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지 이형진의 옛 이야기 1
이형진 글 그림 / 느림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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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을 가기전 어디선가 이 책의 줄거리를 대충 보았었다.내용이 참 신선하게 와 닿았지만, 인터넷 상으로 본 그림이 나를 끌지 못했다. 일본 작가인 '야시마 타로'가 그리고 쓴 '까마귀 소년'을 보았을 때처럼 그 날카로운 그림으로 인해 다 읽고 나서도 무언가 찜찜하게 남겨질 듯했다.우선 흑색의 뭉퉁한 스케치가 동양적인 색채로 여겨지기 보다는 하얀 여백에서 품어내는 그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했었다.

그런데 도서전을 뒤지고 다니다가 '느림보'출판사 앞 액자 속에 담긴 '끝지'의 마지막 장면이 나의 발길을 묶었다.안내자는 끝지의 작가 '이형진' 씨의 야심찬 계획을 들려 주었다. 앞으로도 그 작가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 접근을 할 것이라고 한다.그에 대해 출판사 측에서도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안내자와 나는 서로 끝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흥분했었다.

내가 한 장 한 장 읽어나갈 때 안내자는 끊임없이 책의 내용을 설명했다.글 속에 담긴 내용이지만 그녀는 다시 들려주고 싶어했다.책장을 넘겨가면서 서서히 내 눈엔 눈물이 고이고, 팔에 소름이 오독오독 피어났다,그런 나를 보더니 옆에 서 있던 안내자는 얼굴 붉히면서 하는 말 ' 저희들도 처음 그랬어요.'

줄거리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여우누이'이야기다. 사냥꾼이 죽인 여우의 새끼가 사람으로 변신해 어미의 복수를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냥꾼의 막내아들이 다시 여우를 죽인다는 이야기.그런데 '끝지'는 이 상투적인 줄거리를 완전히 벗어났다. '끝지'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자란 여우누이와 막내 아들간의 뗄 수 없는 정과 각자 자기 가족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서로에게 남겨진 운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남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여우누이'를 읽고 났을 때 대부분의 아이와 어른들이 여우를 무찌른 안도감에 숨을 고른다면,'끝지'를 보고 나서는 죽어가는 여우가 가엾고,막내 아들의 애틋한 사랑에 목이 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겨진다.'죽으면 안돼.꼬랑지 오빠.'끝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순돌이가 정신을 차리자,끝지는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끝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돌이의 가슴저미는 아픔이 얼음을 씹어 먹는 것처럼 내 가슴을 찌른다.책을 덮고도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나는 눈물이 나고,여전히 몸엔 소름이 돋는다.

서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그 아픔까지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싸안기엔 너무나 너무나 절망스런...나의 삶에서는 제발 이런 아픔 비껴가게 해달고 빌고 싶다.그 아픔이 나를 삼켜 버릴 듯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책과 동화책이 만나는 절묘한 지점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그리고 책을 펼쳐 줄거리를 읽어주자, 여러 명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너무 슬프다면서.이렇듯 작가의 의도는 탁월했다.소름돋도록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게 그의 목적이라고 하니 말이다.다음에 그의 책을 읽을 때는 나도 각오를 하고 봐야 겠다.그게 부질없다 하더라도 지금 보다 덜 가슴 아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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