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앨런 피즈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가야넷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방자함에 대면 '화남금녀'는 양반이다. (물론, 화남금녀 첫 권에 해당되는 얘기)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모욕당한 듯한 기분을 금치 못했다. '여성의 90%가 제한된 공간 지각력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적 수치를 자신만만하게 강조하는 저자는, 그 단언으로 말미암아 다른 10%의 여성을 처절하게 모욕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십자수를 좋아하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더욱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진화나 호르몬으로 말하는 남녀의 차이는 이해될 수는 있어도 극복될 수는 없다는 측면. 사회화랑 진화를 교묘히 혼동하여 씀으로써 사회화에 의해 생기는 차이까지도 태생적 한계에 가두어 버리는데 정말 혀를 내둘렀다. 테스토스테론이 인식력을 높여준다는 얘기는 사주팔자가 인간의 명운을 결정한다는 얘기만큼 설득력이 없다.

이런 단정적 서술은 마치 점집에 갔을 때 점장이가 '자네 요즘 문제가 있군' 이라고 말하면 자기 입장을 언뜻 떠올리고 뜨끔하는 거랑 비슷한 효과를 낳는데, 덕분에 사람은 넘겨짚기에 불과한 얘기를 진리의 일부가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남녀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건 긍정적인 요소지만, 이러한 '남의일이 아닌데' 효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약효는 기껏해야 그뿐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야 인류 공동의 주제임은 명백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 본서와 같은 '남/녀 일반론을 빙자한 편견의 집합체'가 TV등의 매체에 양서인 양 소개되는 것을 보면 슬퍼진다. 남녀가 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거야 좋다.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점장이 넘겨짚기와 방법론적으로 똑같은 기만적 통계 수치로 '남자는 원래 그렇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 는 식의 섣부른 일반론에 경도되어 진정한 자기 능력을 인식치 못하는 것은 분명히 사회적인 손실이기 때문이다.

모욕받는 10%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리뷰를 썼다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다. 맘에 안드는 것은 맘에 안든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TV선전까지 탔다는 점도 포함하면 별 0개를 주고 싶은데 옵션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1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