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지음 / 허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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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사랑은 가수 '윤하'였다. 초등학교 때 음악방송에서, 피아노를 치며 혜성을 부르는 모습을 보곤..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날부터 윤하언니처럼 되겠다고 피아노도 배우고, 용돈을 모아 악보를 사러 혼자 처음 시내에도 가보고, 블로그를 만들어 노래 가사를, 영상을 아카이빙하고... 초등학생 은이의 취미는 그저 '윤하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루를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든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나를 살게 한 '언니들'이 있다. 윤하와 아이유, 테일러스위프트.. (꽤나 일관되죠 하하) 이제는 언니들의 노래를 넘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원동력이 된다. 화려해 보이는 이면에 얼마나 큰 노력이 숨어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잣대가 얼마나 엄격하고 냉정한지. 우리 언니들은 가수인데, 심지어 자기 곡도 자기가 쓰는데! 음악성보다 외면에 대한 평가가 훨씬 많다. 얘는 살이 쪘네 어디를 고쳤네 어디가 부었네 나이를 먹었네 등등... 자기관리도 실력이란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나는 우리 언니들이 그냥 몸도 맘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노래해 주길 바라는데.. 이런 내 마음을 얹는 것도 부담이 될까 조심스럽다. 무수한 사랑과 질타를 동시에 받는 언니들의 마음은 어떨까.

'누군가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진심이 거대한 폭력적 산업을 지탱할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이 진실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신비로운 일이지요. 명쾌한 한마디로 정리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손쉬운 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너라는 이름의 숲, 아밀 (작가의 말 中)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이 여자 아이돌, 즉 '여돌'의 팬임을 밝히며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향한 깨끗한 진심이 그를 착취하는 폭력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아이돌 산업, 연예 사업의 가장 강력한 모순이라고. 그럼에도 그 사랑이 끝까지 ‘깨끗한’ 진심이라는 것 역시 비극이다. (출판사 서평 中) 기형적 구조의 산업은 무고한 사랑에도 혼란을 남긴다. 저자의 바람대로 많은 질문이 다가왔다.. 정리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지만. 사랑하는 우리끼리라도 더 많은 질문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면서도, 억울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어른들이 잘했어야지 애초에! 사랑이 혼란하지 않도록! 안타깝게도 이제는 내가 어른이니까... 더 고민하는 수밖에, 그리고 믿는 수밖에 없다. 나 하나의 생각이 구조 재건에 힘을 보탤 수도 있다고. 우리 '언니들'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소설 속 '이채'는 아이돌이다. 먼지폭풍과 전염병으로 인해 가상현실로 이루어진 삶에 싫증이 난 사람들은 진짜에 집착한다. 이채가 사랑받는 이유는 '진짜이면서도 버추얼 아이돌만큼이나 완벽하기 때문'이다. 섭식장애와 자기혐오 속에서 이채는 매일 더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황폐화가 된 서울에는 고등학생 '숲'이 산다. '가상현실 저항증'을 앓느라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전혀 접점 없어 보이는 두 소녀의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을 통해 강해지는지는 꼭 소설을 통해 확인해 보길!

띠지의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우리들의 성장통에도 리듬이 있다면, 발을 헛디딘 순간마저 춤이 된다면"

자신의 욕망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동경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녀'들의 이야기라 더 좋았다. 우리가 지나온 소녀는 바로 그런 모습이니까. 자기 안의 소녀를 견디며 자랄 또다른 소녀들이 궁금해진다.


🔖 #책속의한줄

(175p.) 비대면 학교만이 아니라 모든 가상현실 공간은 참여자가 적당한 자극 수준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없도록, 그리고 타인의 아바타에게 허용 범위 이상 접근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된다. 아, 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계인가!

(191p.) 연약함이란, 불완전함이란 폭력에 맞설 힘이 없는 것을 넘어서 차라리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성질 같았다.

(200p.) 저는 선배의 빛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선배가 어떤 연료로 어떻게 타올라 빛을 발산하는지 지켜보고 싶어요. 그 빛에 얼굴과 손을 쬐고 싶어요.

(211p.) 어떤 만남은 정말 설렐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기적일 수 있다. 그 기적이, 그 기적에 대한 희망이 어떤 사람의 삶을 지탱해 줄 수도 있다.

(270p.) 야속했다. 그런데 동시에 안쓰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채에게는 자꾸 이런 식으로 모순된 감정들이 떠올랐다.

(278p.) 숲의 안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숲은 이채에게 강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의 강함을 이채에게서 보고 있었을 뿐이다.

(298p.) 누군가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진심이 거대한 폭력적 산업을 지탱할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그럼에도 그 사랑이 진실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신비로운 일이지요. 명쾌한 한마디로 정리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손쉬운 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299p.) 지금 당장 우리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를 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미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너라는이름의숲 #아밀 #동아시아 #허블 #가제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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