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로스 리포트 위픽
최정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소설의 배경은 2030년대로, 인공지능 '봇'의 사용이 일상화된 사회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봇은 학습 교사로, 운동 파트너로, 간병인으로 혹은 가족으로 함께 한다. 봇의 수리는 불법이다. 한 번 고장 난 봇은 즉시 버려진다. 기업에서는 신식모델의 구매만이 고장 난 봇을 대체할 방법이라 말한다. 따라서 봇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 봇이 떠난 뒤에 우울증을 겪는 '봇로스 증후군'은 2030년대의 주요 질환 중 하나이다. 디프레시브 디스 아더 오프 디파트먼트 봇 릴레이션십. 줄여서 '디봇'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함묵증과 대인기피증을 동반한다. 심한 경우 식사를 거부하거나 계속 잠만 자기도 한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2년 이상도 그런 증상이 지속된다. 소설에는 이를 기반으로 한 여덟 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7년 후는 멀지 않은 미래이다. 그리고 언제나 세상은 너무나 빨리,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쩌면 현실이 될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언제나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더 이상 그 잔인함이 놀랍지도 않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유한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적 오만함이 두렵다. 2030년이 정말로 고장 나면 버리고 새것을 사는 게 익숙한 세대가 되면 어쩌지? 후대가 나를 '임 과장'처럼 쓰고 버리는 것을 체화하지 못한 마지막 세대라고 규정짓는 때가 오면 어쩌지? 겁나는 미래가 이미 진행 중인 것 같아 더욱 두렵다.

간호 봇 ‘이삭’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망가져가는 몸으로 치매 노인 '양구'의 돌봄 노동을 감당하는 이삭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정한다. 그는 자신의 호오를 안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도 알고, 변화를 인식하며 느낄 줄 안다. 더불어 자신과 양구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난 것이 분명함을 단언한다. 이러한 이삭이 인간과 다르다고 말할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보다 못하다고 여겨질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가 달라서? 인간이란 것의 정의는 뭔데? 인공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또 무엇이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별개로 그저 이삭이 너무나 애틋했다. 머리로 정답을 내리려 않고 그저 마음으로 느끼려 했다. 그게 이삭을 위한 일이라 느껴졌다.

잔소리는 분명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잔소리가 끊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일까? 나는 그게 온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잔소리하는 자의 뜨거운 심장 말이다.

잔소리의 온도는 사랑고백의 온도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높다.

- 작가의 말 中

봇로스 리포트 (최정화, 위즈덤하우스)

저자의 잔소리를 오래 읽고 싶다. 저자는 잔소리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걸 알기에, 소설 속에 눈치채지 못하게끔 교묘한 방법을 썼다고 한다. 수록된 네 개의 이야기서는 진지하게 마음을 전하고 나머지 네 편에서는 나름의 유머감각을 발휘했다고. "이 점이 통했을까?" 묻는 저자에게 적어도 독자 한 명에게만큼은 완벽하게 와닿았다고 전하고 싶다. 나 역시 이제 가전제품 광고를 볼 때마다 팔짱을 끼고 째려보게 될 것이라고, 지구의 온도를 의식하고 낮추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잔혹하고 끔찍한 잔소리를 소설에 숨겨주셨으면 한다. 지칠 줄 모르고 그린워싱을 하는 무수한 기업들이 겁먹을 정도로. 그리고 성실한 독자로서 저자의 잔소리를 따라다니며 나 또한 기꺼이 두려워하겠다.


🔖 #책속의한줄

(59p.) 그래도 우리는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라도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더 큰 소리로 외쳤다.

(74p.) 그가 만약 기업 친화적이고 소비 지향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유망한 인재로 성장했을 것이다. 기업과 소비에 대한 반감을 갖고 2030년대를 살아가는 건 고난의 연속일 것이다.

(75p.) "전혀 연주 너답지 않은데? 법은 완전하지 않아.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개선되어가는 중이지."

(78p.)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건 태우가 나를 완전히 만족시켰기 때문이었다.

(85p.) 아이였을 적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 겁도 없이 뛰어들었을 때 바다가 따뜻하게 감싸주었듯이,

(87p.) 양구가 흥얼거릴 때면 내게 뭔가가 깃든다. 그것을 '영혼'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87p.) 그것은 양구와 나와의 유일한 세상에서 일어난 일로 누구도 부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92p.) 내가 그를 떠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거라는 건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93p.)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지식이나 훈련으로 준비될 수 없었다.

(104p.) 그러므로 민지의 몫이었던 행복도 전적으로 쌍둥이 봇의 차지였다.

(113p.) 어마어마하게 잘 만든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단지 글자뿐인 소박한 형태의 소설이 이렇게 살아남았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