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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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민주화운동에 삶을 걸었던 아버지, 그래서 늘 부재했던 아버지, 뒷모습만 남긴 아버지의 앞모습을 그려내려는 딸의 마음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민주화운동은 보통 사람들에게 영광의 역사로 기억되지만, 민주화운동으로 삶이 찢긴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은 영광의 그림자에 가려진 이들을 조명한다. 그런데 장혜령 작가가 쓰는 조명이 참 기묘하다. 흐릿하고 깜박깜박하는데 선명하기도 하다. 한 문장, 한 페이지는 물음표를 던지는데 다 읽고 나면 마침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쉽게 보지 못한 주제와 표현 방식이 결합되어 탄생한 이 책, 진주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2009527. 광장에는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지 못했으며 당신 없는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가슴 치며 우는 여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독재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통곡하던 그날 그 거리의 여인들이 있음을 알아보았다.’ p.35

 

장혜령 작가의 진주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때 흰 옷을 입고 눈물 흘리던 여인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때 애도하던 여인들이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마치 이렇게 선언하는 것 같다. ‘이 책은 특정한 정파를 비난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진주는 정파를 넘어선 인간 자체에 대해 말한다. 환상을 쉽게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인간, 그 신념을 위해 삶과 가족 모두를 저버리는 숭고한 인간, 환상이 깨지는 순간 차갑게 뒤돌아서는 잔인한 인간(), 무너진 환상의 폐허에서, 그리고 그 옆에 지어진 새로운 환상의 그림자 속에서 눈물 흘리는 슬픈 인간. 그리고 그 눈물을 바라보며 하나의 작품을 엮어내는 인간.

 

시 한 편에, 오랜 시간과 감정을 다 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주라는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책이 세상에 나와 이 자리의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p.289

 

진주는 장혜령 작가가 썼던 이방인이라는 시로부터 탄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272페이지로 된 긴 서정시 같다. 진주를 읽으면 시를 읽는 기분이 들까? 시적인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에 수많은 답이 있겠으나, 나는 간격이라고 답하고 싶다. 간격은 전류를 흐르게 하고 어떤 힘을 만들어낸다. 고무줄을 양 옆으로 당길 때의 긴장감,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강렬해지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떠올려보면 될 듯하다. 진주에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내용과 내용 사이의 간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과 아버지 사이의 간격이 있다.

 

1. 문장과 문장 사이


문체는 말 그대로 글의 육체이다. 인간에게 육체가 중요한 만큼 문체도 글에서 큰 역할을 한다. 진주라는 글의 육체는 독특하다. 한 번도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용은 짧은 호흡으로 금방 끊기는데, 그 끊기는 흐름은 쭉 이어진다. 마치 바다와 같아서, 파도는 단속적으로 몰아닥치는데 그 몰아닥치는 흐름 자체는 영원하다.

 

이 작품에는 명확한 기승전결이 없다. 시제가 자주 바뀌기도 하고, 글이 다루는 대상도 시시각각 변한다. 딱딱한 신문 기사 다음에 바로 동화를 들려주는 식이다. 문장들도 산문처럼 빡빡하게 연결되지 않고 시처럼 느슨하고 은근하게 연결된다. 글의 알맹이를 이해하려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머물러야 한다. 처음 진주를 읽을 때는 텅 빈 공항 활주로를 걷는 조그만 사람처럼, 이 광막한 공집합에 당혹스러웠다. 원래 나는 칸막이가 딱딱 쳐져 있는, 이를테면 김훈의 글이 지닌 엄격함을 좋아한다. 김훈의 문장이 폐소공포증과 가깝다면 장혜령의 문장은 광장공포증과 이웃한다. 나에게는 광장보다 작은 방이 더 편하기에, 고백컨대 90페이지 정도까지 진주를 읽다가 포기했다.

 

며칠이 흐른 어느 날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날은 왠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장혜령 작가가 건네는 감각들의 흐름에 나를 온전히 맡겼다. 그 결과, 공항 활주로나 밤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광활함과 무한함,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기존의 독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낯선 기쁨이었다.

 

2. 내용과 내용 사이


진주안의 이야기들은 성스러움과 속됨, 죽음과 삶,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면서 시적 아이러니라는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파도치듯 단속적으로 끊기는 가뿐 글의 호흡은 시적 아이러니를 통해 하나의 긴 호흡으로 종합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동지에 대해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빛이 모두 꺼졌지만 두 눈만은 여전히 빛나는 채로 그는 찾아온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다음, “...오랜만에 만난 두 엄마들이 이야기 나누며 함께 먹을 떡국을 끓일 때면 우리 세 여자아이들은 크래파스로 사인펜으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색깔 찰흙으로 가짜 송편을 빚으며 놀았습니다.” 라는 문장이 나온다. 아버지의 동지의 죽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삶을 살아가는 아내들과 아이들이 한 페이지 안에 엉겨붙어있다.

 

오늘은 평화에 관한 영화제가 열리는 날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이곳은 아파트 단지가 가득한 계획도시의 시내로, 그 중심에는 쇼핑센터와 인공호수, 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p.80

이 문장에서는 평화라는 숭고한 개념 다음에 계획도시의 속됨을 이야기하면서 기이한 감흥을 자아낸다.


화자가 마침내 변두리로 옮겨진 진주 교도소에 도착해서 둘러본 뒤의 문장은 이렇다. 낮잠 자던 버스 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며 시적인 감상에 젖어드려는 에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든다. 시적인 순간과 산문적인 순간이 교차한다.

 

무감한 산문적 세상은 시적인 순간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의 아버지는 무의미한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삶이라는 소란한 스펙타클에서 벗어나 잠시 쉰다.

티브이가 건강 채널로 바뀌고, 혈압에 좋은 이것은 무엇일까요, 하고 묻는 돌연한 성우의 목소리와 방청객의 웃음소리,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타자와 다가올 미래 백세까지 책임져준다는 상조 회사 광고, 그러다 바둑 대국을 중개하는 늙은 기사 목소리에 채널을 멈추며 그제야 당신은 잠시 휴식한다.” p.52

 

다른 자장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이 부딪칠 때 아이러니라는 전류가 흐른다. 얼마 전 본,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의 후반부를 보면, 격렬한 항전이 벌어졌던 거리 위를 무심하게 지나는 버스와 그 버스에 무표정하게 올라타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 과거와 현재, 특별한 사건과 평범한 일상, 성스러움과 세속성이 교차한다. 현실에서는 결코 겹쳐질 수 없는 두 가지가 예술 안에서 겹쳐질 때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진주의 힘도 바로 거기에 있다.


3. 딸과 아버지 사이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뭔가를 말할 것 같았는데 끝까지 그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붙잡을 수 없는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p.272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장들이다. 장혜령 작가는 아버지의 앞모습을 끊임없이 보려고 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깨닫는다.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깨달음으로부터 이 글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해본다. 이 글은 끝없는 실패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실패들은 결국 성공한다. 어떤 인물의 초상화를 그린다고 가정해보자. 그 인물의 윤곽선을 꼼꼼하게 그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혜령 작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앞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의 배경을 채워나간다. 배경을 채움으로써 윤곽선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의 문장들이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이 시제를 끊임없이 바꾸고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집어넣는 것이다. 모든 간격들은 딸과 아버지 사이의 간격으로부터 탄생했다. 그리고 그 간격이 만들어낸 드넓은 공간을, 흰 새가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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