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클럽
크리스티앙 가이이 지음, 김도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재즈클럽’ - 사랑...? 자유로우나 이기적인...

크리스티앙 가이이




그를 지치게 하는 건 기다림이다. 그러나 짧은 기다림이었다. 그 기다림은 10분 정도 지속 될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진이 빠졌다. 10년 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 왔기에. 기다린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그것은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다.

 10년과 10분. 그는 10년과 10분을 기다려왔다. (P. 40 중에서)


내가 재즈를 처음 접한 건 15살의 가을이었다. 추석을 쇠러 간 큰집의 사촌형 방에 쌓여있는 재즈테잎들과 LP판들은 뭐랄까 하나의 동경이었다.

그 후로 또래들이 댄스음악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재즈를 들었다.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 마일즈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 엘라 피츠제랄드 ... .

그냥 좋았다. 그 자유로움과 즉흥성. 호소력 짙은 보컬의 목소리, 서로의 눈을 마주쳐가며 무아지경인 상태로 연주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재즈는 ‘가장 자유로운 음악’의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시몽 나르디는 과거 아주 훌륭했던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아마도 재즈의 자유로움을 닮아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영혼이었을 테다. 하지만 넘치는 자유를 주체하지 못해 그는 건강을 잃고 재즈를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재즈를 잃은 그에게 다가와 준 쉬잔과 함께 보일러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재즈를 버린 10년. 우연히 보일러를 고치러 간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그는 운명적으로 재즈와 재회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몽은 10년 10분을 기다려 다시 찾은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위해 파리에서 달려와 줄 아내가 있다.

기차를 타기만하면 돌아갈 수 있는 일상과, 현재의 충만함 속에서 갈등하는 시몽을 바라보며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차츰 동화 되어갔다. 하지만 거기까지. 아래의 문장을 읽는 순간. 그에 대한 이해는 산산조각이 났다.


가장 끔찍한 생각, 그가 내게 말했었다. 그건 쉬잔의 죽음을 바랐다는 거야. 모든 것을 해결하는 죽음.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그녀의 죽음을. ... 그는 쉬잔이 길에서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감사했다고. 그래, 그녀에게 고마워했다고. 넌 이해 못할 거라고 내게 말했다.  (P. 161~162)


그가 옳았다. 쉬잔은 그를 마중 나오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내 눈앞에서 저런 얘길 했다면 속된 말로 그는 ‘원펀치 쓰리 강냉이’가 날아갔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지금은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거에 사랑이 존재했던 그에게 대한 가장 최소한의 예의.

사랑에 눈이 먼 그에게 그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을까?


책의 서두에 한 페이지를 할애 해 이런 문구가 크게 박혀있다.


후회 하냐고? 내가?

아니. 그가 말했다.


그리고 다음 장에 또 한 페이지를 할애 해 헌정문구가 박혀있다.


오로지 쉬지를 위해


그의 이기적인 사랑에 인간적인 회의를 느낀다.

10년간 잃어버린 재즈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찾았지만 아내를 잃어버린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했던 그 시간들을 만약 10년 후의 그에게 다시 묻는다면 그는 여전히 행복하다고, 후회는 없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어쩌면 쉬잔의 영안실을 향해 백 킬로미터를 넘게 달려 간 ‘미친 놈’처럼 과거를 향해 다시 달려가고 싶진 않았을까?


그걸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덧붙임. 재즈의 짧은 호흡과 반복, 또는 즉흥성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한 페이지에 최소 5번 이상은 반복되는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시몽은 말했다.’, ‘데비는 말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생각했다.’는 상당히 거슬렸다. 게다가 곳곳에 눈에 띄는 우리말 문맥에는 맞지 않는 서걱거리는 느낌의 번역은 책의 온전한 감상을 방해했다. 책의 2판에서는 좀 더 다듬어지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