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는 팬더곰의 일종이지만 메마르고 쓸모없는 땅을 팔 때도 유용한 단어다. 그것은 깊이를 가지고 있고 적당히 윤기를 두를 수도 있으며 뙤약볕 아래 구릿빛으로 빛나는 신성한 노동을 뜻하기도 한다. 적당히 포장되는 만큼 올라가는 가격이 판다에는 이미 들어가 있다. 판다는 그래서 그것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제 자신의 뜻을 물건값으로 교묘히 위장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에 현혹되는 사람이 간혹 학문에 매진하는 이유를 캐내어 물어보면 평생을 다 보낸 뒤에도 나온다는 대답이 늘 그 모양이다. "한 권의 책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이 나를 여기로 보내었을 테지요, 그는 위인입니다." 그가 잊어버린 것은 책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위인의 이름도 아니다. 그는 단어 하나를 망각하고 이름 그대로 매진해왔을 뿐이다. 그가 기댄 것은 학문이지만 학문 이전에 그를 사로잡았던 단어를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 그가 결심하였던 그 단어를.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행위에 열중했을 뿐입니다." 붙잡혀온 사람들의 하나같은 변명이 그 단어에 매달리고 또 애걸하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상행위에 열중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잡상인의 얼굴과 대답이 빤한 노학자의 얼굴. 판다에 열중하는 얼굴과 판다를 까마득히 잊고도 여전히 매진하는 얼굴의 모양새. 희끗희끗한 그 머리결이 또 잊어먹고 있는 장면은 맨 처음의 구릿빛 피부와 곡괭이 자루에 빛나는 저무는 태양의 굵은 땀방울 같지만 판다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그걸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팬더곰의 일종이라는 그 단어를 무한히 파들어가는 사람의 얼굴. 얼핏 봐서는, 두더지의 일종;판다.

거인,김언.랜덤하우스 중앙,2005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퍽,난해하다고 생각되요.제가 최근에 읽은 젊은 시인들의 경우,가령 김민정,이기인,황병승,김언 시인까지..무엇을 시라 딱히 정의할 순 없겠지만..시라기 보다는 어떤 중얼거림,에 가까운 암호라고나 할까.그 암호를 풀기엔 저는 너무 인간적(?)인데 말이죠..
최근에 읽은 문예지의 제목이 ‘외계로부터의 타전’이었는데 말이죠..평론가 이장욱은 아예 외계인 인터뷰:지버리시 훈련-이란,부제를 달기도 했더라구요.지버리시 훈련이란 의미없는 말을 지껄이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연기훈련.
문제는 이러한 형식적 시도(상당히 낯선)를 저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것이에요.사실 뭔 말인지,잘 모르겠어요.그래도 읽게되는건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기대죠.시대가 바뀌고,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것도 달라지고,많은 것들이 변하니 시인들의 글쓰기도 달라지는게 맞을테지만..우리가 어떤 시를 읽었을때..가슴에 와닿는,그 뜨끈한 무언가는 솔직히 느낄 수 없었습니다.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몰라도요.
이렇게 될 경우에,저는 예전보다 평론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가령 그들을 외계시인(?)이라 명명한다면 중간에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 통역이 ,결국 가교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근데 우리 평론가들도 실은,너무 어렵게 써서,사실 해설을 읽다보면 더 난해해지는 경우도 많지요.
암튼 일시적인 유행인지,그것이 하나의 주류가 될지는 조금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평범한 독자들이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참으로 궁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