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문제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0.
남들처럼 무난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에서 생활해 온 나이지만, 나는 콩가루집안 이야기와 대안가족을 비롯한 다채로운 가족을 포함해 이른바 '비일상적인 가족'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일까? 2005년 내가 꼽은 최고의 한국영화는 <다섯은 너무 많아>였고, 2006년은 <가족의 탄생>이었다. 이런 내가 마감의 와중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던 만화책 한 권을 읽었다. 그림체부터 전형적인 소녀 취향의 일본만화가 연상돼 그냥 넘어갈 법했지만, 마감인지라 머리 좀 식히려 펴들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1.
이마 이치코의 <어른의 문제>는 한 아버지가 뒤늦게 게이임을 깨닫고 이혼하는 데서 시작한다. 마치 TV시리즈 <프렌즈>가 아내 수잔이 커밍아웃과 함께 이혼하면서 버림받은 로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듯 말이다. 그리고 나서는? 아버지는 동성의 파트너와 관계를 맺고, 아들과 전 아내는 나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아들은 이런 부모의 제멋대로 선택으로 괴로워하는데... 과연 그럴까?
 
2.
보통 이런 스토리에서는 캐릭터의 색깔이 중요하다. 주요 인물들에 대해 한번 읊어 본다. 먼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하라시마 나오토는 다섯 살 때부터 이혼한 어머니와 쭉 둘이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나오토의 고민은 아버지의 성적 취향인 동성애가 자기에게 유전될까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20살 어린 나이에 원형탈모증이 생겨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닌다. 어느날 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부인을 자신의 형으로 입적시켰는데, 나이가 자기와 여섯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새 '부인'일까? 의붓형일까?
 
이 만화의 모든 소동의 근원인 나오토의 아버지 하라시마 유지는 나오토가 다섯살 때 게이임을 자각하고 합의이혼 한 뒤 여러 애인을 전전하다 결국 한참 연하인 스물여섯 살 에비 고로를 자기 호적에 양자를 입적하는 형식으로 일종의 동성 간 결혼을 한다. 이전의 배 나온 아저씨 스타일에서 꽃미남 스타일로 취향을 바꾼 셈인데, 이 관계는 얼마나 오래갈까?
 
아버지의 새 '부인'인 에비 고로는 유지와 결혼하면서 그의 호적에 양자로 입적돼 하라시마 고로가 된다. 하지만 유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도 있지만, 고로의 속셈은 보석디자이너로서 성공을 위해서는 새우라는 뜻의 에비보다는 하라시마라는 성이 더 보기 좋아서 그런 것. 그런데 이자 꽃미남에 능력 있는 보석디자이너이지만, 심술 궂기는 이루 말할 데 없기니와 매사에 거짓말과 신경질적인 말을 툭툭 던지는 왕싸가지이다. 대신 요리를 비롯한 가사에 능하다. 이것은 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에게 가사를 전담시켜서 그런 것. 아닌가? 스스로 택한 것일까?
 
나오토의 어머니인 (하라시마) 스기야마 유미코는 남편과 이혼한 뒤 아들을 데리고 여자가 아닌 그저 어머니로만 살다가 늦은 나이에 연애전선에 뛰어들었다. 간만에 뛰는 연애전선 그리 녹록치 않다. 이러저러 하다 얽힌 상대는 전 남편의 '부인'인 고로의 형 에비 하지메. 전 남편과의 관계도 관계이거니와 10살 연하에 여섯 살 배기 딸이 있는 유부남. 이른바 불륜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고, 심지어 법률로 넘어선다. 
 
고로를 다시 집으로 불러드리려 하다가 생활설계사인 유미코에게 발목 잡혀 버린 하지메는 지금 최악의 상태. 훤칠한 외모에 명석한 두뇌, 뛰어난 스포츠감각과 방정한 태도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전형적인 엘리트. 하지만 아내는 걸핏 하면 집을 나가고 딸은 왕따이다. 게다가 남동생은 게이이며, 다른 누이 셋은 전부 미혼. 이런 그에게 제멋대로 고집불통인 유미코는 고로와의 요상한 관계, 열 살 많은 나이라는 문제와 상관없이 꽂혀 버렸다. 게다가 현재 유부남 신분이니 말하자면 불/륜/관/계.
 
3.
이거 지난번 이야기한 <미스 리틀 선샤인>과 또 다른 종류의 콩가루집안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집안도 사실상 세 군데. 게다가 이 복잡한 관계 맺기는 또 뭐일까? 이야기는 유지가 커밍아웃하면서 집을 나가고, 다시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리고 나타나면서 시작한다. 원만하게 이혼해서인가? 아니면 유미코가 재혼하지 않아서인가? 나오토와 유미코, 그리고 유지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다. 가끔 유지가 남자친구에게 채였다고 징징대지 않는다면. 그런데 결혼할 거라고 데리고 온 남자는 나오토보다 여섯 살 차밖에 안 되는 젊은 꽃미남, 고로. 그가 나타나면서 유지와 고로 사이에 나오토와 유미코가 끼어들고, 다시 고로의 형 하지메와 그의 가족까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진다.
 
4.
이 만화는 단행본 1권으로 된 일본 망가치고는 무척 짧다. 그래서 이 복잡한 관계와 캐릭터는 지면에 쏟아지기가 무섭게 타오르고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현실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해피엔드. 하지만 이마 이치코는 마지막에 가서 한마디 툭 던진다. "가족은 증식해 가는 것이다"라고...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두 가족의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 두 가족은 서로 관계 맺음을 해 가면서 얽히고 새로 관계 맺음을 해 가면서 서서히 가족의 관계를 증식시킨다. 이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습, 특히  '어른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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