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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생일 - 21세기 SF 도서관 1 ㅣ 그리폰 북스 5
어슐러 K. 르 귄 외 지음, 가드너 도조와 엮음, 신영희.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21세기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결코 많다고는 볼 수 없고, 편집자가 잡지-웹진-출판-TV-영화 전반에 걸쳐 친절하게 전해주는 소식은 이미 몇년 지난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 부분을 읽으며 '이런 드라마가, 영화가 있었지, 이런 잡지도'라고 생각하는 씁쓰레한 향수에 빠지곤 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5-60년대, 영광스런 시대에 쓰여진 구식 명작 SF를 재간 삼간으로 울궈먹으면서 간간이 현대의 수작을 끼워넣는 시도를 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이것은 한국인 독자가 국어로 번역된 걸로 접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SF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으리라.
사실 그런 이유에서 2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이 하드하기 짝이 없는 [항체]로부터 SF의 경계를 겨우 넘고 있는 가족드라마인 [보보를 찾아서]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다루고 있는 게 맘에 들었기 때문에. 한두편 정도는 좀 진부한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오랜만에 두툼한 두께에 만족하며 볼 수 있었다.
내용을 보면, 적어도 새 밀레니엄은 SF계에 그다지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진 못한 모양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앤솔로지도 드물 것이다. 그 암울함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 키워드를 고른다면 '오해와 불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뛰어난 중편인 [구세주]를 보면, 인류사 대대로 벌어지는 비극은 인류 자체의 어리석음과 외계에서 떨어진 미지의 물체에 대한 오해로 이끌어져 나가며, 간판작 [세상의 생일]은 전설과 현실이 교묘하게 섞이며 오해를 불러 슬픈 역사를 이끌어낸다. 나머지 작품들에도 황금기에 간혹 보이던, 인류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희망적 분위기는 거의 찾기 힘들다. (가장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 [암초]니 말 다했다.) 자연은 걸핏하면 오염되고, 가족은 가장 약한 연결이며([노간주나무]), 쾌락만을 좇는 이들과 종말을 외치는 광신자들이 흔해빠진 세상([크럭스]). 우리 시대의 SF작가들은 그런 암울한 미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와졌다고 믿는 것일까?
그들의 상상에 의한 예언에 전염되긴 싫지만, 2000년 이후의 현실을 보면 이사람들이 미리 앞서 상상한 것보다 다가올 미래가 훨씬 더 힘들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