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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의 사각지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평점 :
작가의 출세작이라고 하는 소설은 보통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여준다는 것이 세평이고 이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딕슨 카의 밀실 트릭 깨기, 크로프츠의 정교한 알리바이 부수기를 연상케 하는 치밀한 수사 과정이 단연 강점이다. 경찰이 용의자의 행적을 쫓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단서가 드러나므로 페어플레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등장 인물도 몇 안되기 때문에 범인 자체를 추리하는 재미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겠으나, 단서를 통해 드러나는 트릭의 기발함과 정교함, 호텔 업계에 몸담은 경험이 있는 작가의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된 퍼즐은 별 다섯개를 주기에 손색이 없다. 현장의 도면이나 교통 기관의 시간표, 형사의 수첩에 쓰인 도표까지 공개하여 성실함을 더한다.
구성을 보자면,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착상을 도입하면서 칠전팔기로 일어나 결국 범인을 잡아내는 데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생각해 보면 [맛의 달인]같은 연재만화에서 흔히 쓰는 스토리텔링의 수법이라만서도 그런 면에서 원조 리얼리스트들의 작품들보다 좀더 불타오르는 요소가 있다. 형사가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동기가 사적 감정과 공적 의무감 둘 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
비록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본의아니게 증명해 버린 한 형사의 입장에서 많은 중요한 요소들이 서술되긴 하지만, 이런 집요한 수사의 주체가 한 초인적인 개인이 아니라 수사팀에 몸담은 여러 형사들의 노력의 총합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수사반장]을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간간히 짤막하게 나오는 형사란 직업의 지위와 사회적 처우에 대한 서술도 심금을 울린다. 범인을 잡은 뒤의 공허감을 서술하는 대목에 오면 하드보일드의 냄새가 느껴지기도. 마무리를 범인의 진술서로 구성해, 탐정이 결코 알아낼 수 없었던 몇가지 사소한 점에 대해 해명한 것도 깔끔하다.
덧 : 중간에 '대한항공'이 등장해서 잠시 넘어갈 뻔했다. 사건과 별 관계는 없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