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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박병화 옮김 / 마티 / 2020년 7월
평점 :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프로이센의 역사에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책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티 출판사에서 <강철왕국 프로이센>이 출간되었다. 첫 페이지를 읽기 전부터 나는 내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 책은 프로이센의 역사에 대한 완벽한 입문서이다. 17세기 초중반의 30년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극복하고 서서히 국력을 키움으로써 유럽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극했다가, 나폴레옹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뒤 다시 힘을 길러 프랑스와의 복수전에서 승리하고 독일 제국을 완성하며 부활한 국가, 그러나 끝내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해 스스로 무덤을 판 국가의 흥망성쇠가 마치 한 인물의 일대기처럼 펼쳐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장점은 분량에 있다. 두꺼운 벽돌책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읽을 때 여유를 준다. 하나의 챕터를 너무 세밀하게 다루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넘어가지도 않는다. 역사 채널에서 방송되는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처럼 늘어지지도 않고, 10~20분짜리 영상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지도 않다. 그 감각에 있어서 40~50분 정도 분량의 넷플릭스 드라마와 유사하다. 긴장감이 유지되는 동시에 풍성한 정보도 얻게 된다.
특히 이 책은 줄 간격을 어느 정도 확보함으로써 독자에게 여유와 숨 쉴 틈을 제공한다. 줄 간격을 좁혔다면 책이 지금처럼 두꺼워지진 않았으리라. 그래서 책을 읽다가 밀려드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조금 지쳐도 숲속 벤치에 앉듯이 쉴 수 있다. 그 여유로움이 이 벽돌책의 매력이다.
다 읽고 나면 유럽 역사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프로이센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곧 근대 유럽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과 같다. 프로이센이라는 국가를 통해서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 다른 나라의 역사와 만나게 된다. 프로이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17세기 유럽, 18세기 유럽, 19세기 유럽, 20세기 유럽이 구별된다.
또 어떤 대목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떠오른다. 역사를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프랑스, 영국, 러시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프로이센이 우리나라처럼 느껴진다. 프로이센의 어느 국왕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영조-사도세자를 연상시키고, 어느 국왕은 세종대왕 혹은 정조와 닮았다. 그것이 참 반갑고 재미있다.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호주 출신의 역사가이다. 이미 <몽유병자들> 같은 작품으로 국내외로 인정받은 실력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이 작가와 처음 만났는데, 서술이 굉장히 균형 잡혀 있다. 프로이센을 위대한 국가처럼 찬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마의 국가라고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프로이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남성적인 특성, 전쟁광 같은 것들을 수용하면서도 그 이미지 이면에 다른 무언가도 있었음을 콕 짚어낸다. 어떤 도그마에 빠져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진실에 다가가려는 자세가 느껴진다.
이 책은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책이고, 오래 읽힐 책이며, 전문가와 일반 대중 모두를 사로잡을만한 책이다. 이 책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 이 서평은 마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100퍼센트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