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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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참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더 높은 곳을 위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유의미한 과정이라고 믿게 만든다. 아파도 참고 슬퍼도 참고 꾸역꾸역 해내는 것에 스스로 꽤나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당사자성 있는 발언입니다..) '감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려움을 참고 버티어 이겨냄. 예: 어떤 성공이든 얼마만큼의 희생과 감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는 사전적 의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일까? 그런 고통의 순간들은 목표에 도달하면 전부 사라지는 걸까? 마음에 물음표가 생겼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고통이 남긴 잔해가 고스란히 몸에, 마음에 새겨진 이후일 확률이 높다. 많은 이들이 '번아웃'을 경험하고, '우울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이유 역시 어쩌면 고통의 감내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정보라 작가는 이런 우리를 위해 소설로 손을 내민다. 몸과 마음에 지독하게 새겨진 고통의 기억, 그 순간들은 과거에 내려놓자고. 우리가 내딛지 못했던 미래로 이제 한 걸음 나아가자고.(출판사 서평 中) 소설의 줄거리는 스포방지를 위해 자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 어떤 흐름으로도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계속 한 끗의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이 가장 그러했는데, 그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고 반가웠다. (아! 그냥 다 말하고 싶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꼭 함께 읽은 다른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길.. 저는 출판학교 등교하는 월요일만 기다려요...)

어딘가 잘못된 세상, 그곳을 만든 사람들에게 끔찍하고 아름다운 복수를 선사하던 정보라의 소설은 이제, 거칠고 미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고 이야기한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복기하며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자고. 세상과 싸우며 전복을 꿈꾼 사람의 결기가 녹아 있는 이 소설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 中)

-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다산책방)

비장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온기.. 아 진짜 매력적이다. 단언컨대 이 소설은 당신이 처음 보는 서사일 것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울고 웃으며 진심으로 행복할 것이다.. 나는 저항 없이 그렇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SF와 스릴러, 반전, 미스테리, 쌍방구원 로맨스까지.. 적고 보니 평소 좋아하는 장르가 전부 있어 그럴만했네 싶다) 호러와 환상의 세계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스릴러'까지 섭렵한 정보라 작가의 다음이.. 또 너무 기대가 된다! 더불어 가제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작가의 말>이 어떻게 쓰여있을지 궁금하다.

결국 모든 고통이 '삶의 의미'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고통'뿐 아니라 고통에서 파생되는 '삶의 의미'라 느껴졌다. 결국 모두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 끝에 행동을 선택하고, 그 행동이 각 개인을 사이비 교단·범죄·사랑하는 사람 등..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끄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더불어 소설 속 '홍'과 같은, 생존이 곧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람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했다.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 질문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부유한다. 고통에 대해 얼마나 깊은 사색의 시간이 있어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감탄의 여운이 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요. 뭘 크게 믿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들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판단하고 의미는 그 뒤에 찾는 거죠. 절대적인 믿음 같은 게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요." (195쪽)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크게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오랜 시간 바라왔던 꿈도 포기하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잃은 때였다. 길었던 동굴에서 마침내 빠져나왔을 때 다짐했다. 그저 내일을 살겠다고. 무엇을 위해서도 향해서도 아니라 그냥 삶 자체에 충실하겠다고. 그때의 내 마음이 적혀있는듯했다. 절대적인 믿음보다, 무언가에 의존해 의미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괴롭구나, 힘들구나, 아프구나.. 결국 그 모든 것이 삶이란 것을 이해하고 사는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믿지 않아도 잘 살아낼 수 있어야 믿게 되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부디 참지 않길 바란다. 혼자 외롭게 고통을 감내하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과 막연하게 나누길 소망한다.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만이 서로의 고통을 안아줄 수 있음을.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바란다. (소설 속 '륜'과 '현'&'경'처럼 말이다!) 이 소설이 그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가을의 초입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소설을 만남에 기쁘다. 약간 쌀쌀해지는 계절과도 참 잘 어울린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며 들었다는 <EastMountainSouth -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을 꼭 함께 들으며 읽어보시길..♥


🔖 #책속의한줄

(56p.)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선택이 이루어진 정황 자체에는 한이 통제하거나 결정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은 자신의 선택과 결심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 의미가 이후에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75p.)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까지 전부 알아내고 싶은 거야.'

(186p.) 그는 의사를 신뢰했다. 그리고 태는 간절했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는 믿음과 사람을 죽였다는 현실을 어떻게든 화해시키는 것이 태에게는 중대한 문제였다.

(190p.) "제가 선택했지만......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제게 주어져 있었던...... 그런 것 같습니다."

(264p.) 경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265p.) 그리고 현이 없는 하루를 더 살기 위해서 일어났다. 그것은 한 치의 숨 쉴 틈도 없는 단단하고 매서운 생활이었다.

(266p.) 조그맣고 단단하고 춥고 덥지만 그러나 완전히 새롭고 완전히 다른 삶을 스스로 이루어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경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291p.) 자신에게 평생 의미와 삶의 목적을 주었던 존재를 드디어 만났으나 그 존재는 떠났고 태는 남았다. 그러므로 태는 울었다. 자신이 그 존재에게 의존하여 여전히 의미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태는 울었다. 자신이 인간이라서,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태는 절망하여 울었다.

(302p.) 더져야 할 질문들을 모두 더지고 나면 같은 질문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302p.) 자신도 현과 함께, 자신도 현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삶을 함께 살기를 원했다.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으로 삶을 채우고 흉터가 아닌 증거들로 앞에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

(313p.)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기다리는 배우자를 만나러 가야 했다. 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륜을 기다리고 있었다. 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생활, 휴식과 사랑과 안정과 감정적 교류와 정서적 충족감의 삶을 륜은 배우자와 함께 몇 년에 걸쳐 주의 깊게 쌓아 올렸고 앞으로도 그렇게 공들여 가꾸어갈 것이었다.

(324p.) 태가 남긴 잔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해 이미 나아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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