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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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흘러내린다. 주책없이 하염없이 내리려 한다.
어쩔 줄 모르는 미안함에 차라리 눈을 감고 어떤 것도 보지않으려 한다.
내가 살아오고, 내가 몸담고 있었던 소위 '문명'이라는 것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행한
야만스러운 행위에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일까?

역사라는 것이 진보하는 것이라면 이네들 원주민들의 삶은 소위 우리네들이 몸담고 있는
문명의 후진적 버전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들을 제도하고 이들을 문명인에 알맞게끔
교화시키는 것 역시 합당하다, 아니 '합리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네들의 삶이 과연 제도하고 교화될 만큼 낙후되어 있던가, 이네들의 삶이
후진적이라고 폄하하고 가치없다 여길만큼 우리네들의 문명은 과연 '진보'라는 기치의
선진성을 가지고 있었던가?

'슬픈 열대'는 1930년대 레비-스트로스의 브라질 열대 원주민들에 대한 삶을 연구한 민속학, 인류학의 보고서다. 비록 인류학 내지 민속학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문학적인 소양이 탁월한 레비-스트로스에 의해 하나의 기행 문학 작품로 여겨질만큼 걸작 중의 걸작이다.


체험과 함께 자신의 개인적인 소회들을 철학적 사유와 함께 적어내려가는 그의 글에는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과 자신이 속한 문명에 대한 의구심들을 끊임없이 표출해 내고 있다.


원주민, 그네들의 삶 속에 내재된 자연과의 조화는 문명의 인위적인 권력에 편입하길 거부
하며 민속학 연구를 택했던 레비-스트로스 본인의 기본적인 천성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을 듯
하다.

이네들이 거니는 숲 속에서 호흡하고, 이네들이 노니는 강물에서 천연스럽게 뛰어놀며
이네들이 조직한 사회와 문화의 체계를 거스르려 하지않고 오로지 이 속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성과 편협성, 그리고 나아가서는 야만 사회라 칭하는 체계내에서 공통적인 유사성을
추론함으로써 '구조주의'라는 철학적 분위기를 조성하려한 레비-스트로스의 노고를 알 수
있다.

"완전한 사회란 없다. 각 사회는 그것이 주장하는 규범들과 양립할 수 없는 어떤 불순물을
그 자체 내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 불순물은 구체적으로는 숱한 양의 잔인, 부정,
그리고 무감각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해야만 하는 것일까? 민족학적 조사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적은 수의 사회를 비교하면 서로서로가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이게 되지만, 조사의 영역이 확대되어 나감에 따라서 이 차이점들은 점점 감소된
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어떤 인간사회도 철저하게 선하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슬픈 열대'를 아우르는 레비-스트로스의 정서는 '연민'이다. 사라져가는 - 문명으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야만의 삶 - 원주민들의 삶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도 문명
이라는 범주에 소속된 피고로서 어떠한 변명도 또한 어떠한 외면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두 줄기의 눈물만이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듯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그의 시선을
느낀다.



그의 시선 속에서....
나 역시 문명이라는 범주에 속한 자(者).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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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뮤얼 이녹 스텀프.제임스 피저 지음, 이광래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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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갓 들어온 대학 후배에게 물었다.

 " 넌 1더하기 1이 왜 2인줄 아니?"
 " ....., 그건 이론적인 또는 사회적인 규정 내지는 규약..그런게 아닐까요?
           즉, 선배님 질문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
 
 " 그렇구나, 그렇다면 다시한번...1더하기 1이 2일때는 우리가 '맞다'라고 이야기하고,
   1더하기 1을 3이라고 할 때 우리는 '틀리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뜻하는 것은 뭘까?"
 "......."


살아내기도 바쁜 이들이 듣기에 이런 대화는 어쩌면 의미없기 그지없는 차라리 어리석기까지
하다 여길만한 대화리라.
하지만, 아무리 살아내려 애를 쓰고 발버둥을쳐도 끝끝내 고개를 돌려 알 수없는 삶에 대한,
아니 세계와 인간에 대한 알 수없는 답들을 찾아내려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이들도 있을게다.

'철학함'이란 결제 서류에 어서 빨리 싸인받기를 초조히 기다리는 나의 심정일랑 아랑곳 하지않고, 소음만 지절대는 수화기를 붙들고 줄담배만 피워대는 우락부락한 이부장님의 '쓸데없는 궁상론'에 어울린만 할 것이고, 연신 메신저로 희희덕거리며 빨간 립스틱 바른 입술을 씰룩거리는 우리 경리아가씨의 헤헤거리는 웃음소리로 묻어나는 빠알간 정념의 욕정보다 가치없다 여길만할 지도 모르는 기나길고도 외로운 사유의 여행이다.

하지만, 이같이 길고도 긴 외로운 사유의 여행에 용기내어 선뜻 동참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또 이글을 읽고있다면 난 버선발로 뛰어내려가 두 손으로 맞으리다.

어찌 진정한 사유없이 참다운 삶이 나오리......


철학사는 철학의 출발점이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되는 첫걸음이다.
통사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흐름을 익히고,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그네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는 부분부분 번역의 오류와 편집의 실수도 보이며 (이는 아마도 시중에 나와있는 번역된 철학 텍스트의 대부분에서 발견되리라), 특히 현대 철학부분의 빈약함에 다소 실망스럽다.
하지만, 근대까지의 개괄적인 철학사를 접한다는 측면에서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무난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는 것과, 깔끔한 양장본의 제본 역시 기존의 철학책들이 가진 무거움을
다소나마 가볍게 느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겠다.
물론 부족한 현대 철학부분은 '들라강파뉴'의 책이라든가 '동녘'에 나온 현대철학사 책들을
참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

그 질문에 답했던 후배는 어떻게 되었을까...
몹쓸 선배라며 취직 공부를 위해 두번 다시 선배와의 마주침을 피하려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비로소 진정한 대학(大學)의 길에 들어섰음을 기뻐하며 지금쯤 기나긴 사유 여행에 지친 노곤한 몸을 어느 길에서 뉘인채 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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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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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

인문학자 출신 소설가들의 글쓰기가 으례 그렇듯 그의 소설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이를 놀랍다고 표현해야하는 지 다소 의문이지만) 그의 글은 전혀 난해하지 않다.

즉, 최소한 움베르토 에코류는 아닌 셈이다.

그의 글이 비록 철학적 소설이라는 테제를 가지고 있지만,
주제의 추상성에 비해 문체는 평이한 편이라 읽어내려감에 그닥 어려운 점은 없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그의 첫번째 소설로서 그를 단숨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어준 말 그대로 출세작이다. 그의 철학적 지성과 표류기라는 장르가 근본적으로 지닌
삶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존재 의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주제 의식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것이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로빈슨 크루소'의 완벽한 뒤집기...

어릴 적 동화책 속에서 보았던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어버린 문명에 대한
우월성과 제국주의적 동경은 이 소설을 통해 차츰차음 소멸되며, 인간의 존재 완성은
구조화된 문명이 아닌 탈구조화된 환경 속에서 구축될 수 있음을 작가는 줄곧 요구한다.

어느새 몸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버린 문명 의식은 이내 자신의 자유의지마저 수동적으로
변하게하고, 거대한 장막 안에 한계지워진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아를
찾아 챗바퀴돌 듯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자화상을 방드르디를
통해 작가는 말한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인해 자칫 지루해할 수 있으나, 문명이라는 심연의 우물 안에 갇힌
자신에 대한 연민은 작가가 제시하는 해답을 찾기위해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도록 한다.

이 책을 읽고난다면 아마도 다시금 투르니에의 또 다른 책들을 찾게 되리라.
그가 가진 프랑스 철학적 휴머니즘은 기존의 푸코, 보드리야르 등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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