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세상을 발가벗기다 : 티보 칼맨
이원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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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보 칼맨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수 없이 들어보아 익숙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샀다. 많은 사람들은 티보 칼맨을 베네통에서 나오는 잡지 ‘COLORS’의 편집장 및 아트디렉터로 잘 알고 있고, 흔히 ‘COLORS’ 때문에 티보 칼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을 고른 진짜 이유가 있는데 바로 버내큘러(Vernacular) 때문이다.

 

- 버내큘러란?

특정 문화나 지역, 집단에서 사용하는 일상언어를 말한다. 칼맨이 말한 버내큘러디자인이란 미학적인 세련미는 덜할지라도 나름의 인간미를 가진 주변 환경을 말한다. 예컨데 할렘가의 식료품점 간판이라든가 얼음 배달 트럭의 외관을 치장한 그림처럼 조악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비주얼을 가리킨다. 그는 기존 디자이너들의 거만한 이론과 멋을 잔뜩 부린 엘리트주의를 비꼬며, 이른바 비디자인 non-design’ 이라는 형태로 버내큘러디자인을 실천하려 했다.

- p.107

  

 사실, 그래픽 디자인에서 버내큘러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생소하기도 하고 정확히 감이 잘 안잡힌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 그렇다. 처음엔 ‘vernacula’ 라는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검색된 이미지에서 보이는 버내큘러 디자인은 그저 그런 핸드 프린트 간판이나 주로 손으로 그린 글자들, 특히 버내큘러 타이포그래피라고 이름 붙은 웹페이지들은 마치 Vernacular 라는 말이 단순히 올드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교외나 지방 고유의 디자인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이건 명백한 오해다.

 

 버내큘러 디자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바로 플로런트 레스토랑디자인이다. 직접 보면 좋겠지만 일단 책 속의 내용으로 한번 그려보자.

 

- 제가 공을 들인 작 중의 하나죠. 뉴욕의 정육점 거리에 위치한 플로런트 레스토랑Florent Restaurant의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버내큘러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리사 출신인 그의 레스토랑에 대한 기본적인 컨셉트는 우선 음식이 맛있는 곳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레스토랑 안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값비싼 인테리어와 화려한 가구로 분위기를 잡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에 비하면 지극히 소박한 편이지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꾸미지 않은 삶이 묻어나는, 그의 친근한 버내큘러적인 컨셉트에 매료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자본이 충분치 않아, 오래 된 식당을 빌려 운영해야 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기존 식당과 집기와 가구 등 모든 것들을(심지어는 기름때 자국들마저도) 있는 그대로 디자인 요소로서 활용했습니다. 이 식당의 메뉴나 명함, 광고 따위도 식당 교유의 컨텍스트에 어울리도록 하나하나에 버내큘러디자인을 적용해 나갔습니다 .광고의 경우, 식당을 상징하는 의자, 주소를 나타내는 트럭, 뉴욕을 상징하는 총, 전화번호를 상징하는 전화회사 의 로고 등, 뉴욕 맨해튼의 전화번호부에서 사용하는, 다시 말해, 상업 광고에서 널리 쓰이는 아이콘을 차용함으로써 친근하면서도 일상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 p. 89

 

 이처럼 버내큘러 디자인은 시스템 디자인이란 말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을 하려는 대상의 환경과 상황을 모두 고려하려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이라고 해서 모두 버내큘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 버내큘러 디자인만의 시스템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현 상황 그대로 자연스러운 환경을 시스템화 시킨 디자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플로런트 레스토랑을 디자인하겠다고 돈을 들여 치장하고 다른 가게에서 쓰는 조명과 테이블을 똑같이 배치한다면 플로런트 특유의 환경과 느낌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버내큘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Vernacular’를 검색하면 ‘Vernacular Architecture’ 란 단어도 나온다. 이에 해당하는 Architecture를 살펴보면 북극의 이글루, 사막의 텐트, 인도네시아의 수상가옥처럼 지역적 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집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러한 세계 각국의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여 만들어진 각각의 특유한 형태들이 버내큘러로 나타나는 것이다.

 

 집을 짓는 것처럼,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버내큘러가 각각의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쌓아올려진 구성적 관점(constructive system)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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