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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1~7 세트 - 전7권 - 개정증보판 ㅣ 장애공감 1318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의 아버지는 장애인이시다. 그것도 가벼운 등급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경제활동을 하고 계신다. 삼남매를 혼자서 뒷바라지 해 오셨을 뿐 아니라, 젊은 이들을 능가할 만한 건강을 가지고 계신다. 물론 그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많은 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또 당신 자신의 선한 성품과 정직함이 주변인들에게 많은 신뢰를 주었기 문에 더욱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성인이 될 까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길 누군가에게 드러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내 의식 안에 아버지는 차라리 없는 존재에 가까웠다. 그로인해 엄마의 존재가 나에겐 클 수밖에 없었으며, 아버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언제나 엄마가 존재하였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조차도 나와의 동일시 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인 거리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
내가 결혼을 한 후, 아버지는 '장애인'으로 기관에 첫등록을 하였다. 높은 장애 등급에도 불구하고, 예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그렇게 등록을 한 것은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별다른 혜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날아온 '장애인증'은 자동차세를 면제 받거나, 핸드폰 요금을 할인받을 경우에 한해서만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런 상황이 생길 때면 그때서야 나는, '아, 나의 아버지는 장애인이셨지'하고 재확인하게 된다.
중증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엔 아버지는 비장애인으로 남아있다. 그건 '비장애인'으로서의 긍정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상황을 외면하고자 했던 무의식의 결과인 듯하다. 또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아버지의 일상에 우리 가족이 너무나 익숙하여 그것에 대한 불편함이 별로 없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뒤늦게 아버지의 삶에 대해 눈여겨 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책을 통해서이다. 그 책들 중엔 아이들의 동화책들도 한 몫을 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우리 누이', '다이고로', '오체 불만족', '휠체어 타는 내 친구', '악어클럽',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내 동생' 같은 책들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나의 편견을 들여다 보았고, 또 나의 상황을 직면했던 것이다.
'도토리의 집'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만화책인데,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와 장애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든 '도토리의 집'에 관한 준비과정이 담겨 있다. 현재 7권까지 출간된 이 책은 화려한 광고가 아닌 입소문에 의해 조용하게 읽혀지는 듯 하다.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그러나 그 감동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격정적이다.
" 내 아이 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
장애아를 둔 부모의 바람은 유일하게 이것이다. 부모가 죽고난 이후에 장애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염려하여 살아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죽은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아프게 그것을 준비해 나간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다.

'도토리의 집'에선 장애아를 둔 가족의 아픔, 절망에 가까운 외침들이 담겨있다. 과정됨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강요없이 드러내 보인다. 나는 그들의(장애아와 부모 모두) 너무나 간절한 소망 앞에서 숙연해 졌으며,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오신 내 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을 상상해보며 눈물을 흘렸다. 한 어린 소년의 좌절된 꿈과 절망이 또렷이 내 안에 남겨져 있다.
또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부모들의 아픔이 점차 인간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사랑으로 승화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 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배워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뉘우침의 눈물이건, 동정의 눈물이건, 감동의 눈물이건 이 책을 읽고나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응시하던 세상의 작은 사물과 자잔한 일상에 우리의 시선도 따뜻하게 함께 머물 것이라 확신한다.

일본은 장애인을 다룬 책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것도 참으로 좋은 책들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들이 참으로 따뜻하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도토리의 집'은 그 생각을 너무나 굳히게 만들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일수록 정상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고, 사회의 약자는 소외되기 쉬운 일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아주 심한 편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더 강한 듯하다.
차별로 치자면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 그에 대한 개선의 노력은 미비하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기를 희망하나, 아직 먼 길이라 여겨질 때가 많다.
지하철에 있는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죽은(전동 휠체어의 무게를 감당못한다고 함) 장애인들의 이야길 들었을 때, 걸어다닐 수 있는 자유조차 제한되어 있는 그들의 일상을 엿볼 때, 장애아를 둔 부모가 딸의 생리를 축하해 주지 못할 때, 주변 친구들을 '애자'라고 놀려대는 우리의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때 ...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우리 안에서 지워내지 않고는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서로 다른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단지 드러나는 외형만으로 구분지어 아닌 척 할 따름이다.
나는, 모양도 제각각인 한 톨의 도토리가 참생명을 품어 커다란 참나무로 성장하듯이 우리 곁에 머무는 수많은 '도토리'들이 제대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도 그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들로 인해 맑아지는 세상을 호흡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