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0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김순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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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세이어즈의 저작이 제대로 번역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지만, 이 단편집을 마친 추리소설 독자라면 그녀가 도일의 열렬한 팬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을 품으리라 생각한다. 단편집 전체가 소위 '기묘한 맛'을 지나치리만치 추구하고 있고, 수기에 의존하는 경향도 확실히 코난 도일 풍이다. 허나 그 사실이 좋은 추리소설을 사장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나치게 기묘하고, 대책없이 낭만적이긴 해도 내던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나 할까.

대표단편 '의혹'은 다른 곳에서 많이 읽은 경험 때문에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긴 했지만 여전히 서늘한 걸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실린 피터 윔지 경이 활약하는 단편들은 여러 단편집에서 이곳저곳 짜집기하듯 뽑은 것이라는데, 마치 순차적으로 쓴 것처럼 점점 몰입도가 올라가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도 작가가 탐정에 대한 묘사를 무척 정성들여 쓰기 때문이 아닐까.

제일 흥미롭게 읽은 편을 꼽으라면 '유령에 홀린 경찰관'을 꼽고 싶다. 트릭, 탐정의 인간적 매력, 그리고 코난 도일 풍의 기묘한 맛까지 3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재미. (개인적 경험이 약간 개입해 있다) '구리 손가락 사나이의 비참한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작위적인 면이 옥의 티이나 간담이 서늘하기는 권두의 '의혹'과 맞먹었다.

동 작가의 [나인 테일러스]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아마도 권말을 장식하는 중편 '불화의 씨, 작은 마을의 멜로드라마'의 시골마을 분위기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전체에 흐르던 묘하고 약간은 허황되기까지 한 낭만적 공기가 이 중편에 와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모든 소사(小事)가 하나로 합쳐져 해결되는 결말은 사실만 보자면 끔찍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무슨 시트콤 보는 것마냥 우습기까지 하다. 윔지 경의 위트에 알게모르게 전염된 건지도.

이제 Gaudy Night을 기다려야겠다. 상당히 엄한 제목으로 출판되는 것 같던데...

덧붙임 : 속표지 소제목이 기가 막히게 틀려 있다. 윔지 경 시리즈를 묶은 쪽의 "The Case Book of LPW" 같은 것은 애교로 봐주더라도, '의혹'의 제목이 Five Red Herrings라니 번지수가 틀려도 유분수... 저 이름은 LPW 시리즈의 한 장편 소설 제목이다.  '의혹'의 원제는 말 그대로 'Suspicion' 이며 [In the Teeth of Evidence] 라는 단편집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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