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에 대한 연구가 잘 설명된 책이 있으면 내 판단에 참고하고 싶다.
사람들은 부모님에게보다 자기자식에게 집중하게되는 정당한 이유로써 내리사랑을 언급한다.
자식을 키우는 동안은 자신의 삶과 동일한 수준으로 자식에게도 공유시킨다.
그러나 부모의 삶은 자신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 동안만 그 수준을 공유하고,
부모를 떠나 독립한 후에는 부모의 삶의 수준은 부모에게 통째로 맡겨진다.
부모가 다시 자식들처럼 스스로 부양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가고 있음에도.
자식을 독립시킨 후에도 자식의 삶의 수준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얼핏보면 선후가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뭔가 끊어져 있다.
그것은 공동체다.
혈연공동체.
그러므로 평생 연결고리가 이어진 공동체.
그래서 삶의 수준이 늘 연결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 수준이 동시에 움직여져야 한다.
부모가 궁핍한데 자식이 넉넉할 수 없고,
자식이 궁핍한데 부모가 넉넉할 수 없다.
전체 사회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으면 이상향이겠지만,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최소한 혈연공동체의 삶의 수준은 같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이 어찌 내리사랑으로 정당화될 것인가.
최소한 의식주는 같은 수준에 있어야 한다.
가능한 취미, 오락의 수준도 맞추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될 수가 있다.
내리사랑체제는,
가장 경제적으로 왕성한 시기에,
자식에게는 그 수준을 공유시키고,
부모는 소외시킨다.
삶의 환경은 늘 변한다.
그래서 동시적 공유의 개념이 필요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한정된 삶은 그 끝을 향해 달린다.
분배에 문제가 있으면 지금 당장 교정해야 한다.
늦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