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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 - 뒷표지에 박힌 부제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뿌듯한 무게로 가슴 속에 얹혀진다.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 문학을 향해 유심했거나 무심하게라도 한번이라도 무언가를 맹세했거나 다짐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겪어낸 오랜 지병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러다가 이제는 문학소년 문학청년기의 '철없는' 다짐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설가의 꿈을 미루어두고 방송작가로 일하던 주인공 수영은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찾아가는 다큐물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손에 넣게 된 도스토옙스키의 돌맹이 하나로부터 잊었던 문학여정의 회상을 시작한다. 이 돌맹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수감되었던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의 작은 독방에 깔려있던 것이다.
소설가의 꿈을 안고 입학한 대학 문창과 시절의 꿈과 방황, 오만과 좌절, 그리고 작품을 접어두고 글로 먹고살기 위해 택한 방송작가 생활 등 수영의 여정은 어느 정도 작가 자신의 자전적 회상과도 맞닿은 듯하다. 그 와중에도 문학에의 열정을 되살려내고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일이라든가.
소설은 당연히 픽션이지만, 작가의 길을 향한 주인공의 식지 않는 열망과 사랑은 작가 스스로의 고백이며 지조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이 수련과정에서 써놓았던 여러 습작들과,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었던 작가 자신의 길고 짧은 단편들도 소설 속 소설 형태로 담겨 있다. 작가의 길에 대한 의지를 잠시도 잊은 적이 없는 주인공의 삶을 빌려 작가 자신의 문학역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셈이다.
그(주인공)에 비하면 지난날 문학에 대한 나의 연모는 사소할 정도로 소극적이거나 지지부진한 것이었다. 얼치기로 문학을 동경하는 데 지나지 않았던 내게 이 책은 하나의 지고한 <순애보>와도 같았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문학을 가슴에 품은 한 작가의 진정을 엿보는 동안 '사랑은 이런 것이야'하는 가르침을 얻는 기분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사랑도 현실적인 거리감이 느껴질 때 엄두가 나는 법이다. 그 대상이 너무나 지고한 곳에 있거나 결코 닿을 수 없는 바다 건너에 있다면 어쩌겠는가. 한때 품었던 짝사랑을 회상하는 것으로 자족하고 마는 사랑도 있지 않겠는가.
그가 지중해변에서 까뮈의 뫼르소처럼 햇살에 눈이 멀고, 바다를 향해 걸어들어갈 때, 그리고는 '나는 이 세계의 영원한 침묵을 향해서 걸어갔다.'라고 말을 맺을 때,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러웠다. 그는 이제 날개를 달고 문학의 바다로 걸어들어간 소금인형이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삶에 지쳐 잠시 글쓰기가 중단되었던 작가 친구와,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다른 일로 인생경험을 쌓고 있는 딸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했다. 당장 또는 장차 작가의 길을 갈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거나 최소한 대리만족이나 신선한 문학에의 담론을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