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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십자군 이야기'의 저자 '김태권' 씨가 책말미에 '말해요 찬드라' 이 책을 소개했었다. 그 글을 읽고 릴레이를 하듯 나는, 이 책으로 자연스레 넘어왔다. 네팔에서 온 이주 여성노동자 '찬드라'의 이야기는 작년 초, 대학원 세미나 자리에서 잠깐 들었던 적이 있었다. '언어제국주의'와 '수사학'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는데, 그때 누군가가 언어를 잃은 제 3세계 여성의 처절한 삶을 소개하였었다. 그때 들은 '찬드라'의 이야기는 나를 참으로 경악하게 만들었었다.
식당에서 밥값이 없어, 주인에 의해 경찰로 넘겨진 그녀. 여권도 사장에게 빼앗긴 터라 자신의 이름을 대며 저항을 하였건만 정신이상자로 분류되어 결국, 정신병원으로 넘겨졌다. 그곳에서 '선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6년 4개월을 감금상태에서 지내게 된다.
그녀를 수소문하던 네팔 공동체는 그녀의 행방을 모르게 되자, 사망신고를 냈었다. 후에 그녀를 찾게 된 후, 이 사건은 몇몇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찬드라는 그녀의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한국의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해주듯, 이 책의 내용 역시 '그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한 명의 '찬드라'가 아니라 여러 명의 '찬드라'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중성 앞에 갈갈이 찢겨 처참하게 죽어나가고 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이 나라에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웠다.피부색이 다른 타민족에 대해선 지나치게 배타적인 한국인. 특히 제 3세계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은 외국인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라고 떠벌리면서 그 아래에서 행하는 우리들의 '민족주의'는 역겹기까지 하다. 아니, 무섭다.
어젯밤에 이 책을 두 세시간만에 읽어나갔는데, 다 읽고나서도 잠들지 못했다. 답답한 현실에 가슴이 탔다. 오늘 아이들과 인권에 관한 수업을 하면서 나는, 한 시간에 걸쳐 '찬드라'를 소개하였다. 아이들은 그게 사실이냐고 되물어왔다. 나도 믿을 수가 없는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한창 비판적인 사고를 만들어가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어떨까 잠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내가 바라는 희망은 언제나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을 찾다가 '벤잘'을 '펜잘'로 잘못알고 먹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그.
백일이 지난 아기에게 하루 온종일 60ml의 분유만을 먹이는 바람에 아이를 영양실조에 걸리게 만 든 그녀.
뇌를 다쳐서 머리를 반 잘라내고는 갑자기 아기처럼 변해버린 그.
고국에서 민족해방운동에 동참했을 만큼 열정적이었는데, 이젠 대한민국 노숙자로, 알콜 중독자로 변해가는 그.
"끝없이 제 1세계로 유입되는 제 3세계의 꿈들. 그러나 끝없이 배신당하고, 끝없이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제 3세계의 꿈들. 전세계 이민 노동자들의 사랑곶 너머로 퍼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한탄하던 저자의 분노가 내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귓속에서 내내 윙윙거린다.
당신들의 나라, 그 잘난 민족이 과연 어떤 모습인가?하고 내게 되물어온다.
그들이.
수많은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