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내 동생
빌리 슈에즈만 지음, 김서정 옮김, 민은경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3.3.21 작성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죽음에 관한 책들이 요즘 꽤 나오고 있다. 특히 죽음이라는 주제를 아주 자연스레 아이들이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책들이 많다. 아이들에겐 무조건 밝은 주제만 들려주어야 한다는 오랜 생각이 무너지면서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더더욱 출판되어지는 듯하다.그런 가운데 오늘 난, 아주 잔잔하게 아주 고요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제목은 '잘가라 내동생'이다.

벤자민이라는 열 살 짜리 주인공 남자아이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그런데 그 영혼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투명인간처럼 가족들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자신의 죽음이 처리되는 과정과 가족들의 아픔을 지켜 본다.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아주 고요하게.

난, 내 어머니의 죽음이 닥쳐와서야 알게 된 주검의 처리 과정을 이 책에서는 열 살 아이의 눈높이로 잘 표현해 두고 있다. 주검이 닦여져서 냉동실에 보관되어 땅에 묻히기까지 벤자민은 자신의 육신이 어떻게 처리되어지는 가를 지켜 본다.

그리고 벤자민은 자기처럼 죽은 자들의 영혼을 만난다.그들의 세계에서는 살아있는 가족들 기억 속에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한 영원 속으로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지상을 떠돌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이들이 잊혀져 갈 수록 몸은 점점 엷어(투명해지며)지며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겨질 때만이 완전한 영혼의 세계로 떠날 수가 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서 빨리 영원 속으로 이슬이 되어 간 자도 있지만,가족들의 아픔이 너무나 커서 7년 째나 지상을 떠도는 영혼도 있었다.그러나 그 어느쪽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벤자민은 가족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맘이 아프다.그리고 서서히 자신을 잊어 가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이 엷어져 가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가족들 역시 아들의 죽음을 가슴 안에 담아두기보다 털어버리려고 노력할 때만이 이별의 고통은 줄어들고 슬픔은 잦아들게 된다. 살아남은 자들에겐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방도는 하나 뿐이었다. 바로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을 쏟아내고 드러내는 것이었다.웃으면서 죽은 자를 회상할 ‹š까지 말이다.

이 책은 이이들 보다 어른들이 먼저 눈물을 흘릴 것이다.내가 그런 것 처럼. 또 책 속의 한 노파는 이렇게 말한다. '늙은이의 죽음은 그의 과거와 함께 그에 대한 추억도 묻어 버릴 수가 있지만, 어린 아이의 죽음은 미래를 함께 묻어야 하기에 더욱 힘들고 가슴아픈 일이다.' 맞는 말이다.그래서 '부모는 땅에다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다 묻는다'고 하는 가보다.

내일이면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난, 친정엄마 이야기만 해도 눈에 눈물부터 고이고, 엄마의 제사를 앞두고서는 2월 3월 수시로 눈물을 흘리고, 돌아가시전 너무나 고생하신 엄마 생각에  지금 내가 편하게 지내는 게 늘 죄스럽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다 보지 못하고 가신게 너무나 서러워져서 좋은 일 앞에서도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타인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언제나 혼자있을 때면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나온다. 그리고 다른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눈물이 쏟아진다.

성당에 한번씩 갈 때면 눈물이 줄줄 흘러 나오고, 엄마를 떠올릴 만한 무언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것도 혼자 있을 때만. 이런 내 맘을 아셨는지 언젠가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니가 자꾸 엄마 생각에 맘을 상하면 너희 엄마도 슬퍼서 하늘나라 못 들어가고 지상에서 떠돈데이~그러니 니도 얼른 맘을 다잡고 울지만 말고 기도 열심히 해서 엄마를 어서 좋은 곳으로 떠나가시도록 도와 드리라."

벤자민이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보면서 영원의 세계로 떠나지 못하고 슬퍼하는 걸 보면서 나는,예전에 내게 하신 시어머니의 말씀이 더욱 생각이 났다. 꾹꾹 누르려고만 하고, 나 자신을 괴롭히려고만 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 자신 안에 갇힌 슬픔을 비워 낼 수 있는 그릇을 찾지 못한채 내 안으로만 상처가 덫나게 하고,염증이 곪아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저절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는데 왜이러나'하면서 스스로 강해지라고만 소리지른다.

벤자민의 가족들이 '애도의 모임'을 찾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가족들을 만나 서로를 어루만지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었듯이 나는 내 안의 것들을 비워 낼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오늘 난, 삶의 지혜와 용기를 동화 속에서 찾는다. 역시 세상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동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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