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길 찾기 푸른도서관 68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금이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긴 건 10년이 훌쩍 넘었다. 작가와 출판사에 집중하지 않는 나인데, 이금이 작가의 글은 배경과 인물에 상관없이 마음을 녹이는 마법을 부려 궁금증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끝을 예상하거나 짐작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독자가 독자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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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쯤 읽고 너무 좋아서 우리집 십대 두 소녀에게 권하여 읽게 한 「너도 하늘말나리야」 그 후속작 「소희의 방」에 이어 두번째 후속작으로 출간된 『숨은 길 찾기』를 오늘에서야 만난다.

달밭마을의 미르, 바우, 소희가 그 동안 얼마나 자랐을까, 그들의 가슴엔 어떤 이야기들로 가득할까,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설레온다. 상처투성이였던 그들의 가슴에 깃들었을 희망의 빛을 기대하며 책장을 연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소희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작은집으로 갔다가 엄마를 만나 새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미르는 달밭마을에서 살 때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사는 소희를 만나면서 약간의 경계심이 생기고 비교가 되면서 자신이 위축됨을 느낀다.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했던 어린 시절의 친구를 다른 공간, 다른 시간과 마주하게 되면 비교하게 되고, 상대에게서 옛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운 대상이 예전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니.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냐? 진짜 몰라보겠어. 너도 그렇지?"

미르가 바우에게 또 동의를 구했다. 바우는 미르의 말이 친구를 알아보지 못한 변명으로는 너무 궁색하다고 생각했다. 헤어진 지 몇십 년이 됐다거나 성형을 해서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옷이나 신발이 달라졌다고 몰라보다니. 그건 절친이라고 떠들면서도 실은 미르가 그 동안 소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든지, 소희를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들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희는 아픈 할머니와 살 때도, 남에게 물려받은 옷을 압고 있을 때도, 심지어 작은집으로 갈 때에도 의연하고 당당했다. 옷이나 신발 따위에 자기 가치를 맡길 아이가 아니었다.

숨은 길 찾기. 22~23쪽

 

미르는, 소희에게 예고에 간다고 한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학교 연극반의 오디션을 보는 등 한번쯤 생각해 본 꿈을 위해 매달려본다. 연기학원을 다니고 연극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짜릿함을 느껴보지만, 곧 자신의 실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하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은 꿈을 꾼다. 그 꿈이 허무맹랑하고 가능성이 1도 없어보이지만 꿈꾸는 순간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끊임없이 꾼다. 그러나 부모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현실과 마주서게 되면서 꿈은 깨어지게 되고,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경험에 힘입어 말하는 부모의 말은, 우리 아이들의 꿈을 좌절시키는 말이 된다. 꿈과 현실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앞서는 것이 현명한 부모의 길이 아닐까 싶지만 이 또한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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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새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과 단란한 가정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미르의 눈에 소희는 부러운 대상으로만 보일 뿐, 새아빠가 아닌 아빠와 딸이 되기 위해 애써 노력한 것은 보지 못했다. 소희는 보이고 싶지 않아 잘 감춰두었던 것이다. 잘 해야만 사랑받을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 소희의 속내를 들으며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했을 소희의 마음이 안쓰럽다. 소희는 미르에게 그동안 감춰두었던 속내를 열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바우는 소희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정원을 꾸미면서 조금씩 덜어낸다. 항상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소희에 대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어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간다. 그런 바우의 마음에 봄바람이 일고, 그 마음은 달밭마을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게 된 재이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시간과 만나게 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용기를 갖게 한다.

"뭘 먼저 할지 순서는 내가 결정해요. 내 인생이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거라구요."

"뭐라고? 네 인생이라고? 그게 너 하나 보고 산 애비한테 할 소리야? 애비 말이 그렇게 하찮으면 이 집에서 나가!"

[중략]

아들 일인데도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시선으로만 보려는 아버지는 자식을 자살하게 만든 닐의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자기 뜻대로 결혼하지 않으면 사형시켜도 된다는 허미아 아버지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16세기에도 20세기에도 부모들은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자식들을 마음대로 하려 들었더.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아버지도 그랬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침대에 몸을 던지듯 놓은 바우는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키팅 선생님은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책상 위로 올라가게 했다.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우는 아버지를 책상 위로 올라서게 하고 싶었다.

숨은 길 찾기. 168~169쪽

 

우리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도 의무도 있다. 그 길을 함께 걸어가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기다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인내심과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높이의 눈도 필요하다. 그것이 쉽지 않기에 우린 매번 아이들과 싸워야 하고, 누군가는 뜻을 굽혀야 한다. 자기의 꿈과 기대를 접는 것이 포기하는 것만 같고 지는 것 같아 끝까지 맞서기 위해 전투 태세를 취한다. 그 전투또한 성장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임을 우리는 조금 뒤에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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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길 찾기』는 미르와 소희 그리고 바우와 재이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담고 있다. 또한 미르의 엄마와 바우의 아빠, 소희엄마와 새아빠, 재이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함께 전달되면서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들을 드러내고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누구에게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기에 언젠가는 아물고 치유될 상처이지만, 그 순간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아간다. 서로의 상처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이미 안아주고 있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상대로 인해 이미 상처가 아물어가는 이야기가 『숨은 길 찾기』에 담겨있다.

나무둥치를 떠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길들이 대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주저하고 고민하며 머물러 있기만 해서는 어떤 길도 찾을 수 없다고. 인생이란 자기 앞에 펼쳐진 길들 중 자신의 길을 찾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그게 우리 삶에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숨은 길 찾기. 225쪽

 

상처를 안고 만난 이들이 이금이 작가의 손에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달밭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알아주면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 『숨은 길 찾기』는 잔잔하게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갈등의 골이 깊지 않아 편안했고,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따듯했고, 서로를 안아줌에 주저하지 않아 부러웠다. 그렇게 『숨은 길 찾기』는 나에게 책이 주는 즐거움과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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