성보다는 강제적 학습에 의한 획일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 앞서니까요. 우리나라 서해를 자주 본 아이들은 초록빛 바다를 기억 할 거에요. 서해는 황해라고도 하는데 황해가 초록빛을 띄는 이유는 푸른바다가 중국대륙 양쯔강, 황화등의 황색과 만나기때문이죠.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초록이 되니까요. 이런 교과서적인 이유가 있다해도 많은 아이들은 바다는 파란색으로 표현하죠. 


사실 중요한건 초록빛 바다의 원리가 아니라 여름을 느끼는 아이들만의 색이에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느낌과 감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하고 정의한다는 건 아주 중요하면서도 아주 좋은 학습법이라고 생각해요. 이왕 배워본다면 말이죠. 그런 방법들을 찾는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우리 기억 속의 색> 은 색에 관한 에세이에요. 전공 이론서가 아니고서야 색에 관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을까요. 재미도 없을 뿐더러 흥미롭지도 못하기 쉽죠. 하지만 미셸 프루스트는 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색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말이예요. 색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해서 미셸 프루스트가 디자이너거나 색채학자 혹은 페인트 회사 CEO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놀랍게도 그는 역사학자랍니다. 대신 색에 관한 역사를 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죠. 역사학자가 말하는 색에 관한 이야기. 생소하긴 한데 그 속을 읽어보면 낯선만큼 굉장히 흥미롭다라는 걸 금방 알아 챌 수 있을 거에요. 


미셸 프루스트는 말합니다. 색은 상대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요. 시대와 사회에 따라 각각의 색이 가지는 상징과 의미가 변한다는 거죠. 그리고 색들이 프루스트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어디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미셸 프루스트는 그 색들을 기억 속에서 찾고 있는 거죠. 


- 내가 좋아하던 사탕은 만다린 시럽이 가득 들어 있는 것으로 벌집 모양의 구멍이 있고 시럽이 든 주황색의 작고 동그란 사탕이었다. 그 시럽 속에 만다린 주스가 실제로 몇 퍼센트나 들어 있었을까? 아마도 전혀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탕이 맛있었고, 그 사탕을 먹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사탕이 딱딱해서 그 소중한 시럽을 맛보려면 오랫동안 사탕을 빨아야 했지만 말이다. 그 사탕을 먹을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나에게 중하고 부당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상세히 기억한다. 특히 자판기의 주황색을. 그런데 몇 년 전 파리 지하철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훑어어보다가 내 어린 시절인 1950년대의 지하철 플랫폼 사진(이상하게도 인적 없이 비어 있는)을 여러 장 보았다. 사진에 찍힌 플랫폼 한가운데에는 내가 앞서 말한 급유 펌프처럼 생긴 사탕 자판기가 있었다. 그런데 색이 주황색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 기계에서 동그랗고 아주 달고 진한 주황색이었던 만다린 맛 사탕 말고 다른 사탕을 뽑은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 속에서 그 기계에 주황색을 덧칠한 것일까?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기억에서 색의 문제에 대해 편파적이되는 것은 비교적 흔히 일어나는 형상이다. - ‘사탕 자판기’ p.86~88


기억 속의 색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FF7F00 이 아니라 색이 담고 있는 기억 속의 이야기이니까요. 다지선다형의 문제를 잘 맞추는 것보다 이야기를 담아내고 풀어내는 흥미로움이 더 빛나는 법이니까요.


그럼, 말머리에서 물어봤던 여름의 색을 되짚어볼까요. 


불타는 태양(빨강 혹은 노랑)

시원한 계곡(초록)

눈부신 해변(파랑 혹은 하양 혹은 베이지)

잘익은 수박(빨강 혹은 초록)

비오듯 흐르는 땀(투명)

열대야(검정)


이 중 여름의 색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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