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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 전2권 세트
열린책들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정말 이 세상 최고의 소설이라는 격찬에, 감동에, 감탄에, 흥분에, 그야말로 최고의 수식어를 붙였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개미혁명, 천사들의 제국, 뇌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처음 개미를 읽을 때만큼의 감동은 없다는 거다.
내가 어린 나이에 개미를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초등학생 때였으니까. 나이가 들어서는 개미를 읽지 않았다. 처음의 감동이 사라져 나의 베스트 목록에 들어있는 책 중 하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말이다. 그럴 때만큼 허탈할 때가 없다. 어렸을 때는 소중했던 것이 나이를 먹어 그 가치를 잃어버릴 때만큼 말이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게 시작한다. 그의 상상력이 뛰어난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건이 시작되는 계기나 그 설정 등은 어느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의 소설에 실망하는 이유는 그 내용에 있어서의 너무 큰 비약이다. 혹자는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사건에는 그에 맞는 과정이 있고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그 과정을 그냥 뛰어넘는다.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이건 상상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상상과 비약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소설은 이런 비약을 가장 크게 느낀 소설이었따..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뇌가 컴퓨터와 연결되는 과정은 그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상상이지만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그렇게 썼으니까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것 같다-_-; 예전에 읽었던 <개미 혁명>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 학생들은, 심지어 시민들까지도 주인공들의 시위에 그렇게 쉽게 가담했을까? 집을 버리고 학교 안에서 몇날 며칠을 캠핑을 할 정도로 그 주인공들의 의견이나 집회 방법이 설득력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렇게 그의 소설은 그 시작의 기발함에 대한 감탄을 꼭 후반의 허무맹랑함에 대한 실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아... 정말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