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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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을 줄거리로 보려고 한다면 일단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순간순간의 공감과 비유의 문장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라고 하고 싶다.

 

가장 좋았던 문장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인 사람이 나뿐이라는 것이다... 랑 비슷한 문장ㅋ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부러울 것 없이 단란한 가정에서 다단계에서 사기로 수배자가 된 엄마와 새로운 가정을 차린 아빠로 부모님이 갈라선 후 조부모님 집에서 눈칫밥 먹은 세미는 원래 원치않는 아이였음을 알고 낙태당할 뻔했던 자신의 출생에 대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뚜렛 장애라는, 틱 장애의 발전된 형태의 질병을 앓는 준모.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기억하는 이지혜.

 

이 셋의 우정이 얽히면서도 결국에는 독립적인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은 90년대로 90년대를 향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나는 삐삐 구경할 새 없이 핸드폰을 들고 다녔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새로웠다.

 

사실 독자로서 이 셋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동정심을 가지고 셋의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결국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참 아팠다. 미국으로 도망간 세미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으면 했고, 아빠 역시 예전의 단란한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했다. 세미가 좋아했던 남자에게서 단지 성적인 교감이 아닌 사랑을 받았으면, 했다.


왜냐면, 세미가 생각하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이 친구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했다면 독자의 자존감에도 행복감이 조금은 들지 않을까. 세미의 생각에 공감하는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혼자라도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있을 텐데, 작가가 미처 그 부분은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가장 주된 주제는 아무래도 혼자라도 괜찮아,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면. 이니까. 내 편이 없지만 나 스스로 내 편이 되자는 생각은 좋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사랑받는 능력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주인공은 성장하면서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을 줄여나가고 있지만 그건 어리광을 줄여나가는 것과는 다르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한 사람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까.

 

세미를 좋아하지만 뚜렛 장애 때문에 괴로워하는 준모가 좀 더 행복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했다. 물론 행복해졌지만 보다 더 자세히 그려졌으면 했다.

 

지혜가 학원강사를 하면서, 평생 후회로 남는 셋의 완벽범죄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셋은 외로움을 완화시켜주는 어떤 '내 편'도 얻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요즘의 리얼리즘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소설. 그렇지만 글에서 나타난 이상 좀 더 욕구를 풀어헤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덜 외롭고 조금 더 화려하고 여유로운 겉으로의 문제가 아닌 내면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거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소설 말이다. 아니면 제 3의 방법으로라도 보다 박진감있는 플롯으로.

 

성장소설에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 지나간 광경을 그려낸 소설이지만 뭐랄까, 나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다른 사람 삶도 별 것 없고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교훈은 순간마다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어떤 소설이고 어떤 장면이든 그릴 수 있는 장면이라면 모두 그려내야 하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도 하나의 붓질이라고 생각하면, 그래, 그렇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일단 화자로서의 세미 분량이 압도적이고, 준모와 지혜는 극히 일부로서만 말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쉬운 것은 이 셋이 좀 더 숨기지 않고 서로 기댈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인물들은 사랑스럽다기보다는 불쌍하다.

 

그런데 배경이 강남이라는 점에서, '어떤' 곳에 살든 어차피 '힘들'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인가 하게 된다. 결국 세상은 공평하다고 말하려는 경향이 강한 데도 불구하고 찜찜한 것은, 그래서 강남에 살고 있지 않은 독자들이 보기에 '부러울' 만한 공간임에도 결국에는 모두가 부에 대한 '감사'를 조금씩 갖고 있고, '그래도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이지만 그건 조금 다른 문제다. 배경이 강남인만큼, 강남에 살아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라는 이야기지만 그저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쉽다. 강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았겠어, 하는 느낌도 못지 않게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강남'에 대한 감사가 조금도 없었다면 차라리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이 소설은 이 인물 셋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막판에 가서는 세미의 가정 분란이라는 나름 일일드라마 같은 막장 드라마로서의 전개를 갖춘다는 점인다. 그렇게 성장한다는 이야기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했지만, 문장들은 좋았지만 문장들에 비해 이야기가 너무 허술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전에 <달콤한 나의 도시>로 주목을 받는 바 있다. 나는 그 작품을 보지 않았다. 또 <삼풍백화점>이라는 소설도 호평을 받았다는데, 결국에 삼풍백화점 이야기를 넣고 있고, 90년대 배경의 핵심들을 조금씩 들추어내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참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쓰여지는대로 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뽑아냈다고 해야 할까, 털어냈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살아왔다'고 고백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자신의 삶에서만 소재를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일단 외로운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모두가 외로웠다로 끝내는 것은 좋지만 이야기의 균형이 다소 무너져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에 '강남'이라는 세미의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허무함이랄까. 안그래도 세미는 부모님의 사랑이 단절되고 자기 편 하나 없는 채로, 가정은 시끄러운 채로, 그저 자신의 가슴만 조물딱거리는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정확히 시대를 그려냈지만 그 어떤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저 하나의 인간이 외로워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살아가는 게 다 보잘 것 없고 불쌍하다는 의미만 남는다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이 셋에게는 그 어떤 삶의 즐거움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셋 다 과거에 얽매인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씁쓸한 삶을 맛봐야 한다는 점이 참 고달팠다. 그래도 뭔가 행복감이 느껴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그냥 한 권 읽었다, 하고 끝나는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또 하나의 이야기. 또 하나의 입장.

 

90년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90년대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참 진부하다. 사실 90년대를 함께 살아온 독자로서는 90년대를 이렇게 초라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 싶기도 하다. 90년대를 그렸다는 면에서 다른 소설들과 차이점이 보이지 않고 그냥 정이현 작가가 썼다는 점에 의의를 둔 것 같다.

 

독자로서는 단지, 주인공, 그들이 어딘가에서는 또다른 행복을 만났으면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겠지만, 평탄해보이는 나도 못지않은 무게만큼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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