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한줄 🔖
(10p.) 나는 한국 시 번역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사랑과 감탄의 언어를 원 없이 들었다. 스스로 '과몰입 성향'이라고 칭할 만큼 아름다운 걸 볼 자세와 감탄하는 능력을 장착한, "자기 힘에서 멀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눈앞에 존재했다.
(56p.) 모든 게 매끄러우면 다 읽고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근데 정보라 작가님 글은 읽다가 '이거 뭐지' 하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하는 약간의 저항이 있어요. 비단보다는 울 같은?
(61p.) "견디지 않았어요. 저는 번역을 그만뒀다고 생각했어요. (...) '나는 너희가 필요 없어'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증명했어요. 그때 쌓은 자본과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매일마다 문학 번역을 그만둘 준비가 돼 있어요."
(85p.) 그런데 내 주변에 여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는 모두 여성으로부터 오니까. (...) 그러니까 핑계를 댈 수가 없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었어, 나는 무지해, 이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호모포비아를 만나면 X같고 인종차별주의자를 만나면 X같지만 여성혐오주의자를 만나면 진짜 X같죠.
(110p.) 글이 늘려면 적절한 비판과 정확한 칭찬이 고루 필요하다. 문제는 내용보다 방식이다. 어떻게 말하느냐. 말하는 사람이 찌르기보다 듣는 사람이 찔려야 한다. 쓴 사람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쓴 것이고, 글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111p.) 무언가를 이겨내려면 그 힘은 공동체에서 온다.
(139p.) 재난 이전과 이후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현실, 구멍 뚫린 사회가 조용히 침몰하는 "죽음의 완만함"이 어쩌면 우리가 겪는 재난이고, 공포이고, 고통인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152p.) 나는 그가 ADHD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용기에 놀랐고, 질병과 함께 차질 없이 일하며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를 참조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와 노력에 감탄했다.
(170p.) 자기 인식은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되면 파도처럼 밀려온다.
(194P.) 한국어가 구멍이다. 애초에 있던 구멍을 우 좋게 찾은 게 아니라 그가 미세한 틈을 끈기 있게 파고들어 구멍으로 뚫어냈다. 태아처럼 밀고 나와 온몸으로 만들어낸 다른 세상을 향한 출구.
(246p.) 외국어로 소통하면 배려하는 공간이 넓어요. (...) 친구 사귈 때에 제3언어로 하는 게 제일 편안해요. 중립국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평화지대.
(247p.) 이런 생각도 했어요. 아기들이 되게 빨리 울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냥 보통 사람들이 길에서 임계점이 지나자마자 울어버리면 어떤 풍경일까?
(248p.) 평생을 언어의 과잉 상태에서 살아가고 공부하던 사람이 언어의 기능이 축소된 상태에서 배우자를 만났고, 언어가 무용한 상태에서 아이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