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책읽는 당 신청해놓고 유령당원처럼 지내오다가 은희경 작가의 신간 소식에 단편하게 책읽는 당 신청!!
손바닥 크기의 노트책에 당황스러웠지만, 출퇴근 시간 짬짬이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 줘 이후 처음 인 것 같다. 물론, 단편집을 구입하였으나 아직 완독을 못했으니..
암튼, 랜덤으로 온 단편 중 내 손에 온 것은 '대용품'
넌 어때? 뭐가? 삼십대. 그녀는 J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릴 때는 삼십대면 굉장히 늙은 줄 알았어. 이렇게 모르는 게 많고 가진 게 없을 줄은 몰랐지.
내 인생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딸에게 아이큐를 속인 어머니, 아이큐가 들킬까봐 불안했던 그녀. 그리고 나이를 속인 J.
나이를 먹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이끌어갈 수있을 거라 믿었던 삼십대지만,
과거의 나비효과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연속이다.
잘못 어른이 돼버린 사람에게도 아주 가끔 어린 시절의 짧은 꿈과 해후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생의 찬란한 진품을 되찾는 순간이며, 그때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불꽃의 그림자가 강물에 어리면서 진짜 축제가 시작되는 거라고.
욕망과 거짓을 잘 다루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어린 J에게 거짓의 동심원이 만들어내는 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하듯 자신의 축제에 초대받지 못하는, 오래된 대용품인 자신.
자신은 어른이기 때문이라는 J의 말이 쓸쓸함을 넘어 서늘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다르게 낡은 신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 대비되었을 어른의 모습!
신 발
- 서정주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잔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다다가 신겨 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습니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되어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제목을 듣고 떠오른 시가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본문에서도 인용된 시 서정주의 '신발'이다.
버스 사고가 나던 그 순간, 큰 소년의 신발을 신은 작은 소년과, 맨발의 큰 소년에게 신겨졌던 작은 소년의 신발.
아마 그 이후부터 큰 소년의 새 신은 작은 소년에게 신겨졌던 신발의 대용품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