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듀본의 기도‘ - 이사카 월드로의 초대
이사카 코타로
이사카 코타로.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첫 70년대 생 작가.
이사카 코타로씨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마왕’이라는 작품의(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소개글이었습니다. 그 글 중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록밴드 공연에서, 축구 국가대표전에서 이상한 공포가 느껴진다. 이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료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큰 사건이 일어나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사람들은 오직 자신한테만 관심이 있다. 젊은이들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과 인터넷 앞에 멍하니 앉아‘사색’ 아닌 ‘검색’을 하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고, 어른들은 자기변명에만 급급한 꼴불견이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거짓말만 일삼고,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작품 소개글만 보고도 저는 그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영화계에서 ‘이와이 지’감독이 보여주는 독특한 세계관과 내러티브가 ‘이와이 월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사랑을 받았다면, 이사카 코타로는 문학계에서 ‘이와이 월드’에 준하는 인기를 끌며 일본 문단에서는 ‘이사카 월드’라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본의 젊은 작가를 대표한다는 이사카 코타로. 오랫동안 미루다가 처음 손에 쥔 그의 책은 그의 데뷔작인 ‘오듀본의 기도’였습니다.
이사카 월드로 초대합니다.
‘오듀본의 기도’는 150년 동안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닫아 버린 오기시마라는 섬에 주인공 ‘이토’가 우연하게 발을 딛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섬에 내려오는 ‘섬 밖에서 온 자가 이 섬에 없는 것을 두고 간다.’는 전설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말하는 허수아비 ‘유고’, 이토의 섬생활을 도와주는 골든 리트리버를 닮은 ‘히비노’, 뭐든 반대로 얘기하는 전직 화가 ‘소노야마’, 이토보다 3주 먼저 오기시마에 들어 온 바깥세상의 사람 ‘소네가와’, 섬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는 ‘도도로키’,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섬에서의 살인면허를 가진 꽃미남 ‘사쿠라’,
이토에게 호의를 베푸는 우편배달부 ‘구사나기’와 그의 아내 ‘유리’, 몸무게가 300kg이 넘는‘토끼’, 다리가 불편한 ‘다나카’ 바깥세상의 인물인 이토의 옛 애인 ‘시즈카’와 악마적 기질을 가진 경찰 ‘시로야마’등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갖가지 복선과 은유들로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많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꽉 찬 구성을 보여줍니다.
‘결국엔 모두 허수아비지.’ (P. 456)
뒷이야기가 궁금해 쉼 없이 읽어 내려가느라 곳곳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은유들을 다 살펴보진 못했지만(한번 읽는 것으로 작가의 은유를 모두 파악한다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작가의 은유는 재미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져주었습니다.
‘나그네 비둘기’의 멸종으로 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 인간이 인간을 심판 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타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 등등은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사카 월드’를 만들어 낸 작가의 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 밖에서 온 자가 이 섬에 없는 것을 두고 간다.’
책을 읽으며 오기시마 섬에 없는 것은 ‘회의(懷疑)’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말하는 허수아비 ‘유고’의 말을 의심 없이 신봉하고, 불문율처럼 범죄자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사쿠라에 대한 믿음들은 소설의 마지막에 그 실체가 드러날 때 까지(물론 소설에 나타난 그것은 회의는 아니었습니다만) 언론이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허구를 아무 회의 없이 맹종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 뜨끔했습니다.
‘결국엔 모두 허수아비지.’ (P. 456)
글의 중간에 나온 저 짧은 문장을 허투루 넘겨 볼 수 없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겠지요.
‘나그네 비둘기’를 찾아서.
나그네 비둘기의 종말은 아무도 멈추지 못했다, 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큰 흐름이기 때문이라고. 좋든 싫든 이 세상에는 ‘흐름’이 있는데 거기엔 아무도 대항할 수 없다. 흐름은 눈보라나 홍수처럼 거대하지만 물이 데워지는 것처럼 천천히 찾아온다. 나그네 비둘기의 멸종도 그렇고 대부분의 전쟁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모든 것이 그 흐름에 휩쓸려 간다.
“인간이란 상실하기 전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지.”(P.190)
책의 제목에 있는 오듀본은 한 조류학자의 이름이었습니다.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이 실물 크기로 새의 모습을 그린 ‘미국의 조류’라는 책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75×105cm) 기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책엔 이제는 멸종해버린 나그네 비둘기의 그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수십억의 개체수를 자랑하며 하늘의 색깔을 비둘기 색으로 수놓았던 ‘나그네 비둘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1914년 멸종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듀본의 기도’는 끝없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속죄의 기도가 아니었을까요?
"인생이란 건 말이지.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매 한가지야. 너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어도 어느 틈엔가 저 앞으로 나가 있지. 그 위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흘러가는 거야.
도착하는 곳은 정해져 있지. 제 멋대로 그곳으로 향해 간다 이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기가 있는 장소만큼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고들 생각해." (P.46)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대체 몇 마리의 동물들이 죽어야하는가? ... 동물을 먹고 살아간다. 나무껍질을 벗겨 살아간다. 몇 십, 몇 백의 희생을 치르고 한 사람의 인간이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는지 아나? ... 정글 속을 기어가는 개미보다 가치가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나? ... 없다.” (P. 325~6)
"내가 쏜 화살이 분명히 과녁에 명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엉뚱한 바닥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허망하지 않겠어요?“
“그럴 때는 말이야. ... 떨어진 장소에 과녁을 그려 넣으면 되지.” (P.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