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반드시 행복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서로의 체온을 묻히고, 서로의 지문을 가슴에 감으면서 서로의 숨결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는 만남일까. 초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53쪽
" 새아씨 눈길이 너무 머네요. 아녀자의 눈은 항상 제 치마꼬리 언저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답니다. 제 식구, 식구들 밥상, 식구들 잠자리, 천근같이 모시는 어른들, 자식들, 부리는 아랫것들 두루두루 눈길로 어르는 게지요. 그 언저리를 벗어나면 먼 데 것이 보이고, 그러면 그게 바로 마음병이 된다 하데요. "-76쪽
문득 서글픔이 일었다. 의구심도 일었다. 여자의 정조가 그처럼 완강하게 보호받고 지켜지기를 바라는 만큼 여자의 심성이나 마음도 소중하게 가꾸어지고 갈무리 되는가, 그건 저버리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마음이나 감정보다 더 귀하고 중히 여기는 정절이라는 괴물이 가슴을 물어뜯었다. -93쪽
그래도 초희, 그미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굳은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밤이 지나면 낮이 오듯이, 봄과 가을이 순번대로 다가오고 지나가듯, 어떤 상황이든 지속적으로 무멀지 않는다는 것을 그미는 알고 있다. 건천동에서 옥인동으로 옮겨앉은 것뿐인 것을...... 다만 그 거리가 건너 뛸 수 없는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98쪽
"사람들은 저마다의 올가미를 목에 걸고 살거니, 불자들이 말하더구나. 업보라고 말이다."-240쪽
"결박하는 것도 남이 결박하는 것이 아니고, 결박을 푸는 것도 남이 푸는 것이 아니라. 풀거나 결박하는 것이 남이 아니므로 모름지기 스스로 깨달아야 하느니.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면, 놓아버릴 것이 없는 데까지 이르고, 놓아버릴 것이 없는 그것까지도 다시 놓아버려야 하는 데......"-241쪽
"사람이 사람을 길들이기 위한 제도, 생이불유의 큰 뜻을 거스르는 일이 분명하다고, 낳되 낳은 결과를 내가 소유하지 아니한다고, 이도사님이 늘 말씀하셨어. 생은 끊임없이 생성의 과정이기에, 그 긴 노정 속에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순간, 생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그건 이미 생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하셤ㅆ어. 조선의 아낙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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