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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구판절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반드시 행복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서로의 체온을 묻히고, 서로의 지문을 가슴에 감으면서 서로의 숨결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는 만남일까. 초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53쪽

" 새아씨 눈길이 너무 머네요. 아녀자의 눈은 항상 제 치마꼬리 언저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답니다. 제 식구, 식구들 밥상, 식구들 잠자리, 천근같이 모시는 어른들, 자식들, 부리는 아랫것들 두루두루 눈길로 어르는 게지요. 그 언저리를 벗어나면 먼 데 것이 보이고, 그러면 그게 바로 마음병이 된다 하데요. "-76쪽

문득 서글픔이 일었다. 의구심도 일었다. 여자의 정조가 그처럼 완강하게 보호받고 지켜지기를 바라는 만큼 여자의 심성이나 마음도 소중하게 가꾸어지고 갈무리 되는가, 그건 저버리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마음이나 감정보다 더 귀하고 중히 여기는 정절이라는 괴물이 가슴을 물어뜯었다. -93쪽

그래도 초희, 그미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굳은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밤이 지나면 낮이 오듯이, 봄과 가을이 순번대로 다가오고 지나가듯, 어떤 상황이든 지속적으로 무멀지 않는다는 것을 그미는 알고 있다. 건천동에서 옥인동으로 옮겨앉은 것뿐인 것을...... 다만 그 거리가 건너 뛸 수 없는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98쪽

"사람들은 저마다의 올가미를 목에 걸고 살거니, 불자들이 말하더구나. 업보라고 말이다."-240쪽

"결박하는 것도 남이 결박하는 것이 아니고, 결박을 푸는 것도 남이 푸는 것이 아니라. 풀거나 결박하는 것이 남이 아니므로 모름지기 스스로 깨달아야 하느니.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면, 놓아버릴 것이 없는 데까지 이르고, 놓아버릴 것이 없는 그것까지도 다시 놓아버려야 하는 데......"-241쪽

"사람이 사람을 길들이기 위한 제도, 생이불유의 큰 뜻을 거스르는 일이 분명하다고, 낳되 낳은 결과를 내가 소유하지 아니한다고, 이도사님이 늘 말씀하셨어. 생은 끊임없이 생성의 과정이기에, 그 긴 노정 속에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순간, 생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그건 이미 생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하셤ㅆ어. 조선의 아낙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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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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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라딘 반값도서를 습관적으로 훑다가 말 그래도 '지른' 책. 행정법을 '살짝' 배우면서 궁금했던 법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읽기 시작한 책이다. 한때 검사에 재직했던, 하지만 지금은 검사를 때려친 한 법학자의 헌법에 대한 솔직한 견해가 드러나 있다. '헌법'이, 더 나아가 '법률'이 왜 시민의 삶과 평행선을 걷고 있는지, 왜 국민들이 법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지에 대해 여러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법률용어'와 관련된 꼭지였다. 아무런 법학적 지식이 없이 무작정 행정법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에 느꼈던 벽. 법학자, 검사, 판사들이 쓰고 있는 신기한 용어들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말 그대도 '외계어' 였다. 일반적으로 어떤 좋은 일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선의(善意)'를 '어떤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악의(惡意)를 '어떤 일을 알고' 로 사용하는 등 법학에서의 단어는 일반인이 아는 단어의 뜻과 괴리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또 아예 그 의미를 추론할 수 없는 한자어, 문장을 읽었는데 전혀 무슨 뜻인지 짐작이 안되는 경우 등등 법전에 있는 깨알같은 글씨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다. 저자는 법전의 이런 '외계어성'은 국민들이 법을 어렵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라고 비판한다. 요즈음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순화해서 쓰자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쉬운 용어로 개정되거나 대체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법'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 듯하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판,검사로 임용돼 갖가지 끈과 연줄을 만들며 법류귀족으로 성장하는 법조계. 이런 법조계의 풍토를 저자는 자신의 사법연수원 시절, 법무장교로 복무 시 동기들이 가졌던 이상한 특권의식 등으로 설명한다. 또한 특권의식으로 물든 법률가가 어떻게 권력기관의 수족으로 타락하는 지, 임용당시 가졌던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초임 판검사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뚜렷히 그려낸다. 저자는 이런 법률가의 권력지향성이 최근 도입된 로스쿨 전형을 통해 조금은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출신성분이 다양한, 특정학교나 계파 출신이 아닌, '똥개 법률가'의 시대를 로스쿨이 배출하는 많은 수의 변호사들이 만들어 낼 수 있을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법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 무엇이 법에 대한 접근 자체를 어렵게 하는 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책 읽기는 '괜찮은 교양강의 하나' 들은 정도로 마무리 됐다. 강의를 많이 하는 교수 답게 저자는 어려운 용어를 쉽게 표현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법조계의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쓰이는 경어체는 책에 적응하기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저자의 또다른 배려라 생각하며 읽어내려갔다. 조금은 정리된 문어체로 쓰이는 게 내용을 전달하기에 더 쉽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권위가 넘치는 검사와 변호사, 이들이 진정한 국민의 수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정말 '아직도 멀었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개개인의 의식변화부터,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야 할 것 같다. 갈 길이 정말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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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세트 (무선)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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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험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나에게는 긴긴 수험생활을 끝낼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합격 이후엔 무얼 할지, 어디를 갈지, 방향도 없이 정해 놓은 그 리스트의 1번은 바로 '태백산맥 읽기' 였다. 고등학교 시절 부터 대학에 이르기 까지 이과계열을 전공한 내게 수험 국사는, 특히 한국 근현대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그저 당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그 주역들이 아직 생생히 현실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 태백산맥은 그 요동치는 현대사의 중심에 선 소설이다. 임용 6개월이 지나는 지금, 아침 출근길, 초과근무하며 짬짬히 읽은 이 책이 어느새 10권을 향해 왔다.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순사건부터 시작된다. 전라도 벌교를 중심을 펼쳐지는 소설은 당대의 여러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강직하고 뼈대있는 양반댁에서 자라 성장한 김범우, 가난하지만 똑똑해 일찍부터 사회주의에 물든 염상진, 형인 염상진에게 눌려 거리의 주먹패로 살아가는 염상구, 숯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후에 빨치산 활동으로 성장하는 하대치 등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한 소설의 캐릭터를 뛰어넘는다. 범상치 않은 이들의 공통점은 이 시대가 낳을 수 있는 '그럴듯 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여순사건에 뒤이어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 빨치산들의 활동과 남한 단독 총선거, 이승만과 자유당의 집권, 민족의 가슴을 후벼놓은 6.25, 방위군 사건과 양민학살, 미군의 참전과 휴전과정 등등 열권의 태백산맥은 해방이후 한국의 굴곡을 단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6.25에 이르러 좌익과 우익 중 어떠한 가치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당대 지식인의 고뇌와, 결국은 사회주의를 택할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모습에서 이른바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민족'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그것이 진정한 독립의 선행조건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던 김범우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태백산맥이 가지는 또다른 가치 중 하나는 민중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데에 있다.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죽임을 당한 남편을 대신해 입산한 외서댁이라든지, 마름의 횡포에 시달리는 여러 소작인들의 삶,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고 의료행위에만 힘쓰던 벌교의 유일한 의원 전원장 등등 시대가 가질 수 있는 민중의 모습이 소설 전체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이들 민중이 시대의 굴곡을 맞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어떤 파도가 이들을 휩쓸고 지나갔는 지를 분명히 볼 수 있다. 6.25전쟁 당시 군대가 인공기를 들고 진군하면 인민공화국 만세를, 태극기를 앞에 내걸고 진군하면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대던 민중들의 모습이 그 단적인 예다. 빨치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결성된 보도연맹과 이들을 끝내 총살시켜 버렸던 정권 또한 가슴에 사무치긴 마찬가지다.       

 

태백산맥, 그 한의 끝줄기는 어디일까. 몇몇대를 걸쳐 우리 혈관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그 한의 정서 일 것이다. 해방이후 민중의 삶, 지독한 가난, 총과 총을 맞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한이 모여 아마 지금의 우리 민족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닐까. 태백산맥을 단순히 소설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아마 이 소설 너머에 현실이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항상 뒤따라 온다. 태백산맥을 잉태한 세월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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